[베이스볼피플]박진만“왜일찍포기안했냐고?…낫는다면,무조건가야했다”

입력 2009-02-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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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유격수의아픈만큼,아름다운퇴장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이 하와이에 도착하던 15일(한국시간). 호놀룰루 공항을 빠져나오던 그에게 취재진이 다가갔다. ‘초미의 관심사’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그의 어깨. 상태가 궁금했다. 그는 말했다. “통증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번엔 정말 출전이 힘들 것 같다.” 진심이 서린 그의 표정을 보며 주위는 할 말을 잊었다. 그 없는 국제대회를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진만(33·삼성). 9년간 국제대회 50경기에 출전하며 대표팀 내야를 진두지휘했던 야전 사령관. 그가 결국 떠났다. 그 어느 때보다 휑한 빈 자리를 남기고서다. 아픈 몸으로 하와이 땅을 밟은 그가 8일 후 결국 돌아가는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그의 솔직한 심경 변화를 따라가봤다.》 ○대한민국이 의지했던 어깨 2000시드니올림픽, 2002부산아시안게임, 2003아테네올림픽예선, 2006월드베이스볼클래식, 2006도하아시안게임, 2007타이중아시아야구선수권, 2008베이징올림픽최종예선, 2008베이징올림픽. 숨이 찰 정도의 리스트. 박진만이 2000년 이후 함께 해온 한국 야구 영욕의 순간들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베이징올림픽 최종예선과 본선 때도 어깨에 주사를 맞고 뛰었다”고 털어놨다. 그 때부터 시작된 거다. 아픈 어깨와의 싸움이. 그는 또 말했다. “정밀검사를 받았더니 지난해보다 염증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심하면 올 시즌 후에 수술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제 주사를 맞고 참아가면서 국가대표로 뛸 나이는 아닌 것 같다. 한 해, 한 해가 선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나도 두렵다.” 그러고 보면 한국 야구는 그의 어깨에 참 많은 부분을 의지해왔다. 유격수 출신인 김민호 수비코치는 “유격수의 기본은 스로잉”이라고 했다. 거리와 상황에 따라 완급을 조절해 송구할 수 있는 능력. 박진만이 바로 그걸 갖췄다는 거다. 그 어깨가 세계 4강을 이끌고, 금메달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박진만은 “던질 수가 없다”고 했다. 팔에 힘을 싣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끝까지 붙잡으려 했던 희망 금세 떠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뜻밖의 장벽에 부딪혔다. 그의 존재감은 스스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김인식 감독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늘 타구가 가는 방향에 박진만이 있었다. 2라운드에서만이라도 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강흠덕·한경진·조대현 트레이너 세 사람과 한화 손혁 인스트럭터가 밤낮으로 그의 재활에 매달렸다. “마음대로 아플 수도 없다. 삶이 너무 무겁다”던 그는 도착한 지 정확히 나흘 후에 이렇게 말했다. “오기 전까지만 해도 ‘무조건 안된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 ‘무조건’을 떼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이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 꼭 나가야 한다면 2라운드라도 뛰고 싶다.” WBC 사무국은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애타는 질문에 “개막 이틀 전까지 최종엔트리 변경이 가능하다”고 답변해왔다. 그렇게 박진만의 ‘일단 합류’가 결정되는 듯 했다. 하지만 코칭스태프는 꿰뚫어봤다. 미안한 마음에 차마 고개를 내젓지 못하는 박진만의 심정을. 최종탈락자를 결정하던 22일 밤, 3시간에 걸친 난상토론의 결론은 결국 ‘박진만 제외’였다.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결정이었다. ○후배 박기혁을 향한 박진만의 조언 박진만은 “솔직히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9년 간 빠짐없이 달아온 태극마크를 순식간에 떼어내게 된 기분.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터였다. 대표팀 선수들이 모두 연습경기를 위해 옆 구장으로 떠난 후, 홀로 남아 타격 훈련을 하던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시원섭섭하다.” 하지만 자신의 뒤를 잇게 된 박기혁을 격려하는 여유도 보였다. ‘국가대표 주전 유격수’라는 부담스러운 자리. 해주고 싶은 얘기가 누구보다 많았다. 그는 “기혁이는 발놀림이 좋아서 잘 할 수 있다.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도쿄돔은 우리나라 대구구장 잔디와 비슷하다. 돔구장이라 주변 공기가 좀 다르긴 해도 3-4회만 치러보면 금세 적응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메이저리그 구장에서는 푹신한 천연잔디를 오히려 주의하라고 했다. 발에 닿는 느낌이 다르고 타구의 속도도 다르니 한 경기 정도는 적응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는 대표팀 관계자에게 슬쩍 조언했다. “충분히 괜찮은 선수니까, 심리적인 부분만 좀 붙잡아줘.” 들뜨지도 위축되지도 말라는 선배의 충고다. ○태극마크가 부끄럽지 않은 선수 누군가 그에게 ‘왜 1차 엔트리가 발표됐을 때 일찌감치 백기를 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아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낫는다면 무조건 가야했기에, 차마 아프다는 말을 못했다.” 박진만에게 국가의 부름이란 그런 의미다.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응해야 하는 것. 그래서 김인식 감독이 “무조건 하와이로 와서 일주일 버텨봐라”고 했을 때도 군소리 없이 응했다. 당장이라도 누워서 쉬고 싶었지만 짐을 꾸려 먼 곳까지 왔다. 이번에도 그는 국가의 뜻을 따른다. 그러면서도 “내가 괜히 와서 폐만 끼치고 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며 고개를 흔든다. 박진만은 그런 선수였다. 그는 23일 호놀룰루 공항 출국장으로 들어서면서 “이제서야 도중에 떠나는 선수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 누구보다 열심히 한국팀을 응원하겠다”고 했다. 하와이|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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