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이영화]더레슬러,미키루크이기에더빛나는영화

입력 2009-03-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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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 당시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높은 스포츠는 아이러니하게 미국 프로레슬링이었다. 매주 토요일 오후 AFKN을 통해 중계방송 된 WWF 경기가 방송되는 시간이면 동네 놀이터에 뛰어노는 아이들을 발견하기 힘들 정도였다. 캐스터와 해설자가 떠들어대는 말은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헐크 호건, 워리어, 스네이크맨은 소년들의 영웅이었고 뚱뚱한 어스퀘이크와 야비한 제우스는 얄미운 공공의 적이었다. 헐크 호건이 티셔츠를 찢으며 화려하게 부활 승리를 안겨줄 때 함께 환호했고 서로 호건이나 워리어가 되겠다며 이불을 깔아놓고 온갖 기술을 흉내 냈다. 그 때 우리들의 영웅이었던 헐크 호건과 워리어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여전히 위풍당당한 영웅의 모습으로 악당을 물리치고 있을까? 영화 ‘더 레슬러’는 한 때 미국의 국민적 영웅이었던 한 프로레슬링 선수의 비참한 말년을 담은 영화다. 마트에서 일하는 랜디는 주말에 가끔 한적한 동네에서 열리는 프로레슬링 대회에 뛰고 받는 돈으로 어렵게 살아간다. 관객이 백 명도 되지 않는 초라한 무대지만 여전히 링 위에서만은 그가 최고 스타다. 어려운 살림이지만 팬들을 위해 선탠도 하고, 금발로 염색도 잊지 않는다. 어느 날 후배 선수와 머리를 맞댄 각본대로-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맞다가 극적으로 뒤집어 승리-경기를 마친 랜디는 심장이상으로 쓰러진다. 의사는 링 위에서 다시는 오를 수 없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링 밖에서 그는 아프고 가난한 노인일 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랜디는 목숨을 걸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를 기억해주는 팬들을 위래 링 위에 선다 . ‘더 레슬러’는 미키 루크가 아카데미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되며 큰 관심을 받았다. 당초 이 영화의 캐스팅 1순위는 니콜라스 케이지였다. 하지만 미키 루크가 주인공 랜디를 연기했기 때문에 위대한 영화로 기억될 수 있는 멋진 작품이 탄생했다. 한 때 제임스 딘과 비교될 정도로 꽃미남 스타였지만 권투선수로 외도와 성형부작용 그리고 파산까지, 도저히 재기가 불가능해 보였던 미키 루크는 추억의 레슬링 스타 랜디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무신경한 듯 보이는 건조한 영상, 절제된 연출은 랜디, 아니 미키 루크의 쓸쓸한 뒷모습을 유난히 많이 잡아낸다. 하지만 그 어떤 애잔한 대사나, 뜨거운 장면보다 힙 없이 걷고 있는 그의 뒷모습만으로 가슴이 울린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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