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Black&White]한시민바둑강사의안타까운절규

입력 2009-03-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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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하다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보았다. 바둑보급을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73세 노인의 이야기였다. 여행객들에게나 필요할 법한 큼직한 캐리어에 손수 제작한 강의교재와 빔 프로젝트를 넣고는 복지관으로 교회로 지하철로, 바둑을 알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간다. 물론 모두가 무료강의이다. 노인의 사진을 보니 낯이 익다. 10년도 넘은 이야기일 것이다. 국수전이니 왕위전이니 굵직한 기전 도전기를 취재 다니던 시절이다. 그때마다 어딘지 퇴직한 중학교 선생님 같은 느낌의 신사를 볼 수 있었다. 눈썹이 굵고 늘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말은 없었다. 그때는 그저 프로기사의 지인이려니 하고 넘어갔다. 사진 속의 인물은 그때 그 신사였다. 세월이 지났지만 그 독특한 인상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게 바둑대회 한 구석에서 주목받지 못한 채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던 신사는 ‘시민바둑강사 김교학(金敎學)’으로 거듭났다. 이 이름은 강사명이다. 가르치면서 자신도 배운다는 뜻이다. 김 노인의 기사를 보면서 은근히 부아가 났다. 김 노인은 “바둑계가 30억원이나 들여 한국바둑리그는 만들면서, 일반인을 위한 바둑교육장에는 왜 무심한가”라며 섭섭해 했다. 그러고 보니 한국기원(이사장 허동수)에도 시민을 위한 바둑강좌가 있긴 있었다. 종로시절에는 꽤 인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홍익동으로 옮기면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호응이 적고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바둑문화의 창달과 보급을 목표로 설립되었다는 한국기원은 ‘기전의 창달과 보급’, ‘프로기사의 권익창출과 보호’를 위한 단체로 변모한지 오래이다. 김 노인은 “한국기원 스포츠바둑지도사 자격증과 아마6단 자격증을 받았지만 장롱 안에 처박혀 있을 뿐이다. 누구 하나 불러주는 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재교육 통지조차 받지 못했다. 무엇 때문에 100여 만원의 경비가 필요한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국기원은 지난해 사무국에 보급팀을 신설했다. 그러나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말이 보급팀이지 실제 업무는 프로기사들의 수익창출이다. 특히 젊은 기사들에게 치여 기전 상금과 대국료만으로는 생활이 어렵게 된 원로 기사들을 위한 일자리 마련이 주된 업무이다. 실제로 이 팀이 지난 1년 간 한 보급관련 일은 연구생 관리와 몇몇 아마추어 대회에 관여한 일이 전부였다. 바둑의 보급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부록’이 아니다. 한국기원이 그토록 목을 매는 기전 창설 역시 결국은 바둑의 보급이 목적이다. 팬들을 무시하고 당장의 과실 단 맛만 좋아라하다 팬들의 얼음장 같은 외면 속에 사라져 간 종목들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보아 왔다.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관계자들이 바둑보급의 현장을 시찰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김 노인의 힘없는 절규에 귀를 막지 말아야 한다. 바둑인의 손가락은 귀를 막으라고 있는 게 아니다. 귀 막을 손가락으로 바둑돌을 쥐고, 대중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게 진정 이 나라의 바둑이 살 길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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