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音談패설]귀를닫고마음을열어라

입력 2009-03-30 03: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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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희망을 나누다 콘서트 따뜻한 공연을 다녀왔다. 28일 토요일 오후 6시, 강남구 양재동 힐스테이트 갤러리에서 있었던 한국음악연구회 아랑주 주최의 국악 크로스오버 콘서트. 수원대 국악과 홍주희 교수와 제자들이 꾸민 공연으로 ‘2009 희망을 나누다’가 테마이다. 자선공연이며 수익금 전액은 도곡1동 홀몸 노인을 돕기 위한 성금으로 쓰였다. 120석 남짓한 소규모 무대에서 열린 이날 공연은 시종 온기가 가득했다. 납작모자인 ‘도리우치’를 쓴 노인부터 유치원생까지 관객의 스펙트럼도 넓었다. 마치 지역 주민바자회에라도 초청받아 온 것 같다. 공연 시작 전의 왁자지껄함조차 정겹다. 힘껏, 그러나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다. 이 분위기를 폐부 깊숙이 기억시키고 싶다. 무대와 관객석 제일 앞자리의 간격이 불과 1미터 남짓. 이쯤 되면 연주자와 관객이 서로를 ‘관람’할 수 있는 수준이다. 특이하게도 좌석은 간이 탁자를 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취재수첩과 만년필을 올려놓고는 기지개를 켠다. 이것으로 이 쪽은 ‘관람’ 준비 끝. 팔짱을 끼고는 느긋하게 첫 연주를 기다린다. 공연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졌다. 전반부인 파트1에서는 홍주희 교수와 거문고 앙상블 다비, 피아노와 퍼커션이 어우러진 ‘댄스’, 거문고와 피아노가 꾸미는 ‘체리아이스크림’, 가야금 합주 ‘은빛파도’, 가야금과 거문고, 피아노의 ‘서곡’이 프로그램에 올라 있다. 모두 오리지널 곡들이다. ‘댄스’는 이전에도 들은 기억이 있다. 거문고의 단단한 저음 위에 나비처럼 가야금이 뛰노는 밝고 경쾌한 곡이다. 공연장의 서먹한 분위기를 녹이기에 좋다. 모두들 어깨와 다리를 들썩이며 댄스의 리듬을 탄다. ‘체리 아이스크림’은 거문고 앙상블 다비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안정희씨의 독주곡. 달콤하고 아련하다. 간혹 뭐라 표현하기 힘든 회한이 마음의 문을 두드리지만 이윽고 입가에 미소가 돌아오게 만드는 곡이다. 연주자의 입가에도 시종 미소가 머문다. 관객들의 박수가 커졌다. 파트2는 좀 더 편하고, 익숙하고, 아기자기한 곡들로 채워졌다. 독일 공연에서 ‘대박’을 쳤던 ‘이히 리베 디히’를 비롯해 엘가의 ‘사랑의 인사’, 리베르 탱고, 신나는 재즈곡 ‘싱싱싱’ 등이 숨쉴 새 없이 이어졌다. 다비의 오리지널 곡인 ‘출강’과 ‘다비’ 역시 귀를 붙드는 매력적인 작품들. 관객의 반응 역시 증폭됐다. 박수와 함성이 공연장을 메운다. 주최측이 마무리로 준비한 곡은 빅뱅의 ‘붉은노을’(실은 이문세지만). “오늘의 지휘자는 여러분 모두입니다”라던 사회자 김우성 국악방송 프로듀서의 말처럼 관객과 연주자들이 하나가 돼 ‘난 너를 사랑해~ 이 세상은 너 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이 우르르 무대로 몰려나갔다. 함께 손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팬 사인회였다. 이런 공연은 ‘귀’만 준비해 가선 온전히 만끽할 수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귀를 닫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 평소 관중석의 기침소리 하나에도 미간이 좁혀지는 예민한 관전매너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이런 공연장에서는 관대해져야 한다. 노인들의 수군거림과 아이들의 왁자지껄함조차 음악으로 들어줘야 한다. 귀를 닫을수록, 마음을 열수록 즐거워지는 공연이기 때문이다. ‘선한 가야금’으로 불리는 홍주희 교수의 연주회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공연이 다시 열리게 된다면, 두 말없이 다시 발걸음을 하고 싶다.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음악에 대해 내가 지불한 작은 대가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위해 쓰인다. 공연을 다녀온 다음 날에도 나의 마음은 열려 있었다. 그것은 아주 유쾌한 경험이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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