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音談패설]‘마성’의웅산,‘웅산’을노래하다

입력 2009-03-25 07: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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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막고 듣는 듯 어눌한 웅성거림, 드문드문 섞여 들려오는 외국어 소리, 가슴 한 구석이 막힌 듯한 설렘, 약간의 불편함. 공연이 시작되기 전의 이런 분위기가 좋다. 언제부턴가 이런 것들이 공연의 일부분처럼 느껴진다. 음악처럼 달콤하다. 음반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순수한 환희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긴 관객의 박수를 받으며 웅산이 천천히 무대 한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긴 드레스를 발로 툭툭 차며 스포트라이트의 정 가운데로 나아가는 순간이다. 응축된 긴장감이 무대와 관객석을 한꺼번에 장악해 들어간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24일 LG아트센터에서 있었던 웅산의 ‘윈디 스프링’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열리는 봄맞이 공연이다. ‘언제까지고 하고 싶다’라던 이 공연이 이제 2년차가 됐다. 조금은 굳은 얼굴로 웅산이 첫 곡을 불렀다. ‘Nothing Compares to You’. 두세 곡을 부른 뒤 멤버 절반을 소개했고, 생수병을 들어 물 한 모금을 마시고는 다시 노래를 이어갔다. ‘Too Darn Hot’, ‘Windy Spring’이 차례로 무대를 채웠다. 라이브에서의 웅산은 처음 보았다. 음반의 뒷면에 감추어졌던, 또 하나의 웅산이 읽혀졌다. 무대에서 보여 준 그녀의 폭발적인 에너지도 대단했지만 정작 가장 놀라웠던 것은 웅산이 지닌 ‘정직한 소통의 힘’이었다. 인터뷰에서 웅산은 ‘정직하게 곡을 쓰려 한다’고 말했다. 순간의 감정에 충실해 곡을 만든다. 만들어진, 꾸며진 감정으로는 대중에게 전달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아니, 스스로 그런 식으로는 도저히 곡을 쓰지 못한다. 그녀가 직접 만든 곡들은 그때의 느낌만으로, 일사천리로 써낸 ‘찰나의 감성’이다. 부연 담배연기 사이를 부유하듯 읊조리는 웅산의 목소리가 그랬다. 듣고 있으면 마치 텅 빈 공간 안에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듯한 착시에 빠져든다. 공간감이 희미해지면서, 그쪽과 이쪽이 연결된다. 그녀의 가사들이 수화기를 통해 전해져 오는 듯 선명하다. 그녀와 관객의 사이에서 음악을 제거하더라도 그녀의 감성이 고스란히 전해져 올 것만 같다. 영화 원스의 삽입곡 ‘If You Want Me’와 자신의 작품 ‘Call me’에서 들려준 그녀의 목소리는 ‘마성(魔聲)’에 가까워, 사악할 정도로 흡입력이 강했다. 이런 것은 기교 따위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사를 정확히 발음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이것은 순수하고 정직한 음악의 힘이다. 웅산의 음색은 지극히 ‘웅산적’이다. 기본적으로 허스키하면서도 풍부하다. 재즈 보컬리스트로서는 이른바 ‘교과서적인 축복’이라 할 만하다. 그녀가 재즈를 하기 전 록커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날 라이브에서 웅산은 음반에서 들을 수 없었던 ‘웅산적’ 사운드의 극한미를 여과없이 들려주었다. 거칠면서도 때론 고양이털처럼 부드러운 질감을 얼기설기 엮어 놓은 듯한데, 때때로 그 안에 단단히 웅크리고 있던 핵이 바깥의 비어진 그물 사이로 얼음기둥처럼 치솟는다. 특히 고음에서 웅산은 록도 재즈, 블루스도 아닌 지독할 정도로 독창적인 웅산만의 사운드를 발산했다. ‘청량리 블루스’에서의, 가슴에 소름이 돋을 것 같았던 음의 조각들을 ‘지극히 웅산적’이라 하지 않으면 뭐라 해야 할까. 갈 때는 ‘재즈’를 들으러 갔는데, 가서는 ‘웅산’을 들었다. 돌아오는 길 내내 귓가에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잠조차 오지 않았다. If you want me … Call me …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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