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하나의오페라,단하나의베토벤‘피델리오’

입력 2009-04-17 15: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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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리오
소프라노 나경혜-테너 한윤석-소프라노 이지영-피델리오 포스터-공연예술감독 김관동-지휘 최승한.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피델리오
피델리오 포스터.

지금 내 책상 옆에는 한 장의 그림이 붙어있다. 음울한 어둠을 뚫고 한 줄기 창백한 빛이 사선으로 내리비춘다. 빛이 맞닿은 곳에는 녹슨 쇠사슬이 철창처럼 보이는 기둥에 아무렇게나 매어져 있다. ‘FIDELIO’라는 일곱 알파벳이 이 그림의 정체를 말해준다. 그 밑에는 조그마하게 ‘Ludwig van Beethoven’이 적혀있다. 그림은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의 포스터다. 입수하자마자 뭔가에 끌리듯 곁에 붙여 놓고는 하루에도 몇 번씩 눈길을 주고 있다. 왜 피델리오인가. 의문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카르멘도, 아이다, 나비부인, 마술피리도 아닌 피델리오. 어지간한 음악팬들조차 이름 정도만 들어봤을 피델리오의 공연은 적어도 이 나라 음악시장에서는 위험한 선택이다. ‘그래서 피델리오!’가 정답일지 모른다. ‘3류 오페라팬’을 자칭하는 기자조차 피델리오란 이름 앞에 어깨가 긴장될 정도니 제대로 된 마니아들이라면 어련할까. 피델리오는 지극히 베토벤적인 오페라다. 요즘 표현으로 치면 베토벤 시대의 초대형 블록 버스터였다. 합창단만 해도 120명이 동원된다. 베토벤은 이 작품을 10여 년에 걸쳐 세 번을 고쳐 썼고, 네 번이나 서곡을 다시 작곡했다. 피델리오는 단순한 ‘노래극’으로 접근할 만한 작품이 아니다. 일종의 종교의식과 같은 숭고함이 있다. 베토벤은 피델리오에서 자신의 오페라적 역량을 밑바닥까지 소진해 버렸던 것일까. 그는 피델리오를 끝으로 더 이상 오페라를 쓰지 않았다. 기록에 의하면 피델리오는 1805년 빈 극장에서 베토벤의 지휘로 초연된 이래 거의 공연되지 않다가, 그나마 어느 순간 무대사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요한 시몬스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다시 태어났다. 프랑스 갸르니에 궁에서 베일을 벗고 세상을 향해 포효했다. 베토벤의 유일무이한 오페라 피델리오의 화려한 귀환이었다. 피델리오는 18세기 스페인의 세비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형무소장 돈 피짜로의 비리를 폭로한 혐의로 불법 감금되고 살해 위협을 받고 있는 정치가 플로레스탄(테너). 남편을 지극히 사랑하는 아내 레오노레(소프라노)는 남장을 한 채 피델리오가 되어 간수의 부하로 위장한다. 숭고한 사랑과 정의의 승리. 레오노레는 플로레스탄을 구하고, 극은 장려한 해피엔딩을 향해 숨 가쁘게 질주해 간다. 무악오페라단은 2008년 6월에 창단한 신생 오페라단이다. 예술감독이 단장 또는 이사장직을 겸하는 일반적인 통념을 깨고, 전문경영인 김정수 제이에스 대표가 단장 겸 이사장, 표재순 전 세종문화회관 이사장이 예술총감독을 맡고 있다. 경영과 예술을 철저히 분리시켜 완벽한 시너지 효과를 얻어 보겠다는 실험이다. 연세대학교의 최승환, 김관동 교수가 각각 음악감독과 공연예술감독을 맡았다. 지난해 11월 무악오페라단은 창단 기념 첫 데뷔로 ‘라 트라비아타’와 ‘라 보엠’의 갈라콘서트를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렸다. 매년 1회의 정규 오페라와 1회의 갈라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그 첫 정규 오페라 작품으로 선택한 것이 이번 피델리오이다. 무악오페라단의 실질적 데뷔작이 될 베토벤의 피델리오는 그 동안 쳇바퀴 돌 듯 반복되어 온 국내 오페라 레퍼토리에 식상한 마니아들의 숨통을 틔우고, 입맛을 돋울 최고의 레시피가 될 것 같다. 피델리오를 봐야 할 정말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피델리오를 만날 수 있을까. 1막 2장의 ‘죄수들의 합창’이 이명처럼 울린다. 피날레 환희의 찬가 속에서, 베토벤이 웃고 있는 것만 같다. 소프라노 나경혜와 수잔 앤서니가 레오노레(피델리오)를, 테너 한윤석과 스티븐 해리슨이 프로레스탄을 맡는다. 지난 1월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내한해 황홀한 ‘와인 빛’ 음색을 들려주었던 소프라노 이지영이 마르첼리네로 등장하는 것도 기대감을 더한다. 음악감독 최승한 교수가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5월7~9일 8시, 10일 4시|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문의 영앤잎섬 02-720-3933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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