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베토벤바이올린소나타전곡연주

입력 2009-04-21 01:3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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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때론향기롭게때론폭풍처럼관객들과함께한‘위대한울림’
활을 잡고, 바이올린을 턱밑에 끼우는 순간 분위기가 달라졌다. 팽팽한 현의 긴장감. 떨림이 관중석을 압도한다. 1번 3악장 알레그로 비바체의 휘몰이가 한 바탕 지나가고 나서야 관객들은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연주가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관객을 향해 웃고 있었다. 19일 금호아트홀에서 있었던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독주회는 우리나라 음악사의 ‘위대한 도전’이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10곡)을 오후와 저녁 두 차례에 나누어 하루에 완주하는 이 기획은, 당연하지만 국내 최초의 도전이자 실험이었다.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오른 이성주는 이날 ‘소리도 얼굴처럼 예쁠 것’이란 망상을 초반부터 으깨 부수었다. 알레그로는 거침없이 일직선으로 달려 나갔고, 아다지오에서는 더 없이 무겁고 음울한 울림을 들려줬다. 5번 ‘봄’이 이렇게 향기로운 곡이었던가. 음악이 향기가 되어 내 몸에 스미는 것만 같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코를 벌름일 것 같다. 대장정은 9번 ‘크로이처’로 마침표를 찍었다. 크로이처를 화려하게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는 많다. 심지어 요염하게 연주하는 사람조차 있다. 하지만 이성주는 눈발을 헤치고 달리는 폭주기관차 같은 광기를 들려줬다. 완주 후 이성주 교수는 땀 배인 미소를 지으며 무대 위에서 말했다. “저와 함께 긴 하루 동안 도전하신 여러분 모두를 위해, 박수!” 이날, 베토벤이 지닌 10개의 얼굴을 보았다. 학창시절 음악실 벽에 걸려 있던 치통 앓는 듯한 베토벤의 얼굴만을 기억하고 있던 우리들은 얼마나 무지했던가. 그 깨달음을 선물해 준, 보랏빛 바이올린의 여신을 위해 박수를 되돌려 보낸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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