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브레이크]“안뛰겠다”이천수이번엔‘생떼’

입력 2009-06-29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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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천수을 바라보는 전남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토록 아끼고, 믿었던 제자에게 배신당한 박항서 전남 감독은 부상을 이유로 출전 엔트리에 오르지 못한 이천수의 마지막 모습을 되새기며 “마지막까지 그 친구가 힘겹게 한다”고 털어놓았다. 스포츠동아DB

원 소속 구단(페예노르트)과의 옵션 조항 때문에 갑작스럽게 소속팀(전남)을 떠나겠다고 선언, K리그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이천수가 ‘항명 소동’까지 벌이며 28일 포항전에 출장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부상을 이유로 포항전 엔트리에서 빠졌지만 실상은 출전을 종용한 코칭스태프에게 반기를 들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항서 전남 감독은 28일 포항전을 앞두고 어떻게든 이천수를 포항까지 데리고 와 상태를 살핀 뒤 엔트리 등록 여부를 결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전날(27일) 오전 훈련을 마친 이천수가 “사타구니를 다쳐 출전할 수 없다”며 코칭스태프에게 출전 거부 의사를 밝혔고, 이 과정에서 모 코치에게 꾸지람을 듣자 대들었다는 후문이다. 단단히 화가 난 박 감독도 이천수에게 곧장 2군행을 지시했다. 이같은 사실을 털어놓은 한 구단 관계자는 “이천수가 해당 코치에게 아직까지 사과 한마디 없었다”며 곤혹스러워했다.

이천수 때문에 전남 구단은 핵폭탄을 맞은 분위기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우물을 완전히 흙탕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꼴. 우선 박 감독부터 풀이 죽었다. 제자에게 배신당한 때문일까. 얼굴은 수척했고, 말도 정말 아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가장 중요한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다. “그 친구(이천수)가 끝까지 힘들게 하네요.” 실망과 배신감이 한껏 묻어났다.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랐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서운함이다.

박 감독은 스스로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지겠다고 했다. 당초 이천수를 영입하는데 구단이나 감독 모두 상당한 위험을 안은 것이 사실. 박 감독은 자신이 끝까지 책임지고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흘렀다. “구단이나 동료 선수들에게 감사할줄 아는 마음가짐이 중요한데”라며 말끝을 흐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친구가 날 스승으로 생각하는지 궁금하다”는 말에서 좌절감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선수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은 듯 싶다. 박 감독은 “선수단 분위기가 정상적이진 않겠죠”라며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분위기가 뒤숭숭한 것은 뻔하다. 이천수가 수원 삼성을 떠날 때도 선수들 사이에 말이 많았던 것을 상기해보면 이번에도 그 여파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팀 성적도 말이 아니다. 이날 포항전에는 용병 슈바, 웨슬리가 징계로 뛰지 못한 탓에 제대로 베스트 멤버를 짜기도 힘들어 보였다. 국내파로 출전 오더를 짰지만 극도로 약해진 전력은 어쩔 수 없었다. 포항에 패한 것은 당연지사요, 연패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 것도 자연스럽다. ‘배신의 계절’, 그 홍역을 전남이 어떻게 극복할지 두고 볼 일이다.

포항 |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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