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콰지’와‘서롤로’“노트르담은평생여운이남는뮤지컬”

입력 2009-08-02 16: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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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순창(29·콰지모도·왼쪽)과 서범석(39·프롤로)

뮤지컬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의 캐릭터와 배우의 이름을 묶어, 줄여 부르기를 선호한다.

헤드윅의 조승우는 그래서 ‘조드윅’으로 유명하다.

바꿔 말하면 이런 애칭을 갖고 있다는 것은 배우로서 대단한 영광이다.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해 연기와 노래를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한 마디로 ‘나는 사랑받고 있다’고 자부해도 좋다.

4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그러면서도 의외로 잘 알지 못하고 있는) 빅토르 위고의 고전 ‘노트르담의 곱추’ 이야기를 원작으로 삼은 프랑스 뮤지컬이다. 15세기의 파리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현대무용과 브레이크 댄스, 아크로배트를 겹겹이 칠한 21세기형 작품이다.

2005년과 2006년 오리지널 팀이 내한해 19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이후 우리나라 배우들이 출연한 로컬 버전이 2007년 지방 투어를 시작했다.

이번 서울 공연은 전국 10개 도시, 230여 회 공연, 33만 관객 동원의 종지부를 찍는 2년 대장정의 결정판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두 남자 주역을 맡은 서범석(39·프롤로)과 조순창(29·콰지모도)은 각각 ‘서롤로’, ‘순콰지’로 불린다. 사랑받고 있는 배우란 증거다. 서범석은 지난해 프롤로 역으로 제2회 대구뮤지컬어워즈 최고스타상과 제14회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올해는 라디오스타로 제3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대망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조순창은 반짝반짝 빛나는 신인이다. 노트르담이 지방 투어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주역에 발탁되는 행운을 쥐었다. ‘인터뷰 자체가 처음’이라며 딱딱한 모습이었지만 이내 “아하! 이런 분위기였군요? 괜히 떨었네”하고 긴장이 풀어졌다.

업계에서는 ‘프랑스 뮤지컬은 한국에서 안 먹힌다’라는 징크스가 있다. 그런데 노트르담만은 예외다. 무슨 이유일까?

“(범석) 우리 민족이 원래 동정심이 있잖아요. 초원이, 기봉이, 아다다, 영구처럼 소외된 캐릭터를 동정하고 좋아하죠. 그런 점에서 노트르담의 콰지모도는 일단 기본적으로 먹고 들어간다고 봅니다. 물론 음악도, 가사도, 춤도 훌륭하죠.”

조순창은 1999년 대학가요제 출신이다. 원래는 헤비메탈을 했다. 그를 눈여겨 본 OBS 경인TV사장을 지낸 주철환 당시 PD가 학전의 대표인 김민기를 소개했고, 대학로 학전 무대에서 모스키토에 출연한 것이 뮤지컬 데뷔였다.

“(순창) 엉망이었죠. 연기도 춤도 배워 본 적이 없으니. 조연출자가 ‘너 같은 놈하고는 하고 싶지 않다’라고 할 정도였어요. 상처를 받았죠. 한 1년 발버둥 쳤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2005년 서울예대에 들어가 새로 시작했다. 햄릿에 출연했는데, 라이선스를 갖고 있던 외국인 연출자가 그의 목소리에 홀딱 반했다. 곧바로 콰지모도 역이 주어졌다.

자고 나니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린 것 같았다.

“(순창) 부담이 크죠. 과연 내가 잘 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범석이 형이 예전에 블루사이공 때 ‘어느 자리에서건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면 빛이 날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나요.”

“(범석) 하하! 내가 그런 말을 했냐?”

서범석은 너무도 인간적인(그래서 못 돼먹은) 신부 프롤로에 ‘말뚝’을 박으며 여러 콰지모도와 호흡을 맞춰 왔다. 옆에서 지켜보면서 느낌이 남 달랐을 것 같았다.

“(범석) 김법래는 연륜이 있었죠. 열정적인 콰지모도. 원래 성악도라 맑은 소리인데, 걸걸한 콰지모도를 내기 위해 자기 목소리를 버려가면서 연습했죠. 콰지모도가 갖고 있는 울분, 광적인 모습 표출은 기가 막히는데, 카리스마가 너무 강해서 호소력이 좀 묻히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이런 말해도 되나? 흐흐. 윤형렬은 타고난 콰지모도의 목소리를 갖고 있죠. 소리에 수줍음이 숨어 있어요. 한 마디로 동정심이 가는 목소리입니다. 순창이는 밑바닥 인생이 배어 있는 깊은 소리를 가졌어요. 아주 적격이죠. 생긴 것 자체가 콰지모도스럽잖아요. 괴물틱하면서 .”

“(순창) 형, 그거 칭찬이야?”

“(범석) 흐흐, 다른 애들은 분장 지우면 멀쩡하게 잘 생겼지만, 얘는 분장을 안 해줘도 될 정도니까. 이 친구는 덧니도 있어요. 외면만 보면 최고의 콰지모도죠.”

무명 시절 서범석의 혹독한 연습 이야기는 유명하다.

“(범석) 24세에 제대하고 뮤지컬을 하겠다고 나섰죠. 한국무용, 현대무용, 재즈댄스, 발레… 6개월 정도 트레이닝을 심하게 했죠. 하루 9시간씩 춤을 췄습니다. 하늘 노란 걸 두 세 번 보니까 스트레칭이 되더군요. 코러스 생활을 20편 넘게 하다보니 이상하더라고요. 왜 나한테는 배역을 안 줄까. 그 이유를 나중에야 알았어요. 이게 댄스컬이 아니라 뮤지컬이잖아요. 노래를 해야 하는구나. 바보였죠.”

그래서 노래 연습을 또 하루 9시간씩 했다.

연습실을 구할 돈이 없어 중고차를 한 대 샀다. 운전석에 앉아 앞 유리창을 침 범벅으로 만들어 가며 노래를 했다.

순콰지의 보이스 컬러는 극단적인 애호가 층을 형성하고 있다. 맑고 깔끔한 목소리를 선호하는 요즘 뮤지컬 계에서 그는 탁성을 주무기로 한다.

“(순창) 제가 임재범 팬이었거든요. 뮤지컬에 입문하니 이런 목소리가 없더라고요. 간간이 악역으로 살고 있었는데, 콰지모도가 기적처럼 저를 찾아 온 거죠. 싫어하는 분들도 많아요, 하하! 제가 촌놈이라 목소리도 좀 촌스럽죠.”

“고향이 어디신데요?”

“(순창) 제 이름이 순창인데, 집도 전라도 순창입니다.”

“(일동) 우하하하!”

서범석의 프롤로는 후배들에겐 넘보지 못할 벽이다. 관객들은 무대에서 그가 뿜어내는 카리스마에 전율하고 만다.

“(범석) 저는 제가 하는 걸 못 봐서. 가끔 영상을 보면 섬뜩함이 있긴 하더라고요. 그냥 전 솔직하게 합니다. ‘프롤로’하면 당시 절대 권력과 기득권의 상징. 뭐 이런 얘기들 많이 하는데 전 그저 ‘프롤로도 사람이다’라고 접근하거든요. 연기를 하면서 ‘지금 프롤로의 마음은 이럴 것이다’하지요. 콰지모도의 머리에 손을 얹고 ‘가서 에스메랄다를 납치 잘 해 와라’하고 걸어가면서는 속으로 ‘내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납치를 해 온다면 그 뒷일은 어찌할 것인가’ 걱정하는 겁니다.”

대본에 없는 대사를 마음속으로 연기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과연 서범석이다 싶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웃고 즐기다가 머리를 비우고 나오는 작품이 아니다. 모처럼 극장을 찾는 관객들을 위해 감상 포인트를 물었다.

“(범석) 한 시간이 즐거운 뮤지컬이 있고, 하루가 즐거운 뮤지컬이 있습니다. 한 달이 즐거운 뮤지컬도 있습니다. 노트르담은 평생 여운을 갖고 갈 수 있는 작품 같아요. 옛날 이야기지만 그 속에 인생이 담겨 있고, 콰지모도와 프롤로가 아닌 내가 들어 있습니다. 편히 오셔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셨으면 합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ND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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