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재즈가귀에감긴다

입력 2009-09-23 17: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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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싱어 웅산, 재즈밴드 윈터플레이. 스포츠동아DB

가을이 문턱에서 손짓을 한다. 가을은 재즈가 귀에 감기는 계절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물처럼 섞이는 신비한 음악이 재즈지만, 가을의 울림은 각별하다. 초점이 정확히 맞아 떨어진 사진처럼 선명하다.

마포아트센터가 10월 20일부터 한 주일간의 재즈데이를 연다. 2009 MAC 재즈페스티벌로 명명된 이번 시즌에는 총 7개 팀이 무대에 오른다. 하루하루가 재즈팬들에게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굳이 재즈팬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재즈에 대한 호기심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공연들이다. 재즈의 문 앞에서 서성일 필요없이,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만이다.

23일에는 유러피안 재즈트리오다. 로맨틱한 재즈 사운드의 대명사로 불리는 그룹으로, 2003년 이후 매년 우리나라를 찾아 국내팬들에게도 친숙하다.
따뜻하면서도 멜랑콜릭한 연주가 일품이다. 정통재즈보다는 스탠더드 팝과 영화음악, 클래식 등 기존의 명작들을 ‘유러피안 재즈화’시킨 연주가 주특기이다. 재즈에 대한 불편한 기억(?)이 있는 이들에 특히 권하고 싶다.

국내 재즈보컬의 여왕 웅산은 21일에 만날 수 있다. 그녀의 허스키한 중저음은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마력이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4집 음반 수록곡을 중심으로 노래한다.
편안하고 아늑하면서도 웅산만이 연출할 수 있는 나른한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각오할 일은 한 번 빠져들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 힘들다는 것.

22일은 윈터플레이가 나선다. 겨울에 어울릴 듯한 이름이지만 가을에 듣기에도 최고다. 이주한의 트럼펫, 최우준의 기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지는 공연. 윈터플레이는 한국 재즈의 희망이자 자랑이다.

24일 ‘백 개의 황금손가락’이란 타이틀의 공연이 눈을 끈다. 한 사람이 열 개의 손가락을 갖고 있으니, 백 개면 10명의 피아니스트가 등장한다는 얘기다. 고희안, 민경인, 배장은, 송준서, 송영주, 이지영 등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재즈 피아니스트들이 대거 출연해 금빛 손가락의 경연을 펼친다. 테마는 재즈 피아니스트의 전설 ‘빌 에반스’로 정했다.

25일 파블로 지글러 트리오(탱고 연주팀으로 피아졸라의 적자라고 불린다)에 이어 페스티벌의 끝은 토미 엠마누엘이 맺는다.

27일에 등장하는 토미 엠마누엘의 또 다른 이름은 ‘공인 기타연주자’. 전설적인 기타영웅 쳇 에킨스가 토미의 연주를 듣고 자신에게 주어졌던 ‘공인’ 칭호를 그에게 물려주었다는 에피소드는 꽤 유명하다.

쳇 에킨스는 생전 토미 엠마누엘에 대해 ‘현존하는 최고의 핑거스타일 연주자’라고 평하기도 했다. 호주판 롤링스톤지에서 2년 연속 ‘베스트 기타리스트’로 선정됐고, 4장의 플래티넘 앨범과 3장의 골드앨범을 냈다.

이번 페스티벌에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10월 20일, 페스티벌의 문을 활짝 열어줄 예정이었던 재즈 피아니스트 에디 히긴스가 지난 8월 31일 폐암으로 타계해 공연이 취소되어 버린 것이다.
지난 해 1회 페스티벌에도 출연해 780석 전석을 매진시켰던 그의 연주를 다시 들을 수 없다는 것은 비극이다.

에디 히긴스의 빈 자리를 메워야 할 남은 팀들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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