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작가는 자신을 ‘숫기가 없고, 말을 잘 못 하고,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숫기와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나이에 비해 한결 젊어 보이고(40대처럼 보인다), 미남이고, 잘 웃었다.
손님을 위해 방금 사다 놓은 듯한 캔커피를 스윽 밀고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맛있게 한 모금을 빨았다.
“우리 민족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여기서 출발한 거죠.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조상이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정도인데, 너무 가깝잖아요. 우리가 ‘반도에 웅크려 살기 전에(그는 이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활약했던 위대한 인물을 생각해 보니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등 대개 군인들이더군요. 그리고 그 위로 올라가니 치우가 있었습니다.”
박 작가는 동북아시아의 역사를 ‘동이족’과 ‘화하(華河)족’의 투쟁사라고 설명했다.
“‘중화’를 앞세운 화하족은 사실 싸움에 취약했습니다. 일방적으로 북방민족에게 깨졌지요. 그러나 지금의 결과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끊임없이 찢어지고 흩어졌다면, 화하족은 끈기 있게 모든 것을 흡수했습니다. 저는 ‘치우대제’를 통해 ‘우리 민족은 반도 안에 살고 있는 우리들만이 아니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요. 북방에 존재했던, 고구려 영역 안에 있던 모든 족속을 다 우리 민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하 작가가 작품 구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허영만 화백과 함께 작업한 ‘비트’가 박 작가의 대표작이다.
하지만 그 밖에도 많은 작품들이 한국만화사의 불후의 명작으로 남아 있다. ‘짜장면(허영만 그림)’, ‘야수라 불리운 사나이(장태산 그림)’, ‘건달본색’, ‘촉산객’, ‘검신검귀(이상 이재학 그림)’, ‘빅리거(김일민 그림)’ 등 그는 30여 년에 걸쳐 80여 작품을 썼고 거의 모든 작품이 히트했다.
국내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의 속살을 현실적으로 파헤친 야구만화 ‘빅리거’의 작가답게 그는 뼛속까지 야구로 들어찬 야구광이기도 하다.
“아주 어릴 적부터 야구를 좋아했죠. 김우열 씨가 해병대 있을 때부터니까. 김응룡 감독 한일은행 시절, 김인식 감독이 한일은행에서 공 던지는 것도 봤어요. 야구장에서 거의 살았죠. 사회성이 별로 없어서 유일한 낙이 야구장에서 야구 보는 거였습니다. 두산팬인데, 한때는 1년 65게임 중 60게임 정도를 야구장에서 봤어요. 그것도 본부석에서.”
박 작가가 “내 이름부터가 야구 좋아할 이름 아니냐”며 웃었다. 박하 작가의 본명은 ‘박찬호’다. 실제로 그는 “당신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투수가 있더라”는 말을 듣고 한양대시절의 박찬호 경기를 보러 가기도 했다.
박 작가는 업계에서 작가주의 정신이 투철한 사람으로 소문 나 있다. 한 마디로 깐깐한 작가란 얘기이다. 작품에 대해서만큼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 만큼 책임감도 투철하다.
“그런 말을 듣긴 하지만 사실 ‘작가정신’ 같은 것을 의식해본 적은 없어요. 작품에 대해 제 세계관, 인간관이 엄연히 있는데 그걸 수정하자고 하면 용납이 안 되는 거죠. 그걸 작가정신이라고 할 수 있나요? 뭐, 제가 워낙 타협성, 사회성이 없기도 하지요. 안 되는 사람은 죽어도 안 되더라고요. 하하!”
박하 작가의 야심작 ‘치우대제’에 믿음이 가는 이유는 그가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깐깐한’ 작가일지 모른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박 작가의 153km 짜리 시원시원한 ‘광필치’를 기대한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 | 김종원기자 wo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