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기자의 베이스블로그] SK-롯데, 극과 극 협상전략

입력 2010-01-26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 SK의 협상전략은 키신저식(式)입니다. ‘외교의 귀재’로 통한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협상술인데요. 일체의 신경전을 배제하고, 속임수 없이 이쪽의 카드를 처음부터 전부 내밀어 보여주는 것입니다.

SK엔 연봉 미계약자가 몇 있습니다. 연례행사와 같지요. 다만 SK의 제시액은 몇 번을 만나도 처음과 같습니다. 구단의 고과대로 책정된 액수 그대로죠.(팀 내부 연봉조정위원회에서 가중치를 두는 정도가 예외입니다) 가령 연봉 5000만원 선수가 1억짜리 평가를 받았다고 치죠. 그러면 초장에 8000만원을 제시해 줄다리기하다 선심 쓰듯 9000만원에 계약할 수도 있지만 그런 꼼수는 쓰지 않겠다는 거죠.

진상봉 운영팀장이 고지에서 미계약 선수를 만나고 있는데요. 선수들이 ‘단장 나오라’고 하지만 절대 응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바뀐다고 원칙이 깨져선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이죠. 민경삼 단장은 “버틴다고 올려주면 (구단을 믿고) 먼저 찍는 사람은 뭐가 되냐?”고 반문합니다. 채병용에 대해서도 삭감안을 관철시킬 방침입니다. 그래도 SK 선수 단 한명도 연봉조정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 롯데 선수들의 협상전략은 살라미식(式)입니다. 북한이 잘 써먹는 수법으로 한 꺼풀씩 끝없이 벗겨먹는 수법입니다. 구단이 그럴만한 틈을 주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간판타자 이대호는 삭감 통보를 받았습니다. 선수의 억울함은 차치하고 나름의 1년간 축적한 고과 시스템에 의거했을 텐데 여론의 비난이 빗발치자 슬그머니 동결을 제시하더니, 나중엔 올려줬습니다. 어떤 롯데 선수가 “먼저 찍은 선수만 바보됐네요”라고 허탈해하는 심정에 공감합니다.

이정훈의 케이스는 더 가관인데요. 역시 첫 제시액보다 600만원을 슬쩍 올려 조정신청에서 이겼습니다. 선수와 구단이 협상이 아닌 전쟁을 한 꼴입니다.

# 이 ‘난장’으로 롯데는 돈 몇 푼을 아꼈을지 모르겠지만 선수와의 신뢰가 깨졌습니다. 내년부터 롯데에서 야구 좀 하는 선수라면 고분고분 찍을까요? 현실적으로 연봉은 그룹에서 내려 보내는 책정액 안에서 총액을 나누는 방식일 텐데 결국 힘없는 선수들의 몫이 더 줄어들 개연성이 높아졌습니다. 또 실추된 이미지는 어떡하고요? 삼성하면 ‘관리’, LG하면 ‘인화’가 떠오르는데 자칫 롯데하면 야구단 때문에 ‘인색’이란 글자가 연상되면 어쩌지요?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