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화 벗고 14년 만에 월드컵 심판 인생역전”

입력 2010-05-11 1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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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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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 국가대표를 생각한다. 피나는 노력 끝에 태극마크를 달면 ‘월드컵 출전’이라는 더 큰 목표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는 정반대였다. 축구를 그만두면서 국가대표가 됐고 그 때부터 월드컵의 꿈을 키웠다. 그리고 축구화를 벗은 지 꼭 14년 만에 ‘꿈의 무대’ 월드컵을 밟는 영광을 안게 됐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남아공월드컵 심판으로 뽑힌 정해상(39) 부심을 5일 전남-전북의 K리그 경기에 앞서 광양에서 만났다.

● 선수로 못다 이룬 꿈 심판으로

그도 학창시절에는 공 좀 찼다. 대구공고 시절 U-17 대표 상비군까지 지냈다. 그러나 선수로서 운명은 거기까지였다. 대학교 입학 후 점점 출전기회가 줄더니 아예 벤치신세가 됐다. 감독과 코드가 영 맞지 않은 탓이었다.

축구를 관두기로 했다. 아버지가 마음에 걸렸다. 그가 축구를 한다고 했을 때 가장 반대하고도 두각을 나타낸 뒤에는 누구보다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는 국제심판이 되던 해에 미처 못 보시고 돌아가셨어요. 월드컵에 가는 걸 아셨다면 가장 기뻐하셨을 텐데….”

선수를 그만두고 우연히 교내 체육대회에 나갔다가 심판을 보던 선배의 카리스마에 반해 그해 겨울 곧바로 3급 심판 자격증을 땄다.

● 주심에서 부심으로



그는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축구심판으로 활동했다. 입문 후 2년 만인 1998년 1급 자격증을 땄고 아마추어 심판들의 ‘꽃’이라 불리는 전국대회 배정을 받은 뒤 인생을 바꿔놓는 일이 벌어졌다.

“다른 대회와 특별히 다른 건 없었어요. 그런데 후반 딱 10분을 남겨 놓고 체력이 달리는 거예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죠.”

이후 12년 동안 그는 단 하루도 운동을 빠진 날이 없다. 술과 담배는 입에 대지 않는다. 그리고 철저한 관리와 함께 자신감을 얻으며 오기가 생겼다.

‘선수로서는 못 된 국가대표, 심판으로 한 번 해보자.’

기회는 다소 엉뚱하게 찾아왔다. 원래 주심이던 그는 2003년 K리그 부심을 맡게 됐다. 부심으로 프로에 입문해 경력을 쌓은 뒤 주심으로 가는 게 관례이던 시절. 그러나 이후 주·부심 전공을 나누는 쪽으로 규정이 바뀌었고 그는 그렇게 K리그 부심이 됐다.

● 한국인 첫 FIFA 주관대회 결승

좌절이 찾아왔다. 2003년을 마치고 K리그 18명 부심을 대상으로 점수를 냈는데 그는 뒤에서 2~3번째였다. 최하위 3명이 2군으로 내려갔다.

“그만두려고 했죠. 너무 자존심도 상하고…. 주위 분들이 좌절하기에는 젊다고 많이 북돋워주셔서 힘을 냈죠.”

전화위복이 됐다. 2004년 2군 부심으로 활동하면서 9월 국제심판 시험을 봐서 합격했다. “권종철(현 축구협회 심판위원장) 선배가 저에게 가능성이 보이니 부심으로 월드컵에 도전해보라고 격려해주셨어요. 저요? 그냥 콧방귀만 뀌었죠. 그냥 후배 기 살려주는 거겠지 하고.”

2007년 한국에서 열린 U-17 청소년월드컵을 통해 처음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대회 배정을 받았다. “정말 다르더군요. 비행기 좌석부터 공항에 픽업 딱 나와 있고…. 호텔도 그 지역에서 최고급에 묵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게 바로 FIFA 국제심판의 예우라는 걸 느꼈죠.”

정 부심은 그 때부터 니시무라 유이치(주심), 사가라 토루(부심·이상 일본)와 호흡을 맞췄고 그 대회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 FIFA 대회 결승전에 배정됐다. 결승전이 끝난 뒤에는 블래터 회장에게 직접 결승전 메달을 받았다. FIFA 주관대회는 결승과 3,4위전 심판에게 메달을 수여한다.

2009년 이집트 U-20 청소년월드컵 때도 3,4위전 부심을 봤다.

“국제심판 중에서도 FIFA 메달 두 개 받은 사람 드물걸요?”

● 초심을 잃지 않겠다

그는 치열한 경쟁 끝에 이 자리에 섰다.

FIFA는 엄중한 테스트와 관리를 거쳐 딱 90명에게만 월드컵 휘슬을 맡긴다. 정 부심은 지난 4년 간 엄중한 관리를 받았고 월드컵 심판 후보군에 포함된 2008년부터는 눈에 보이지 않는 피 나는 경쟁을 통과해야 했다.

“월드컵을 한 달 앞두니 1급 따고 처음 전국대회 나섰던 경기와 3년 전 FIFA 주관대회에 섰을 때가 떠올라요. 거창한 목표나 이런 것은 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맡은 경기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 밖에 없어요.”

● 정해상 부심 프로필

생년월일: 1971년 6월 1일
학력: 함양중-대구공고-창원전문대
주요경력
2005 ~ K리그 전임심판
2004 ~ 국제심판
수상경력
2009년 대한축구협회 남자 최우수심판상(부심)

광양|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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