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싱Q|강단에 선 스타들] 이봉원 “개그맨의 조건, 오버 아닌 기본”

입력 2010-05-17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개그연예학부 교수로 강단에 서는 개그맨 이봉원. 오랜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강의는 전공학생은 물론 성우·연출 등 제2전공을 하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연예인 스타 중에는 무대를 떠나, 혹은 무대와 동시에 강단에 서는 이들이 뜻밖에 많다.

연예인에 대한 직업적 선호가 높아지면서 연예인을 양성하는 전문 교육기관들이 생겨나게 되고, 아울러 연예인 교수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강단에 서는 스타들의 수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1년 365일 감사하지 않은 날이 단 하루라도 있으랴마는 마침 지난 15일은 스승의 날이었다.

더욱 각별한 의미가 더해지는 연예인 교수의 활동을 알아보기 위해 한국방송예술진흥원 교수로 재직 중인 개그맨 이봉원(47)의 강의실을 방문했다.

끼가 너무 많으면 노력 안 하고
카메라 앞에 서면 파울만 치죠
걸을 줄 알아야 뛸 수도 있기에
발성 연기 기본기를 채찍질해요

“왔니? 어서 자리에 앉아라.”

지각생 한 명이 머리를 긁적이며 문을 열고 들어오자 이봉원 교수가 별 내색 없이 맞아준다. 서울 대현동의 한국방송예술진흥원 305호 강의실. 여덟 명의 학생을 앞에 놓고 한 시대를 풍미한 개그스타 이봉원이 강의한다. 수는 얼마 안 돼 보이지만 학생들은 모두 개그맨 지망생들이다. 이들 중 제2의 박성광, 박지선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봉원은 “일단 ‘몽타주(얼굴)’는 다들 이미 개그맨”이라고 했다.

● 전공학생은 물론 성우·연출과 학생들에도 인기

이날 강의의 주제는 ‘아이디어 구성’. 교수는 하나의 상황을 던진 뒤 제자들에게 즉석에서 개그 아이디어를 요구했다.

“장소는 병원. 의사, 간호사, 환자, 보호자가 있다. 의사가 들어와 암을 선고한다. 여기까지가 기본 상황이다. 여러분 같으면 이 장면에서 어떻게 웃음을 주겠나?”는 식이다.

제자들은 풋내가 나다 못해 강의실을 급랭시킬 정도로 썰렁한 아이디어를 내놓기 일쑤지만 교수는 미소를 잃지 않으며 용기를 북돋아 주고 실수를 교정해 준다. 스승과 제자라기보다는 어쩐지 개그맨실 선후배의 워크숍을 보는 듯한 풍경이다. “기본부터 다지는 거죠. 발성과 연기를 먼저 가르쳐요. 그러고나서 스스로 아이디어를 꾸며서 직접 해보게 하죠.”

강의가 끝나고 교수실에서 이봉원 교수를 만났다. 그는 지난해 가을 한국방송예술진흥원에 개그연예학부가 신설되면서 전임교수로 부임했다. 이 교수의 강의는 인기가 높다. 전공학생뿐 아니라 성우, 연출과 학생들도 제2전공으로 이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온다. 이도 저도 아닌 학생들은 청강이라도 하고 싶어 강의실 문 앞에서 머뭇거린다. 이 교수는 “그냥 들어와서 들어도 되는데 …”라며 웃었다.

● “적극적인 학생이 가장 좋아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라고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실제로 하나씩 깨물어 보면 분명히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 제자도 마찬가지. 이 교수는 “적극적인 애들이 좋다”라고 말한다.

“오늘 강의를 들으러 온 아이들은 1학년이에요. 이제 막 시작한 거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들어와서 숫기없는 애들이 많아요.”

연예인 중에서도 ‘끼’가 가장 많아야 하는 개그맨이 ‘숫기’로 고민을 해서야 가능성이 있을까. 이 교수는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라고 했다. 믿기 어렵지만 이봉원 역시 숫기없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는 것. 약간의 끼만 있다면 반복학습을 통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오히려 너무 끼가 많으면 노력을 안 해요. 평소에는 까불대고 잘하는데 결정적으로 카메라 앞에 서면 안 되는 후배들 많이 봤죠. 치긴 잘 치는데, 안타를 못 치고 파울만 치는 겁니다.”

개그맨 교수님에 과목마저 개그연예학 수업. 무조건 재미있고 웃기는 강의일 것 같지만 이 교수는 “전혀 그렇지 않다”라며 정색을 했다. 그러고는 다시 계속 강조하는 기본론으로 말을 돌렸다. “항상 ‘기본을 지켜라’라고 강조합니다. 기고 나서 걷고, 그다음에 뛰어야죠. 요즘 후배들 보면 처음부터 그냥 뛰려고만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연기 경험없이 무대에서 개그 공연만 하다가 방송에 오니까 무조건 오버액션만 하는 거죠.”

● “대충 얼굴만 비치는 교수, 애들이 금방 알아요.”

이 교수도 요즘 ‘트렌드’인 연예인 교수의 한 명이다. 왜 연예인 교수가 부쩍 더 인기를 누리게 됐을까.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선망되는 직업 1위가 연예인이라잖아요. 전에는 주먹구구식으로 연예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죠. 학교에서 좀 웃긴다고 말을 들으면 개그맨 시험 보러 가고. 지금은 치밀하게 준비해야 하죠. 수요가 많으니 자연 체계적으로 연예인을 양성하려는 전문 교육기관이 많이 생겨났어요. 당연히 연예인 교수가 많아질 수밖에 없죠.”

연예인 교수가 장점만 있을 리 없다. 이 교수도 이 점에 대해 수긍했다. “학교 홍보를 위해 연예인 이름만 대충 걸어놓는 일도 없지 않았죠. 한 달에 한 번 슬쩍 얼굴 비추거나, 특강이라고 어쩌다 한 번 강의하고. 그런데 지금은 거의 없을 거예요. 요즘은 온라인 시대라 애들이 금방 알죠. ‘진짜 강의 하나요?’하고 묻고, 금세 다 퍼지고. 그런 곳은 아이들이 안 가죠.”

●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무대, 강단

지금은 강단에 선 스승이지만 그도 한때는 제자였다. 세상에는 ‘잘 가르치는 사람’과 ‘잘 배우는 사람’이 있다. 어느 쪽이냐고 물으니 이봉원은 “잘 배우는 쪽”이라고 했다. 배우는 게 더 재미있고,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배운다.

코미디 스승이라면 고 이주일이 있다. 그러고 보니 그는 데뷔 레퍼토리부터 이주일 모사였다. 고인은 생전 이봉원에게 “이놈 저놈 내 흉내 내는 놈이 많지만 그래도 네가 제일 똑같다”라고 인정했다. 이봉원은 “이주일 형님으로부터 참 많은 것을 물려받았다”라고 했다.

아마도 오늘 강의실의 학생들은 일평생 이봉원이 서 온 무대 중 가장 적은 수의 관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무대보다 이봉원은 열정적으로 연기하고, 재능과 경험을 쏟아냈다.

이봉원에게 강단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무대이다. 그에게 강의는 숭고한 연기요, 제자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팬들이다. 고 이주일로부터 물려받았듯, 그도 누군가에게 자신이 쌓아 온 것을 물려주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스승이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고독하고 숭고한 배우의 이름일지 모른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