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목동 SBS홀에서 열린 SBS 새 수목드라마 \'나쁜남자\'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한가인. 연합 [화보]3년만에 안방극장 복귀한 ‘품절녀’ 한가인
2007년 '마녀유희' 이후 3년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한 한가인은 "나는 신인 배우"라며 "이런 카메라 플래시 세례도 오랜만"이라고 그간 연기 갈증을 에둘러 표현했다.
19일 SBS 목동 홀에서는 새 수목드라마 '나쁜 남자'(극본 김재은 이도영 김성희, 연출 이형민)의 제작보고회 겸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한가인과 김남길, 김재욱, 오연수, 정소민 등 각자의 야망과 사랑을 위해 엮이는 남녀들이 그려내는 격정적인 멜로드라마이다.
한가인은 이 드라마에서 명문대 출신의 재원이지만 평범한 집안 출신이란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재벌가의 아들을 유혹하는 미술관 큐레이터 문재인 역을 맡았다.
오랜만에 대중 앞에 선 한가인은 걸 그룹 2NE1의 리더 산다라 박을 연상시킬 정도로 경쾌하고 발랄한 하이테크 패션을 선보였다. 올백으로 넘겨 묶은 머리에 검정 초미니 드레스를 입고 형이상학적 무늬가 들어간, 일본 유타카를 연상시키는 아트 컨셉트의 케이프를 걸쳤다.
한가인이 포토라인에 서자 소속사 제이원 플러스 엔터테인먼트의 김효진 대표는 긴장된 표정으로 기자에게 "어때? 예쁘지? 예쁘지?"라고 조급하게 물었다. 그녀를 안심시켜 줄 겸 "예뻐. 여기서 제일 예뻐. 최고야!"라고 답해주었다. 깎아 놓은 나무젓가락처럼 비현실적인 말라깽이 여배우들 틈에서 한가인은 제일 '사람'스러웠고 러블리했다.
포즈가 덜 과감하다고 생각했는지 행사 진행자가 "한가인 씨는 유부녀지만 남길 씨와 더 다정한 포즈를 취해 달라"고 주문했다. 한가인은 얼른 김남길의 팔에 팔짱을 끼고 '다정한 포즈'를 연출했다.
김효진 대표는 "에구, 또 유부녀 얘기"라며 "오늘은 남길 씨랑 나온 거니까 드라마 얘기만 하면 좋은데"라고 안타까워했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는 "배우는 배역으로 말하는 건데 유부녀 소리는 왜 해?"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그렇다. 드라마가 시작되면 그녀는 '배우 연정훈의 와이프'가 아니라 스턴트맨 건욱(김남길)과 재벌가 아들 태성(김재욱) 사이에서 고민하는 '재인'이 된다. 하지만 이날 참가자들은 김남길에게 "유부녀와 키스 연기한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을 집요하게 던졌다.
김재욱, 한가인, 김남길, 오연수, 정소민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사진제공 굿스토리 ☞ 사진 더 보기
▶ "한가인이 연기한 재인은 '스칼렛 오하라' 같은 여자"
재인은 가난하고 똑똑하고 예쁜 여자다. 사귀던 남자가 자신을 버리고 부잣집 여자와 결혼하자 상처를 단단히 받고 남자가 다니는 회사 해신그룹의 안방마님으로 들어갈 당돌한 결심을 한다. 우선 미술관을 경영하는 해신그룹 안주인 신 여사에게 접근한다. 신 여사의 총애를 받으며 그 집안 아들인 태성과 만날 기회를 노린다.
그러다 해신그룹 막내딸 모네(정소민)와 함께 있는 건욱을 보고 태성이라고 착각한다. 그런데 유혹하는 방식이 대단히 현실적이다. 건욱의 옷에 커피를 쏟은 인연(?)으로 그의 오피스텔에 가서 온갖 빨래를 다 해주고 청소를 한다. 그러면서 건욱에게 "제가 원래 똑 부러진다는 소리를 듣는데…"라며 자신을 홍보한다. 건욱이 가난한 스턴트맨이라는 걸 안 후에도 그에게 끌리게 된다. 머리는 태성인데, 가슴은 건욱에게 가 있는 셈이다. 이형민 감독의 말을 빌자면 재인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처럼 미워할 수 없는 '속물'이다.
한가인은 "기존에 사랑했던 남자에게 가난하다는 이유로 버림을 받아서 그 남자에게 복수하려고 부잣집 남자 태성을 이용하려는 거니까 사연이 있는 여자"라고 웃었다. 그녀는 "실제 가난하지만 재벌가에 시집가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는 분도 많으시잖아요?"라며 현실에 있을 법한 여자를 연기하겠노라고 강조했다.
한가인은 "원래 학교 다닐 때 공부를 곧잘 했었기 때문에 명문대 출신을 연기하는 데 지장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하기도 했다.
실제로도 재인과 비슷하냐고 질문하자 "저랑은 너무 달라요. 저는 돈이나 명예 보다는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사람이라 권력 이런 걸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데 곁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김남길이 "킥킥" 웃으며 분위기를 깼다. 한가인은 "김남길 씨는 진짜 나쁜 남자 그 자체"라며 눈을 흘겼다.
이번에 처음 호흡을 맞춘 김남길에 대해선 "이 역할은 남길 씨가 아니면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잘 붙는다"며 "처음 시놉을 보고 개인적으로 김남길 씨를 잘 모르던 상황이었지만 남길 씨가 가진 눈빛과 분위기가 정말로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가인은 2005년 4월 26일 중견 탤런트 연규진의 아들이자 동료 배우인 연정훈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 촬영 초반 눈가가 찢어지는 사고에 복통… 액땜 같은 사고
한가인은 촬영 초반 복통을 겪기도 했고 눈가가 찢어지는 사고를 당해 병원 신세를 졌다. 정신없이 진행되는 촬영 일정으로 몸에 무리가 가 지난달 30일 응급실을 찾기도 했다.
'나쁜 남자'의 제작사인 굿스토리는 SBS와 5월 방영하는 수목드라마 자리를 놓고 편성을 논의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대신 SBS는 8월 시작하는 9시대 월화드라마 시간을 제안했다. 그러다가 5월 26일 방영 예정이던 '나는 전설이다'가 주연배우 김선아의 하차로 촬영 일정이 연기되면서 그 시간대 자리를 차고 들어갔다.
한가인은 "방영일이 앞당겨져 빠듯하게 여러 신을 카메라에 담는 바람에 복통을 앓았지만 현재는 괜찮다"고 말했다.
이형민 감독은 한가인을 가리키며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다"고 칭찬했다. 그에게 "가인 씨가 예쁜 얼굴이 비해 연기력은 별로인 배우 아니냐?"고 물었지만 이 감독은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한가인의 연기에 대해 기대해도 좋다"면서 "욕심 많고 분석력 뛰어나다"고 거듭 칭찬했다.
한가인은 이에 대해 "제가 원래 욕심이 많은 편이고 승부 근성도 강한데 그게 드러내기 시작하면 너무 과하게 보일까 봐 숨기고 사는 편"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하는 작품이고 그 사이 저도 나이가 들었고 욕심이 나긴 해요. 시청자들이 최대한 공감 가도록 집중해서 연기하고 있어요."
드라마 ‘나쁜남자’의 주인공 김남길(왼쪽)과 한가인. 둘은 이 드라마에서 비운의 사랑을 나누는 연인으로 호흡을 맞춘다. 사진제공 굿스토리
▶ "방송 날짜 다가오니 잠도 안 오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거머쥔 배역이기에 무거운 촬영장 분위기를 띄우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의외로 김남길 못지않게 장난기를 발휘한다고. 촬영하다 지칠 때면 장난을 치고 농담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어 좋다고 '장난 예찬론'을 펴기도 했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 태성 역의 김재욱이 한가인 뒤에 있는 '나쁜 남자' 현수막을 툭툭 치며 지나갔다. 연예계에서, 더구나 같이 드라마 찍은 연기자끼리는 친해지기 어렵다는 속설이 있는데 '나쁜남자' 출연진들은 팀워크가 좋아 보였다.
"재인은 기존의 제 이미지와 달리 강한 캐릭터예요. 원래부터 CF 속 이미지를 깨보고 싶은 생각이 많았어요. 시청자들도 재밌게 받아주시겠죠? 방송 날짜가 다가오니 잠도 안 오지만 좋은 연기 보여 드리도록 노력할게요."
20부작 미니시리즈 '나쁜 남자'는 '검사 프린세스' 후속으로 26일 오후 9시 55분 첫 전파를 탄다. 2011년 일본 NHK에서도 방영될 예정이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