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향나는 재일교포 3세지만 한국소프트볼국가대표다. 한국말을 하나도 모르지만 할아버지의 나라에 메달을 바치고 싶어 한다. 광저우(중국) |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태극마크 제의하자 한걸음에 OK…지고있던 필리핀전 3타점 V 선봉
23일 텐허 소트프볼필드에서 열린 한국-필리핀의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소프트볼 예선 풀리그 최종전. 4번 중견수로 나선 천향나(千香奈·21)는 0-3으로 뒤진 6회말 2사 만루서 귀중한 좌중간 3타점 3루타를 터뜨렸다. 천향나의 동점타에 힘입은 한국은 9회 ‘타이 브레이크’ 끝에 필리핀을 4-3으로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한국 소프트볼 역사상 아시안게임 첫 메달이 눈앞에 다가온 셈. 재일교포 3세로 한국을 준결승으로 이끈 천향나를 만났다.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께 메달 바치고 싶다!
저변이 넓지 않은 국내 여건상, 한때 소프트볼대표팀 대부분은 재일교포였다. 하지만 이번 대표팀의 주축은 국내파. 그녀가 유일한 재일교포다.
대한소프트볼협회는 이번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전력 강화를 위해 재일교포 선수 4명을 리스트에 올려 접촉했다. 천향나는 선뜻 “뛰고 싶다”고 했지만 나머지 세 명은 고개를 저었다. 아시아소프트볼연맹에는 ‘한번 대표팀에 뛴 선수는 다른 나라의 대표팀으로 뛸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
나머지 3명은 일본으로 귀화시 일본대표팀으로 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함이었지만 천향나는 달랐다. 10월 16일 대표팀의 일본 전지훈련 장소였던 후쿠오카로 직접 찾아가 테스트를 받은 것도 그래서였다.
대표팀 합류가 확정된 뒤 후쿠오카에서 훈련을 계속하고 있을 때. 그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했다.
대한민국대표팀으로 뛰게 된 가장 큰 동기였던 할아버지의 죽음. 후쿠오카 훈련을 접고 장례를 치른 뒤 그녀는 강원도 원주에서 치른 대표팀 마무리훈련에 다시 합류했다.
“메달을 딴다면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께서 참 좋아하실 것이다. 꼭 메달을 따고 싶다”는 게 그녀의 말이다.
○日 1부리그 실업팀에 입단 확정된 엘리트
팬퍼시픽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그녀는 이미 일본 소프트볼 1부리그 팀인 대호약품에 입단이 확정된 상태.
대학시절 평균 4할대의 맹타를 휘둘렀던 그녀는 내년부터 실업 무대에서 뛴다. 일본에는 1부리그 12개, 2부리그 16개 등 총 28개 실업팀이 있는데 대호약품은 그중에서도 명문으로 꼽힌다.
대표팀 여철훈 감독은 “발도 빠르고 타격 능력도 빼어나다”고 평가했다. 그녀가 소프트볼을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위에 언니가 한명 있는데, 언니도 소프트볼 선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소프트볼에 빠져들었고, 재능도 인정 받았다.
○한국은 내 마음 속 조국!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천향나는 동료들과 서툰 영어로 한두 마디 나누는 게 전부. 코칭스태프와도 영어로 소통한다. 대표팀 여건이 넉넉지 않아 그녀를 도와주는 통역은 물론 없다.
그녀는 “미팅을 할 때 한마디도 못 알아듣는 것 외에는 아무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사실 주변의 기대와 달리 이번 대회 초반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큰 대회에 처음 나와 떨리고 부담도 됐다. 그동안 컨디션도 좋지 않아 마음고생이 컸다”면서도 “6회 동점타를 때렸을 때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일본대표로도 갈 수 있었는데 한국대표팀을 선택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물었다. 혹시 아쉬움이 남지는 않느냐고. 그녀의 대답은 명확했다. “말 한마디 못 하지만 한국은 내 마음 속 조국이다. 전혀 후회 없다.”광저우(중국) |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