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현기자의 도하 리포트] ‘승부차기 쇼크’ 쓴 만큼 좋은 보약 될지니…

입력 2011-01-2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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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년 만에‘왕의 귀환’을 꿈꾸었던 조광래호의 도전은 막을 내렸다.

조별리그에서 한국에 좋은 성적을 안겨줬던 곳, 알 가라파 스타디움에서 120분 혈투를 마친 뒤 승부차기에서 무릎 꿇은 한국 축구. 막내둥이 손흥민(함부르크)의 두 눈에 맺힌 그렁그렁한 눈물을 보며 마음이 함께 짠해졌다.

바로 직전까지 황재원(수원)의 극적인 골을 보며 절로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했던 터였다. 평소 같으면 A매치를 보고도 심드렁한 표정으로 일에 몰두할 수 있었겠지만 상대가 영원한 라이벌 일본이었기에 마음에 걸린다.

아마 현장에 있던 모두가 마찬가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동안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작년 12월 서귀포 전지훈련부터 줄곧 아시안 컵 대표팀을 전담 취재하는 동안 내내 행복했지만 그만큼 쓰라림이 더해졌다.

한국을 떠나온 시간이 길어지고 지루하고 힘겨운 스케줄이 계속되자 잠시나마 답답하기 짝이 없는 도하를 떠나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내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마치 그 멍청한 생각 때문에 패한 것 같았다.

이곳은 술이 허용되지 않는 곳이다. 건조하고 모래 먼지가 많은 도시 곳곳을 구석구석 움직이다보면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간절하지만 일부 호텔의 외국인 전용 바, 외국인 클럽이 아니면 목을 축일 만 한 곳이 없다.

일본에 패한 뒤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그동안 절제했던 맥주 한 잔을 했다. 가격도 너무 비싸 딱 한 잔만 했는데도, 어찌나 취기가 빨리 올라오던지.

맥주 집의 대형 스크린에서는 황재원의 동점골 장면과 3명의 우리 키커들이 연이어 승부차기를 실축하는 장면을 거듭 되돌려 방영해주고 있었다.

일본의 까마귀 엠블럼이 달린 레플리카를 입고 실축 장면이 나올 때마다 환호하는 일본 팬들을 가만히 바라보자니 기분 역시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울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답답해할 필요도 없었던 것 같다. 비록 일본에 진 건 속상하지만 우리처럼 최고의 경기를 했던 팀도 없었다. 첫 경기, 이란 징크스를 모두 털어낸 한국 축구가 아닌가.

이청용이 근사한 말을 남겼다. 교체 아웃돼 미처 승부차기에 나설 수 없는 그였다. “너무도 아쉽고 서운하다. 하지만 승부차기 실패는 쓴 만큼 좋은 보약이 되리라 본다.”

그렇다. 한국 축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파이팅!
도하(카타르)|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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