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기자의 호기심 천국] 프로야구 선수·감독들이 고글을 쓰는 이유

입력 2011-03-0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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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조범현 감독. 스포츠동아DB

“건방져 보여” 80년대 선글라스 편견
2000년대 와서야 대중화

선수들 “멋있으니까”…감독들 “작전상”
감독들 상대팀에 시선은폐 효과 톡톡
자외선 차단 등 시력보호도
스타일 중시 선수들은 멋내기 소품
“불편하다” 경기 중 착용은 꺼려
스프링캠프의 막바지. 찬 바람을 피해 타국 땅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선수단은 따가운 햇살과도 싸워야 한다. 코칭스태프를 비롯해 대부분의 선수들은 고글과 스포츠글라스를 쓰고 훈련에 임한다. 고글 착용의 역사와 그 이유, 각 팀 감독의 고글 취향 등을 알아봤다.


○프로야구 초창기, 고글 착용은 편견과의 싸움

한국야구위원회(KBO) 김인식(전 한화 감독) 기술위원장은 “프로 이전에는 고글, 선글라스 착용이 아주 드물었다”고 말한다. 해외 스프링캠프가 보편화되면서 전파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순철(전 LG 감독) 해설위원 역시 “해태 시절 하와이에 전지훈련을 갔다가 고글을 처음 구입한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고글을 쓰려면 “건방져 보인다”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감수해야 했다. 이순철 위원은 “훈련 중에는 가끔 쓴 적이 있지만 당시 해태 분위기에서 실전에서는 엄두도 못 냈다”고 설명했다. 비단 규율이 강한 해태뿐만이 아니었다. LG 등에서도 한때는 고글을 아무나(?) 착용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선수뿐 아니라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야구발전연구원 이광환(전 히어로즈 감독) 명예원장은 “1980년대 후반 감독을 하면서부터 선글라스를 썼다.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감독은 내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햇빛 노출 때문에 난시가 생겨 순전히 눈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하지만 구단 최고위층 분들께는 좋지 않게 비춰졌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야구 관계자들은 “고글 착용이 선수에게까지 일반화된 것은 2000년대 이후”라고 전한다.


○고글 착용의 실용성…감독에겐 시선은폐 효과

고글 착용의 이유는 다양하다. 넥센 김시진 감독은 “시력 보호”를 꼽았다. 주간경기에서는 햇빛이, 야간경기에서는 조명이 눈을 쉽게 피로하게 만든다. 바람 때문에 눈물이 많이 나는 경우도 많다. 고글은 이를 막아준다.

7개 구단의 감독과 주요 선수들의 고글을 스폰서하는 루디 프로젝트(RUDY PROJECT) 관계자는 “2009년 눈 수술을 받은 두산 김경문 감독님의 고글 역시 자외선 차단효과에 공을 들인다”고 했다. 정동진 전 삼성 감독도 1992년 백내장 수술을 받은 이후 시력보호를 위해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야간경기 때나 흐린 날에는 공을 더 잘 보이게 하는 효과도 있다. 노란색, 오렌지색, 붉은색 계열의, 빛 투과율이 높은 렌즈는 그라운드를 좀 더 환하게 보이는 기능을 수행한다. 감독들은 보통 3~5개의 고글을 상황에 맞게 돌려쓰는데, 야간경기에서는 주로 이런 색들이다.

‘시선은폐의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넥센 이광근 수석코치는 “3루 코치로 나가 사인을 낼 때, 상대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편하다”고 했다. 역으로 상대 덕아웃의 움직임을 볼 때도, 예리한 눈동자를 감추는 것이 좋다. 마치 백조의 발놀림처럼, 렌즈 너머의 눈은 바삐 움직인다.

KIA 조범현 감독도 눈동자가 노출되는 것을 싫어한다. 루디 프로젝트 관계자는 “조 감독님은 빛 투과율이 낮고, 코팅이 된 렌즈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롯데 양승호 감독. 사진제공=롯데자이언츠




○선수들은 주로 실용성보다 스타일·패션

경기장 조명이나 햇빛 안으로 공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고는 하지만, 막상 경기 중에 고글을 쓰는 야수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투수의 경우는 고글의 반짝임이 타자에게 방해를 줄 여지도 있다.

실제로 2008년 당시 LG 김재박 감독은 두산 이재우가 쓴 고글의 테를 문제 삼기도 했다. KBO 조종규 심판위원장은 “렌즈도 심하게 반짝일 경우, 심판 재량에 따라 제재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특수한 경우다.

선수들이 경기 중에 고글 착용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불편함 때문이다. LG 서용빈 코치는 “아마 경기 중에 고글을 쓴 선수는 내가 최초인 것 같다. 당시에도 화제가 됐다. 스타일도 멋있게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주황색 렌즈라서 야간경기에는 더 공이 잘 보이는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처음 쓰면 불편한 점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기술이 발전해 자동차가 깔고 지나가도 깨지지 않고, 최대 90도까지 구부러지는 폴리우레탄 재질의 렌즈도 나왔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충격에서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대부분의 야구선수들은 아직 신소재 렌즈를 사용하지 않는다.

루디 프로젝트 관계자는 “선수들은 실용성보다 주로 패션에 초점을 맞춘다”고 했다. 고글렌즈의 색은 주로 유니폼과 맞춘다. 일부 야수들은 고글을 쓰지 않고, 모자에 걸쳐두기만 함으로써 멋스러움을 표현한다. 감독들은 점잖은 디자인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각자의 스타일도 있다.

두산 김경문 감독은 선수들이 쓰지 않는 ‘유니크한’ 고글로 차별화를 한다. 유니폼이 붉은 색 계열인 넥센 김시진 감독은 브라운 컬러를 선호한다. 다소 얼굴이 큰 편인 선동열 전 삼성 감독에게는 색깔보다 렌즈의 크기가 중요했다. 선 감독은 렌즈가 큰 고글을 써서, 얼굴이 다소 작게 보이는 효과를 노렸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고글이 잘 어울리는 것만은 아니다. 피트(fit)한 느낌을 주려면, 코의 생김새도 중요하다. 한 관계자는 “넥센 심재학 코치처럼 코가 큰 분들은 어떤 고글도 잘 어울린다. 반면, KIA 모 선수 같은 경우는 코가 낮아 고글을 (잘 맞게) 쓰는데 다소 애를 먹기도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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