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만 원짜리 키보드는 뭐가 다르기에 - 타입나우 솔리드 기계식 키보드

입력 2011-05-09 19: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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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독자 여러분 책상에 올려져 있는 키보드는 어떤 제품인가? 색상은 어떻고 어떻게 생겼으며, 키감은 어떠한가? 그리고 가격은 얼마인가? 결정적으로 하루에 몇 시간 동안 키보드를 사용하는가?

대부분 마지막 질문에는 비교적 명확한 답변을 할 것이다. 일반 사무직 종사자라면 적어도 하루에 5시간 이상 키보드를 두드린다. 본 리뷰어와 같이 늘 키보드는 끼고 살아야 하는 직종이라면 사용 시간은 더욱 늘어난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키보드에 지불하는 비용에 대단히 인색한 편이다. 휴대폰/스마트폰보다 사용자 손에 오랜 시간 가까이 있음에도 키보드 구매에 천 원 한 장 아까워하는 게 일반적이다. 왜 그럴까?

그 주된 이유로 자칭 ‘키보드 매니아’인 본 리뷰어는 ‘인식의 고정관념’을 꼽는다. 키보드를 컴퓨터 본체에 독립된 기기가 아닌 일개의 액세서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본체를 사면 늘 함께 딸려 오는 ‘덤’이나 ‘사은품’ 정도로 여기는 고정관념 말이다. 예전에는 충분히 그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다. 키보드 하나에도 사용자의 개성과 제조사의 장인 정신이 가미된 제품이 주목을 받는 시대다.

이처럼 키보드(마우스도 마찬가지)는 사용자의 개성이나 습성, 성향 등이 반영될 수 있기에 형태/종류/모양/구성품 등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컴퓨터 관련 부품/기기 중에 몇 천원부터 수십 만원까지 폭 넓은 가격대를 형성하는 유일한 제품이 키보드다.

이제 소개하는 키보드는 키보드 가격 순위에서 최상위에 위치하는 명실공히 최고급 제품이다. 공식 가격은 385,000원. 키보드의 명가 ‘아이오매니아(대표 한만혁, www.iomania.co.kr)’에서 순수 기획/제작한 타입나우 솔리드(TYPENOW Solid, 이하 솔리드)다. 3,800원짜리 키보드가 널린 세상에 38,000원도 아니고 385,000원이다. 이런 걸 돈 주고 사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혀를 찰 수 있겠지만 당신들은 결코 알 수 없다(알아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키보드에 대한 키보드 매니아들의 순정과 애정을...


38만 원짜리 키보드는 도대체 뭐가 다른지 체험하기 앞서,(농구황제 마이클조던과 동시대를 살았던 것에 감사하듯) 이러한 고품격 키보드를 접할 수 있게 해준 아이오매니아 관계자께 감사의 뜻을 전한다.

아이오매니아는 명실공히 국내 최대/최고의 키보드 전문 사이트다. 키보드 커뮤니티인 ‘키보드매니아(www.kbdmania.net)’과 함께 병행 운영되는 이 곳은 국내에서 ‘한 키질 한다’하는 매니아들이 모두 모여있다. ‘손가락 지문이 닳을 때까지... 두들길지어다!’라는 사이트 카피를 보더라도 이들에게 키보드는 입력장치 그 이상의 존재이다.


숫자 패드가 없는 텐키리스(tenkey-less) 키보드

앞서 언급한 대로, 솔리드는 아이오매니아에서 직접 기획, 설계, 제작까지 담당한 100% 한국 제품이다(물론 생산 자체는 다른 나라에서 했다). 더구나 오랜 시간 주구장창 키보드만 생각하는 진정한 키보드 매니아 업체가 제작했다는 점에서 더욱 믿음이 간다.

솔리드는 일반 형태의 키보드에서 오른편의 숫자 키 패드를 제거하여 컴팩트한 사이즈를 구현했다. 이게 사용자 또는 사용 패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데, 평소 액셀 등 수치 입력이 잦은 환경이라면 아무래도 사용하기 불편하겠다. 본 리뷰어처럼 글자, 숫자 입력비가 8:2 정도라면 쓸 만하다. 키보드 분야에서는 이런 제품을 일컬어 텐키리스(tenkey-less) 키보드라 부른다. 숫자 입력용 10개 키가 없다는 뜻이다.


텐키리스 키보드는 키보드와 마우스의 위치를 가깝게 유지할 수 있어 장시간 업무(또는 게임 플레이)에 도움이 된다(적어도 본 리뷰어에게는 그렇다). 책상을 차지 하는 공간도 적으니 그만큼 유용하기도 하다.

그 동안 일반 형태의 키보드만 접했다면 (꼭 솔리드가 아니더라도) 텐키리스 키보드도 한번쯤 사용해 보길 권장한다. 물론 앞서 말한 대로 숫자 입력 빈도가 높지 않다면 말이다. 생각보다 꽤 괜찮을 것이라 판단된다.

왜 38만원이나 하는가

텐키리스 형태라고 가격이 비싸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럼 솔리드는 무엇 때문에 30만원을 훌쩍 넘는 걸까? 주된 이유는 키보드를 구성하는 원자재에서 찾을 수 있다.


1) 탄탄한 몸매와 육중한 무게


솔리드는 이름 의미 그대로 매우 단단하고 견고하다. 키를 제외한 몸통 전체가 통 알루미늄으로 제작됐기 때문이다. 얄팍하게 가장자리나 특정 부분만 덧댄 것이 아니라, 내장, 외장, 보강판(키보드 내부 바단판) 등 모두 ‘통’알루미늄으로 처리했다. 애플의 맥이나 맥북 등의 노트북에 적용된 CNC 가공법이다. 즉 부분별로 나뉘어진 철판을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몸체를 통으로 뽑아낸 것이다.


그래서 무게도 2kg에 달한다. 성인 남자라도 한 손으로 들기에 버거울 정도다. 그만큼 책상에 올려 놓으면 타이핑 시 조금의 움직임도 허락치 않는다. 일부러 움직이려 해도 마찬가지다. 특히 바닥에 있는 고무 스탠드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2kg의 하중으로 누르고 있으니 당연하다. 몸체가 이리 견고하니 좌우로 비틀어도 꿈쩍도 않는다.

전반적인 외형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다. 알루미늄 소재지만 메탈 재질의 거친 느낌을 잘 살렸고, 화려하거나 튀지 않는 디자인을 유지하여 고가의 키보드 임을 무리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검정색 바디와 잘 어울리도록 오렌지색 컬러를 키보드 내부 보강판에 입혀, 키보드를 위에서 내려다 보면 검정색과 괜찮은 보색 대비를 이룬다.



2)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키캡 교체

또한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주요 키캡을 교체해 색상을 바꿀 수 있도록 한 점도 눈에 띈다. 솔리드에는 esc 키, Ctrl(컨트롤) 키, Alt(알트) 키, Shift(시프트) 키 등을 교체할 수 있으며, 색상도 빨간색, 파란색, 녹색, 하늘색 등으로 다양하다. 키캡을 쉽게 뺄 수 있도록 리무버(remover)도 함께 제공된다(단 시프트 키는 길이 때문에 리무버로 뺄 수 없다).


본 리뷰어는 esc 키(빨간색)와 Ctrl 키(빨간색), Alt 키(하늘색)을 교체했다. 검정색의 다른 키들과 확연하게 대비되어 색상의 조화를 이루는 듯하다. 일반 키도 얼마든지 교체가 가능하다. 아이오매니아에서 판매하는 기계식 키보드 키캡을 구매해 기존 키캡을 대체하면 된다. 화살표 키나 백스페이스 키, F1~F12의 펑션 키 등을 색상에 맞춰 교체하면 좋을 듯하다.


이외에 캡스락 키와 스크롤락 키는 키캡에 푸른색 LED가 표시되도록 하여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키보드에서 가장 중요한 키감은 어떨까? 비싼 만큼 탁월한 키감을 보이긴 할까?
솔리드는 기계식 키보드다. 기계식 키보드에는 각 키마다 독립된 ‘스위치’가 들어가는데 솔리드에는 체리(Cherry) 사의 갈색축 MX 스위치 87개가 적용됐다. 이 스위치가 적용된 일반 기계식 키보드가 10여만 원 선에 판매된다.


3) 기계식 키보드 특유의 경쾌하고 또렷한 키감

키 스트록(key stroke, 타건(打鍵))은 상당히 명쾌하고 선명하다. 기계식 키보드 특유의 찰칵거림으로 리드미컬한 타이핑이 가능하다. 또한 키 눌림이 정확해서 고속 타이핑 시에도 문자가 겹치거나 꼬이지 않는다. 다만 ‘넌클릭’ 스위치(타이핑 소음이 적음)라도 타이핑 시 소음은 어느 정도 발생한다. 일반형 멤브레인 키보드보다 약간 큰 소음이다. 주변 사람들이 불쾌할 정도는 아니다.

본 리뷰어가 느끼는 타이핑 감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 동안 동일한 갈색축 스위치가 적용된 기계식 키보드를 숱하게 사용해 봤지만, 솔리드는 타이핑 진동을 육중한 몸체가 흡수하기 때문인지 안정적이면서도 고른 타이핑이 가능했다. 키보드의 키감을 표현하는 데는 사용자의 주관이 강하게 적용되지만, 솔리드의 키감은 이를 접해본 누구라도 인정할 수준이라 할 만 하다.


장시간 타이핑에도 손가락이나 손목에 큰 무리가 없었던 점도 언급할 만하다. 본체 바닥에 스탠드를 돌려 끼워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데, 손목받침대를 사용하지 않아도 타이핑 시 자연스러운 손목 각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이 과연 38만원의 가치를 부여할지는 키보드에 대한 애정과 관심 정도에 따라 다르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정 예약 판매로 내건 200여 개의 솔리드가 며칠 만에 동이 났다는 사실은 그 가치를 인정한 사용자가 본 리뷰어 외에도 많음을 증명하고 있다.


손가락이 호강하는 상위 1%용 프리미엄 키보드

리뷰하는 동안 정말 손가락이 호강했다. 한자 키가 없는 게 흠이지만, 하루 수천, 수만 번의 타이핑 중에 고작 10번도 되지 않는 한자 입력에 때문에 이를 단점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 솔리드는 가만히 쳐다 보고 있으면 무슨 글이라도 타이핑하고픈 욕구를 갖게 한다. 참고로 오른쪽 Alt 키와 Ctrl 키를 한/영 전환, 한자 키로 사용하고 싶으면 키보드매니아 홈페이지에서 키 할당 레지스트리 파일을 내려 받아 실행하면 된다(http://www.kbdmania.net/download/hangul_switch.zip).

솔리드는 제품 포장에서도 프리미엄을 물씬 느낄 수 있다. 꼼꼼한 패킹 상태나 구매자의 이름을 새겨 넣은 작은 카드만 봐도 그렇다. 박스 역시 그냥 내버리기 아까울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고급 제품을 친히 영접하는 이들을 위한 작은 배려라고 할까.


전문 카레이서는 자신만의 핸들(원래는 ‘스티어링 휠’이 맞다)을 사용한다. 프로게이머도 컴퓨터는 아무 거나 사용해도 키보드와 마우스는 자신의 것을 고수한다. 그리고 이들이 사용하는 핸들이나 키보드/마우스는 일반 제품보다 몇 곱절 이상 비싸다. 하지만 가격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그들은 기꺼이 그 비용을 지불한다. 솔리드도 그런 측면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3천원짜리 키보드도 나름대로 쓸 만한 상황에서 30만원이 넘는 키보드를 선택하는 이유는 그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본 리뷰어가 이 리뷰를 통해 솔리드를 소개한 이유도 그와 다르지 않다. 솔리드 구매를 권장하려는 게 아니라, 이런 제품을 제작, 생산하는 그들, 그리고 큰 비용을 들여 구매하는 그들을 그저 이해하고 인정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글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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