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연 “난 엄마 뺏은 괘씸한 언니”

입력 2011-07-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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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연. 사진제공=KLPGA.

서희경과 연장 명승부…US여자오픈 우승
표현 인색한 동생 우승 축하전화
뒷바라지 독점…늘 미안하게 생각
모처럼 동생 만나면 신나게 놀것

대회 첫날부터 계속 도망 다니는 꿈
우승 부담 털어버리니 더 잘맞아

골프는 멘탈…연장전 즐기려 노력
마지막 퍼트 후 꿈 아닐까 얼떨떨
US여자오픈은 끝났지만 감동은 여전하다. 사상 최초로 한국 선수끼리 연장전을 치르는 명승부가 펼쳐지면서 골프팬들은 밤잠을 설쳤다. 서희경(25·하이트)과 연장 접전 끝에 우승컵을 들어올린 유소연(21·한화)은 아직도 벅찬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다. 13일 오전 스포츠동아와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마지막 퍼트를 끝내고 나서도 이게 진짜인지 꿈인지 구분이 안 됐다”라면서 떨리는 마음을 전했다.

○꿈자리 뒤숭숭, 컨디션도 엉망

유소연은 작년 처음 US여자오픈에 출전했다. 그 때도 KLPGA 투어 상금랭킹 상위에 올라 초대받았다. 당시 공동 25위라는 괜찮은 성적표를 받았다. 그때 미국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두 번째 US여자오픈 출전을 앞두고 가장 먼저 마음을 비웠다. 하지만 대회 전 불안함이 밀려왔다.

“목요일부터 대회가 열렸지만 금요일까지 이틀 동안 경기를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매일 밤 도망 다니는 꿈을 꿨다. 이상했다. 또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아침에 연습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경기를 하지 못한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컨디션도 회복할 수 있었고 시간을 벌었던 게 행운이었던 것 같다.”

유소연은 목,금 이틀 동안 경기를 하지 못하면서 토,일요일 36홀과 33홀씩 플레이했다. 강행군이었지만 컨디션이 나빴던 이틀을 피한 게 유소연에게는 행운이었다. 더군다나 월요일에는 16,17,18번홀 잔여 경기를 치른 뒤, 연장전에서도 같은 홀을 경기했다. 전날 경기를 끝내고 하루 쉰 다음 연장전을 치른 서희경보다는 조건이 좋았다.

○연장전 부담보다 즐기려 노력

서희경과의 연장전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2009년 중국에서 열린 오리엔트 차이나 레이디스오픈에서 연장전을 치러 그때도 유소연이 이겼다. 혹시 그때의 경험이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까.

“희경언니와는 2009년에 한 차례 연장전을 치렀던 경험이 있었다. 희경언니라서 특별히 부담되거나 편한 건 없었다. 그저 내가 US여자오픈의 연장전까지 올라갔다는 게 뿌듯했다.”

그러면서 긴장하지 않고 즐기자고 마음먹은 게 우승의 원동력이 됐다.

“꼭 이겨서 우승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 지금까지 잘 했으니 연장전에서도 즐기려고 노력했다. 한국에서는 연장전을 1홀 밖에 치르지 않았지만 US여자오픈은 3홀을 치러야 했기 때문에 그만큼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편하게 쳤다.” 골프는 멘탈 게임이다. 마음을 비우면 더 잘 맞게 되어 있다.

○미안한 동생과 신나게 놀고 싶다

유소연의 어릴 적 꿈은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골프선수가 되기 전까지 바이올린과 플루트 같은 악기를 다뤘다. 그러다 우연히 방과 후 취미활동으로 골프를 배웠고, 중학교 때 본격적으로 골프선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때부터 부모는 늘 유소연과 함께 생활했다. 대회라도 나가려면 자동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부모 없이 혼자 움직이는 건 불가능했다.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부모가 자신에게만 신경을 쓰다보니 동생은 혼자일 때가 많았다.

“동생에게 늘 미안했다. 동생이 엄마와 함께 있어야 할 시기에 늘 혼자 있었다. 동생이 펜실베이니아에서 유학 중인데 어제 우승 한 뒤에 ‘축하한다’며 전화가 왔다. 동생이 그런 표현을 잘 안 하는 편인데 자기도 엄청 기뻤던 것 같다. 내일 동생이 LA로 오기로 했다. 큰 선물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모처럼 동생을 만나게 됐으니 마음 놓고 신나게 놀고 싶다.”

○US여자오픈 우승에 자만하지 않을 것

US여자오픈은 한국 선수들과 인연이 깊다. 박세리(1998년)부터 유소연까지 5명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징크스도 있다. 박세리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이 US여자오픈 우승 뒤 추가 우승이 없다. 유소연도 이 부분을 잘 알고 있었다. 우승 뒤에도 비슷한 질문이 쏟아졌다.

유소연은 “기자회견 때도 ‘한국선수들이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부진하다’는 질문을 해왔다. 내 생각엔 아마도 US여자오픈이라는 큰 대회를 우승하면서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 것 같다”면서 “그래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그저 한 대회를 우승했다고 생각할 뿐이다. 부담을 버리고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해나갈 생각이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 LA에서 머물고 있는 유소연은 7월21일부터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리는 에비앙 마스터스까지 출전한 뒤 한국에 돌아올 예정이다. 그는 “당장 한국에 돌아가지 못해 아쉽다. 밤늦게까지 응원해준 팬들에게 감사하다. 돌아가서 더 멋진 모습 보여주겠다”고 고마움을 대신했다.

주영로 기자 (트위터 @na1872)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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