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김 “미국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끝모를 재판에 내 인생 멈춰”

입력 2011-07-21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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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간첩법 위반 혐의 소송중… 법원서 인터뷰한 스티븐 김

19일 미국 워싱턴 연방법원에서 5차 공판을 마친 스티븐 김 씨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미국 수도 워싱턴 시내 컨스티튜션가에 있는 워싱턴 연방법원 6층 재판정에서 19일 한국계 미국인 스티븐 김(김진우·44) 씨의 간첩법 위반 혐의에 대한 5차 공판이 열렸다.

콜린 콜라 코틀리 판사 주재로 열린 이날 재판은 오전 10시에 시작해 40분 만에 끝났다. 지난해 8월 27일 검찰이 김 씨를 간첩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뒤 5차례 공판이 열리고 1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도 유무죄를 다투는 본안 심리를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 검찰이 ‘기밀 정보’라는 이유로 사건 자료를 법정에 제출하지 않고 변호인에게도 넘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날도 “수사과정에서 압수한 증거 자료 가운데 국가기밀이어서 공개 못하는 서류들이 있다”며 “국가정보국(DNI) 산하 16개 정보기관으로부터 서류 공개 허가를 받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자료 공개를 거부했다.

재판이 차일피일 늦춰지면서 김 씨도 지쳐가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이날 재판 뒤 법원 앞에서 기자를 만나 재판이 장기화되는 데 대한 답답한 심경을 털어놨다.

“재판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처음 겪는 일이어서 1심 재판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릅니다. 제 인생은 여기서 멈췄습니다. 나의 공직 경력도 중단된 상태입니다.”

그는 “변호사 비용을 조달하느라 온 집안이 파산 상태”라며 “한국에 계신 부모님은 집을 팔았고 내가 40여 년 동안 모은 돈도 다 없어졌다. 변호사를 하는 누나와 매형이 모은 재산도 변호사 비용으로 써야 했다”고 말했다. 소송이 끝날 때까지 예상되는 변호사 비용은 150만 달러.

“최근에 성당에서 주관하는 행사에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철수했지만 처음에는 나를 따라다니며 감시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무실과 집만 왔다 갔다 할 따름입니다.”

보석금 10만 달러를 내고 가석방된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 씨는 법원의 이동제한 명령으로 집에서 25마일(약 40km)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집과 근무지인 로런스 리버모어 연구소 외에는 다른 곳으로 여행할 수도 없다.

그는 아직도 왜 자신이 간첩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다만 “외교안보 분야에 취약한 오바마 행정부가 공무원 기강을 다잡기 위해 정보 유출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만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그의 사건은 워싱턴포스트 대기자 밥 우드워드가 ‘오바마의 전쟁’ 집필 과정에서 정보를 습득해 공개한 케이스와 확연히 대비된다.

“밥 우드워드의 책이 나왔을 때 그는 ‘대통령과 부통령 국무장관 등 미국의 톱5가 볼 수 있는 정보를 다 봤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지요. 이게 워싱턴의 현실입니다.” 우드워드는 아프가니스탄전 전략 재검토 과정에서 대통령과 고위당국자 간에 오간 기밀을 공개했지만 검찰은 아무 문제 삼지 않았다.

정보 업무의 특성상 한국에 출장 가서도 부모에게조차 자신이 하는 일을 얘기하지 않았다는 그의 표정에는 미국 정부의 대응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역력했다.

그는 지난해 연방수사국(FBI)에서 조사받을 때 겪은 수모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조사관이 ‘유 피플(You, people·당신 같은 족속들)’이라며 인종차별적으로 부르면서 “겁나면 바지에 똥 싸는 인간들”이라고 모욕했다고 한다. 격분한 그가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라며 거칠게 따지자 조사관이 움찔했다고 한다.

지난해 3월 28일부터 조사를 받기 시작한 후 8월 27일 기소된 그는 “검찰에서 ‘36개월 갔다 올래?’라며 ‘플리 바기닝(자백감형제도)’을 제안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처음에는 7년부터 시작해 5년, 36개월, 30개월까지 낮아졌는데 기소되기 전에 몸무게가 무려 10파운드(약 4.5kg)나 빠졌다고 한다. 그는 검찰의 플리 바기닝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소되기 1주일 전에 겪은 고통만 해도 나중에 책을 2권이나 쓸 수 있는 분량이라고 한다.

그는 “미국을 위해 일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돼서 안타깝다. 어떤 친구들은 이번 일이 잘 끝나면 다시 정부에 들어와서 일하라고 하는데 다시 이런 일을 하고 싶겠느냐…”며 말끝을 흐렸다.

지난해 말에는 지인들이 ‘스티븐 김 변호기금’을 만들었다. 인터넷 웹사이트(www.stephenkim.org)를 개설해 연방 검찰 기소 내용의 부당성을 알리고 소송 비용을 모으고 있다. 지금까지 모인 돈은 약 2만 달러로 변호사 비용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는 “내가 미국 국적이어서 한국 교민들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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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대 국립핵연구소인 로런스 리버모어 소속으로 국무부에서 검증·준수·이행 정보총괄 선임보좌관으로 일하던 스티븐 김 씨는 2009년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후 국무부 공보 담당자로부터 폭스뉴스 기자에게 북한 문제를 설명해 주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기자와 통화하고 e메일을 주고받았다. 폭스뉴스는 6월 11일 “북한이 유엔결의안에 대응해 추가 핵미사일 실험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중앙정보국(CIA)이 북한 내 정보원을 통해 파악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연방 검찰은 폭스뉴스 기사가 극비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며 김 씨를 정보 유출자로 지목하고 지난해 8월 27일 15년 형을 받을 수 있는 간첩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사실 기사 내용은 전혀 새로울 게 없는 것이었다. 김 씨는 9세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해 조지타운대를 거쳐 하버드대와 예일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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