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영화 ‘고지전’ 악바리 중위 고수 “45도 산비탈서 온종일 뛰고 굴렀어요”

입력 2011-07-22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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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는 “영화 ‘고지전’은 전우들의 이야기”라며 “동료애를 가지고 긴 시간 동안 촬영했다. 그런 감정이 영화에 잘 녹아든 것 같아 좋았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6·25전쟁 사망자 400만 명 중에 300만 명이 고지 쟁탈전에서 희생됐습니다. 아직도 영화 마지막이 기억에 남아요. 그 덕분에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요?”

배우 고수(33)의 눈이 더 깊어졌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더는 ‘순수한 청년’이 아니었다.

고수는 100억 원대 블록버스터 ‘고지전’(20일 개봉)에서 ‘전쟁의 화신’ 김수혁 중위를 연기했다. 김수혁은 6·25전쟁 중 교착상태에 빠진 동부전선 최전방 애록고지에서 국군 악어중대를 이끄는 거친 사내다.

“영화를 보면 김수혁이 이등병에서 단숨에 중위까지 오른 이유가 나옵니다. 김수혁은 처참한 전쟁이 만들어낸 인물이죠. 순수했던 그가 미쳐가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싶었어요.”

장훈 감독은 고개 돌리고 싶은 전장의 참상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경남 함양군 백암산에서 찍은 전투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 ‘윈드 토커’를 보는 듯하다. 저격수 신은 ‘에너미 앳 더 게이트’ 못지않다.

고생길이 훤한 영화를 한 이유가 뭘까. 그는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부터 6개월간 그는 사람 보기 어려운 산속, 촬영장에서 군인처럼 규칙적인 일과를 보냈다. 아침에 눈뜨면 군복 입고, 총 지급받고, “액션!” 하면 뛰고 구르고 “컷!” 하면 멈추는 일을 반복했다.

“경사가 45도를 넘는 백암산 촬영은 고생스러웠지만 등산을 좋아해서 참을 만했어요. 촬영 끝내고 악어중대 친구들과 달빛 아래서 학교 운동장 10바퀴를 뛰기도 했어요.”

촬영장이 전쟁터이다 보니 배우가 다치는 일도 부지기수. 한 제보자에 따르면 고수는 전투 장면만 찍으면 집에서 가져온 구급약을 상처 이곳저곳에 바르며 꼼꼼하게 직접 치료했다고 한다.

혼자만 너무 몸을 아낀 것 아니냐는 기자의 의혹 제기에 그는 볼멘소리로 “억울하다. 나는 온몸을 던졌다”며 “촬영하다 ‘나 여기 다쳤어요!’라고 말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영화에서 그는 욕도 많이 한다. 팔을 잃은 어린아이에게 “넌 팔 병신이야!”라고 말한다.

“아무리 연기지만 아이가 그런 말을 들으면 얼마나 충격이 크겠어요? 아이 없이 그 신을 찍었어요. 수혁은 정말로 전쟁을 증오해요. 하지만 본 걸 방첩대 중위인 친구 강은표(신하균)에게 설명할 수 없어서 ‘네가 뭘 알아?’라고 소리 지르죠.”

다행히 그는 김수혁 캐릭터에서 많이 빠져나온 듯했다. ‘고지전’ 포스터에서 그의 얼굴이 선배 신하균보다 더 앞에 나와 있어 이유를 물으니, 그는 “내 얼굴이 작아서?”라며 유쾌하게 농담했다.

지금도 악어중대원끼리는 술자리에서 뭉친다. 고수의 주량은 소주 한 병 정도. 그가 술에 취하면 종종 지갑을 탈탈 털어 후배들에게 용돈으로 넣어준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 물었더니, 그는 매우 민망해하며 “돈에 대한 감각이 없다”고 말했다.

“아…. 그럴 때가 있어요. 연극을 하는 동생들이다 보니 어렵고. 또 돈보다 중요한 게 더 많으니까….”

혹자는 6·25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말한다. 실제 6·25전쟁의 기록은 1950년 전쟁 발발과 1951년 1·4후퇴,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으로 끝나 버린다. ‘고지전’이 주목한 것은 그 ‘잊혀진’ 2년여의 휴전협상 기간이다.

“촬영하면서 ‘전쟁이 끔찍하다’는 생각을 더 했습니다. 관객마다 받아들이는 게 다르겠지만 영화 곳곳에 볼거리도 많고 생각할 거리도 많으니까 꼭 봐주셨으면 합니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김윤지 동아닷컴 기자 jayla30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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