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커버스토리]‘수양느님’ 카리스마 김영철 매력의 포인트는…이것!

입력 2011-09-23 11:17: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 "전하, 부디 지아비를 살려주십시오." 문종의 딸 경혜공주가 숙부 수양대군(세조) 앞에서 무릎을 꿇고 석고대죄 한다. 버선발에 소복차림을 하고 고개를 조아린다. "구걸하러 온 것이냐?" 수양대군의 얼굴에는 비열한 미소와 승리감이 가득하다.

# 사랑하는 딸도 수양에게서 등을 돌렸다. 상왕 단종을 폐하고 사육신을 찢어죽일 계획을 세운 수양에게 딸 세령이 찾아가 은장도를 꺼내들고 절연하겠다고 선언한다. 수양은 "차라리 노비가 되라"며 포효한다. 피를 토하듯 시뻘건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다.

KBS2 ‘공주의 남자’ 수양대군 역 김영철. KBS제공


KBS2 '공주의 남자'(이하 공남)가 시청률 22%~23%를 기록하며 월요일부터 목요일 밤 10시 황금시간대 미니시리즈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공남'은 1453년 수양대군(김영철)이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수양대군 첫째 딸 세령(문채원)과 정적 김종서 막내아들 김승유(박시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표면상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이지만, 전문가들은 '공남' 독주의 일등공신으로 김영철(58)이 연기한 '야누스적 매력'의 수양대군을 꼽고 있다.

인터넷에선 그를 '수양느님(수양+하느님)'이라고 부른다. "김영철의 악역 재발견"이라는 글도 시청자 게시판에 종종 올라온다.

'공남'의 한 장면에 김영철이 반짝이 의상을 입고 MBC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한 모습을 합성한 '수양대군의 이중생활'이라는 패러디영상도 화제가 됐다.

왜 주인공이 아닌 악역 수양대군이 '공남'의 일등공신일까.

최근 사극에서는 캐릭터를 중시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선덕여왕' 이후 주인공이 악의 세력을 하나씩 해치우면서 성장하는 '미션 클리어' 형식을 띤다. 그러다보니 주인공을 자극하는 악역의 중요성도 커졌다.

'선덕여왕'에서 멘토형 악역 미실(고현정)이 그랬고, '추노'의 권모술수의 대가 좌상(김응수)도 특유의 매력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안방을 사로잡은 그 남자, '공남' 수양대군은 어떤 매력이 있을까.

▶'욕망의 결정체' 현대인 수양

전문가들은 수양대군이라는 캐릭터가 여느 사극 인물과는 달리 매우 현대적이라고 말한다.

현대인은 대의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아간다. '공남' 수양대군은 왕이 되고 싶다는 순수한 자기 욕망으로 왕좌에 오르는 인물이다.

그는 기생집에 들러붙어 사는 시정잡배를 모아 계유정난(이른바 '양아치 쿠데타')을 일으키고, 정적 김종서를 만나 제거하기 위해 "당신 아들이 궁녀와 사귄다"고 파렴치한 거짓말을 한다. 정적에게 칼을 겨누는 것도 아니다. 그는 철퇴(쇠몽둥이)를 들고 김종서를 찾아갔다.

과거에도 '왕과 비'(임동진), '한명회'(서인석), '파천무'(유동근) 등 수양대군을 다룬 드라마는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단종 폐위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신권과 왕권의 대립 속에서 고뇌를 거듭하다 '구국의 결단'을 내리는 모양새를 취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요즘 시청자에겐 대의명분이 먹히지 않는다. 솔직한 이유를 꺼내야 공감을 산다"라며 "'공남'의 수양대군은 정권을 뺏으면서도 '내가 더 정치를 잘할 수 있다'며 끊임없이 자기합리화를 한다"라고 설명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드라마 평론가)는 "수양을 바라보는 시선이 혼란스러운 것은 모든 인간이 그와 같은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양대군을 단순한 악역으로 보기 보다는 또 다른 주인공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딸 바보' 수양

피로 물든 왕좌에 앉으면서도, 수양은 자식들에겐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종친의 설움을 너희들에게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라고 이유를 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딸 세령이 김승유와의 사랑에 눈멀어 아비인 자신을 냉대할 때마다 속으로 아려하며 돌아선다.

약혼자 신면(송종호)이 연인 승유에게 쏜 화살을 대신 맞은 세령을 보며 오열한 사람도 수양이다. 딸을 끌어안고 그 얼굴을 쓰다듬으며 "내 딸을 살려야 한다"고 비통한 아비의 얼굴로 눈물을 흘렸다.

안혁모 iHQ 연기 아카데미 본부장은 "서슬 퍼런 수양도 딸에게 진다. '하얀거탑'의 김명민처럼 인간적인 면모가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며 "부성애 등 인간적인 면모, 출세욕·권력욕 등 남자로서의 욕심이 어우러져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정덕현 씨는 "수양도 밖에선 권력을 탐하는 인물이지만, 집에 돌아오면 한 아버지다. 아버지로 보면 그를 이해 못할 게 없다"고 설명했다.

▶김영철의 야누스적인 '악역 아우라'

김영철은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조직 폭력배 두목이었다. KBS1 대하사극 '태조 왕건'에선 측은하면서도 엽기적인 궁예를 연기했다.

전문가들은 그가 피의 군주이지만 자식들에게는 보통의 아버지가 되는 수양대군 역에 숨을 불어넣었다고 말한다.

정덕현 씨는 "그가 하는 악역은 밉지가 않다. 한마디로 악역 아우라가 있는 배우"라며 "캐릭터의 복합적 시너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 연기자의 공력이다. 그가 하면 '단순한 악당이 아니다'라는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안혁모 본부장은 "권력욕과 인간적인 면을 시소 타기하듯 자연스럽게 하는 연기가 일품"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연기는 다른 사극의 악역과도 비교된다. 오연수가 맡은 MBC 계백의 사택비는 과거 고현정이 연기한 미실을 따라한다는 느낌을 준다. 정덕현 씨는 "사택비의 카리스마 코드는 익숙하다. 미실의 그림자가 커서 그런지 그만큼의 힘을 못 준다"며 "착한 역만 하던 배우라 그런지 악역이 어색하다"고 말했다.

SBS '무사 백동수'에서 천주 역을 맡은 최민수는 "그 역할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과거 태왕사신기에서 보여줬던 악역이 그대로 묻어나와 새로운 맛을 주지 못한다.

▶'공남'의 독주='연기자+캐릭터+대본+역사'

'공남'의 독주에는 수양대군의 연기 뿐 아니라 연기자와 캐릭터, 대본, 역사가 잘 버무려져 기막힌 비빔밥 같다는 평도 있다.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계유정난, 단종 복위 운동 등 거대담론에 자식세대의 절절한 로맨스까지 가미돼 세련된 사극이 나왔다는 것.

정덕현 씨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멜로가 '사극의 틀'로 가면 더 강해진다"라며 "현대 멜로로 갔으면 그냥 갈등하고 헤어지는 정도로 끝나지만, 사극에서는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로 비화돼 감정 이입이 더 쉽다"고 말했다. 안혁모 본부장은 "대본이 세련됐다. 우리가 다 아는 역사지만, 기대감과 호기심을 갖고 보게 하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윤석진 교수는 "'계백'은 영웅서사에 머물러 답답한 병정놀이를 하고, '무사 백동수'는 암살단 흑사초롱 등 생소한 기록에 치우쳐 지나치게 퓨전적"이라며 '공남'의 독주 이유를 설명했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동아닷컴 이슬비 기자 misty8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 오·감·만·족 O₂플러스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플러스!(news.donga.com/O2) 스마트폰 앱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