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재밌는 농구? 더 이기는 농구!

입력 2011-10-06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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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즌 순위 10-9-10-10은 잊어라” 오리온스 추일승 감독의 ‘마이웨이’ 선언

동아일보DB

프로농구 오리온스 추일승 감독(48·사진)의 애창곡은 ‘마이 웨이’다. 그에게 휴대전화를 걸면 10년 넘게 프랭크 시내트라의 구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추 감독도 코트에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다.

고교 2학년 때 뒤늦게 농구를 시작해 남들보다 1년 늦게 졸업한 그는 홍익대와 아마추어 실업팀 기아 창단 멤버로 뛰었다. 기아 입단 후 유재학 정덕화 한기범 등 스타에 가려 1년 정도 식스맨으로 뛰다 상무에 입대했다. 제대 후 곧바로 은퇴해 기아자동차 공장에서 일반직 사원으로 노무관리 업무를 봤다. “강성노조원을 상대하거나 서클 지원 같은 일을 했죠.”

회색 작업복에 익숙해져갈 무렵 코트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 “당시 연세대와 중앙대 출신 선수들의 파벌 싸움 끝에 방열 감독이 물러나는 일까지 벌어졌어요. 넌 양쪽 학교와 무관하니 매니저를 보라더군요.” 선수단과 구단 프런트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은 그는 숙소, 식당, 교통편 예약 등 궂은일을 맡았다. 1997년 기아를 떠난 그는 상무 감독으로 지도자 인생을 시작했다. 특이하게 코치 경험은 전혀 없이 감독부터 시작한 케이스다.

이런저런 연줄을 중시하는 국내 코트에서 추 감독은 프로 감독 입성이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모기업 부도 사태로 월급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던 코리아텐더에서 러브 콜이 왔다. 이후 KTF가 코리아텐더를 인수하면서 한숨 돌렸다. 2009년 KTF에서 재계약에 실패한 그는 2년간의 야인 생활 끝에 올해 3월 오리온스 감독으로 복귀했다.

13일 시즌 개막을 앞둔 추 감독은 오랜 세월 팀 주위를 맴돌던 패배의식을 지우는 데 공을 들였다. 오리온스는 최근 네 시즌 동안 10-9-10-10위에 그쳤다.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려고 애썼어요. 고비를 넘길 수 있는 해결사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였죠. 그렇다 보니 위기에서 번번이 무너졌어요. 이제 크리스 윌리엄스나 이동준이 그런 역할을 해주면서 누구와 붙어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들을 갖고 있어요.”

올 시즌 오리온스는 대구에서 고양으로 연고지를 이전하며 제2의 창단을 선언했다. 3일 고양에서 열린 첫 시범경기에는 3000명 가까운 팬이 몰려들었다. 창단 전문인 추 감독은 “재밌는 농구, 공격 농구 같은 말보다는 이기는 농구에 전념하겠다. 결과가 모든 걸 말해준다. 나는 잘 다져진 길보다는 개척을 즐긴다”고 말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 추일승 감독은

△1979년 홍대부고 2년 때 키(184cm)가 크다는 이유로 뒤늦게 농구 시작
△1980년 짧은 농구 구력을 만회하기 위해 1년 유급
△1981년 유급생 선수 등록 규제에 따라 1년간 출전 금지
△1982년 홍익대 농구부 창단 멤버 입학
△1986년 기아자동차 농구단 창단 멤버 입단
△1990년 제대 후 은퇴. 경기 광명시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에서 노무관리직원 근무
△1991∼1997년 기아 농구단 주무
△1999∼2003년 상무 감독
△2003∼2009년 코리아텐더, KTF 감독
△2011년 오리온스 감독(연봉 2억800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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