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면 오른쪽 한번 더 수색을” 朴대장 부인 예감도 빗나가고…

입력 2011-11-01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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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4m 동굴만 덩그러니

“평탄한 지역에 묻힌듯”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실종된 박영석 대장(48) 일행의 구조작업을 진행하던 한국구조대가 수색을 거의 종료할 즈음 박 대장의 부인이 한국에서 전화를 했다.

남편의 실종소식에 쓰러져 한국에서 링거를 맞고 있던 부인은 아무래도 예감이 이상했다. 구조대는 이때 그동안 박 대장 일행이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던 균열지역 수색을 마친 뒤 절벽 밑의 빙하지역을 살피던 중이었다. 구조대의 김창호 대원이 직접 균열 속에 들어간 뒤 균열 내 좌우 벽에 긁힌 흔적이 없고 바닥에도 별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였다.

구조대는 수색 범위를 넓힌 결과 박 대장 일행이 베이스캠프로 이동하는 경로에서 사용한 로프를 추가로 발견했다. 로프는 바위에 매어져 있었고 일부는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대원들이 균열지역을 벗어나 베이스캠프로 돌아오던 길이었음이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일대는 높은 봉우리에서 쏟아진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고 탐침봉으로 얼음 밑을 수색하기는 불가능했다. 대원들은 더는 수색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때 박 대장의 부인이 수색지역 경사면의 오른쪽을 한 번만 더 살펴 달라고 부탁했다며 구조대의 이한구 대원이 지난달 30일 실종자 가족을 위한 마지막 브리핑에서 밝혔다. 꿈이라도 꾼 것일까. 부인의 예감은 적중하는 듯했다. 대원들이 오른쪽 측면을 살피자 그곳에 깊이 4m의 동굴이 나타났다.

대원들은 서둘러 동굴을 수색했다. 그러나 동굴엔 아무것도 없었다. 남편을 찾지는 못했지만 부인의 특이한 예감은 바다 건너에서도 미처 찾지 못했던 동굴로 구조대를 이끌었다. 박 대장 일행이 눈사태를 피해 이 동굴로 피신했다면 살았을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박 대장 일행의 실종 유력 지역이 균열지역이 아닌 베이스캠프 이동경로 일대임을 확인한 것은 구조대의 마지막 성과였다. 이인정 대한산악연맹회장은 “실종 추정지가 균열지역이 아닌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고 말했다. 실종자들이 균열 속에 빠졌다면 찾기가 어렵지만 다른 평탄한 지역에 묻혔다면 눈과 얼음이 녹는 계절에 발견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편 가족들과 구조대원, 사고대책반 관계자들은 이날 저녁 함께 식사를 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구조대 진재창 대원은 “박 대장 꿈을 꾸었다”고 했다. 그는 울면서 수색지역의 눈 속에 박 대장 일행의 사진과 책을 묻고 왔다. 김재수 대원은 “후배들이 희생돼 누구보다 괴로운 사람은 박 대장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카트만두=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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