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 드롭커브 추억으로…

입력 2012-04-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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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간 그라운드에서 함께했던 ‘어린왕자’와의 작별. 2010년을 끝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온 SK 김원형 코치가 8일 문학 
KIA전에 앞서 열린 은퇴식에서 후배들의 헹가래를 받고 있다. 문학|김민성 기자 marin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21년간 그라운드에서 함께했던 ‘어린왕자’와의 작별. 2010년을 끝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온 SK 김원형 코치가 8일 문학 KIA전에 앞서 열린 은퇴식에서 후배들의 헹가래를 받고 있다. 문학|김민성 기자 marin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은퇴’ SK 김원형의 야구인생


사상 최강의 명품커브 비밀은 투심 그립
주무기 앞세워 노히트노런 등 V134 환호


생텍쥐베리의 동화에서 ‘어린왕자’는 지구에 존재하는 수천 송이의 장미를 보고 깜짝 놀란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행성에 두고 온 한 송이 장미가 얼마나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지 깨닫는다. “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네 장미가 그토록 소중한 것은 네가 그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야”라는 여우의 말을 통해서다.

커브는 야구 역사상 최초의 변화구다. 세상에 커브는 수천 송이가 있었다. 하지만 김원형(40·SK 루키군코치)처럼 던지는 투수는 많지 않았다. 김원형의 커브는 어린왕자의 장미처럼, 긴 시간 동안 그의 손에서 길들여진 그만의 것이었다. 이제 어린왕자의 커브는 현실을 떠나, 프로야구 역사 속에서 빛나게 됐다.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넌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이 있어”라고 속삭였듯, 이제 김 코치도 커브의 비기를 전수하기 위해 지도자의 길을 간다. SK는 8일 문학 KIA전에 앞서 김 코치의 은퇴식을 열었다.


○노히트노런하고 헹가래 받던 기억이…

“이렇게 주목받는 게 신경이 쓰이네요. 팬들에게 인사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은퇴식을 앞둔 김 코치는 다소 긴장돼 보였다. 다소 내성적인 그지만 마운드 위에선 다른 사람이 됐다. 프로통산 승수 부문(134)에서 선동열(146·KIA 감독)에 이어 5위다. 1991년 쌍방울 창단 멤버로 데뷔한 김 코치는 그해 4월 26일 전주 태평양전에서 9이닝 1안타 1실점으로 프로 첫 승을 신고한다. 이어 1991년 8월 14일 광주 해태전 더블헤더 제2경기에서 당대 최고의 투수 선동열에게 1-0으로 승리하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1993년 4월 30일 전주 OB전에선 역대 7번째 이자 최연소(20세 9개월 25일) 노히트노런을 작성했다. “노히트노런 하고 경기장에서 나오는데 팬들이 헹가래를 쳐주셨던 기억이 아직도 나네요.”


○역대 최고 커브의 비밀은 투심 그립

그의 성공에는 커브가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이만수 감독은 “그 당시에는 그런 드롭성 커브가 흔치 않았다. 최동원의 커브보다 각이 더 컸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사실 은퇴를 결심하게 된 것도 커브와 연관이 있었다. “제가 막말로 커브로 밥 먹고 살았잖아요. 직구를 던지면 괜찮은데, 커브를 던지면 3∼4일 동안 쑤시더라고요. 아, 이제 그만 할 때구나 싶었어요.” 그의 오른팔에는 영광의 상처가 남아있다. 팔이 잘 안올라가 세수도 왼손으로만 해야 할 정도다.

사실 그는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커브를 잘 구사했다. 초중고 동기인 SK 박경완은 중학교 시절 볼카운트 3-0에서도 김원형에게 커브를 주문했다. 그만큼 제구가 좋았다는 의미. 이후 힘과 스피드가 붙으면서 그의 커브는 일취월장했다. 프로 데뷔 후 그립의 변화도 주효했다. 보통의 투수들은 커브를 던질 때 중지와 검지를 붙여 실밥 하나에 걸친다. 하지만 김 코치는 투심 그립으로 커브를 구사한다. 쌍방울 창단 때 인스트럭터로 합류했던 마티 드메리트(미국) 코치에게 배운 것이다. 파워 커브로 유명한 김상엽(NC 코치) 역시 같은 그립을 사용한다. 김 코치는 “투심으로 잡으면 검지와 중지를 모두 실밥에 걸치기 때문에 회전력을 더 높일 수 있다”고 귀띔했다.

32년 친구인 박경완은 이날 “내가 다 뭉클하다”며 꽃다발을 전했다. 주변에선 촉촉한 분위기였지만 막상 김 코치는 담담했다. “은퇴식은 야구 잘 하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배운다는 마음으로 지도자 생활을 하겠습니다.” 그의 인생은 그렇게 또 하나의 커브를 그렸다.

문학|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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