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류택현.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0-0으로 팽팽하던 7회말 2사 2루. LG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노장 좌완에게 신호를 보냈다. “류택현!” 상대 타자는 지난해 홈런왕인 삼성 4번 최형우였다.
류택현(41)은 천천히 마운드에 올랐다. 2010년 7월 18일 삼성전 이후 무려 630일 만의 등판. 그리고는 최형우를 4구째에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위기를 벗어났다. 빠른 공은 아니었지만 노련한 투구에 최형우는 배트조차 내밀지 못하고 서서 삼진을 당했다.
류택현은 팀 타선이 8회초 3점을 뽑자 더 힘을 냈다. 8회말 2사 1루서 마운드를 물러날 때까지 1이닝 동안 4타자를 상대로 1안타 1탈삼진 무실점. 팀은 3-2 승리를 거뒀고, 그는 승리투수가 됐다. 2009년 8월 22일 롯데전 승리투수가 된 이후 무려 960일 만의 승리투수였다.
그러나 그의 감격은 승리투수에 있지 않았다. 마운드에 다시 서서 ‘필요한 투수’임을 알렸다는 사실에 내심 흐뭇했다. “임무를 마치고 라커룸으로 들어갔어요. 나름대로 중요하다면 중요한 순간인데 내 몫을 해냈다는 생각에 혼자 저 뒤에서 씩 웃었어요. 혼자 뿌듯해 가지고….” 애써 밝게 웃으려 했지만 가슴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구치는지 그는 울컥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2010시즌 후 방출을 당했고, 자비로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다. 불혹을 넘긴 방출투수는 기약도 없는 재활훈련에 매달렸다. 올 시즌을 앞두고 LG는 그를 플레잉코치로 불렀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봤지만 그는 기어코 마운드로 돌아왔다. “작년에는 다른 데서 개막전을 봤는데 그동안 혼자 버텨와 가지고 올해는 여기서….”
현역 최고령 투수는 이날 등판으로 개인통산 812경기 출장을 기록했다. 은퇴한 조웅천(SK 코치)이 보유하고 있는 역대 최다등판 기록(813경기)에 1경기차로 다가섰다. 인간승리의 드라마. 2012 프로야구는 개막부터 진한 감동 스토리로 경쾌하게 출발하고 있다. 대구 | 이재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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