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겸 뮤지컬배우 옥주현이 2005년 ‘아이다’로 데뷔한 지 7년 만에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정점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오스트리아제국의 비운의 황후 ‘엘리자벳’의 일생을 다룬 이 작품에서 옥주현은 신들린 듯한 노래와 연기로 안티 팬들마저 사로잡고 있다. 사진은 ‘엘리자벳’으로 분한 옥주현.사진제공|EMK
안티팬도 반한 명연기 비결?
무대 위 나는 실수 용납안돼
그 엄격한 잣대 통해 단련
배역 ‘시시’와 하나되려 노력
운명 장면땐 내가 죽는 느낌
요즘 공연계 최대 화제작은 티켓 판매 1위를 굳건히 지키는 뮤지컬 ‘엘리자벳’이다. 그리고 최고의 화제 인물은 ‘엘리자벳’의 주인공, 일명 ‘옥엘리’로 불리는 옥주현이다.
그가 ‘엘리자벳’에 캐스팅됐다는 처음 소식이 알려졌을 때 뮤지컬 팬들은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을 보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뮤지컬 골수팬 사이에는 ‘옥주현 공연은 뮤지컬 초짜나 인지도에 이끌려 보는 것’이라 여기는 시각이 있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자 극적인 반전이 벌어졌다. 2월 8일 첫 공연 이후 SNS와 인터넷 게시판은 ‘옥엘리’로 도배가 됐다. 대부분 “옥주현을 다시 봤다”, “완전 엘리자벳 빙의”, “노래도 노래지만 연기가 최고” 등 찬사일색.
“옥주현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졌다”, “평소 싫어했는데 ‘엘리자벳’을 보고 팬이 되었다”는 글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그 동안 옥주현에 부정적이던 한 뮤지컬 평론가는 “앞으로
옥주현씨를 뮤지컬 배우로 인정하겠다”고 트위터를 통해 선언했다.
옥주현 본인도 인정하듯, 그는 연예인으로서나 뮤지컬 배우로서나 팬 못지않게 안티 팬도 많다. 하지만 한 편의 작품으로 그는 안티 팬을 감동시키고, 자신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돌려세웠다.
택시 문을 열 수 없을 정도로 서울에 강풍이 불던 날 오후, 청담동의 카페에서 옥주현을 기다렸다. 약속시간이 되자 화장기 없는 얼굴에 운동화를 신은 옥주현이 “오랜만이시네요”하면서 들어섰다.
- 공연 끝나고 무대 커튼콜 때 보니까 하염없이 울더군요.
“일부러 ‘울면서 나가야지’하는 건 아니에요. 마지막 장면에 ‘시시(엘리자벳의 애칭)’가 ‘죽음’의 품에 안겨 노래를 부르고 죽잖아요. 커튼콜 때 이 감정이 이어져 울컥하게 돼요. 그때의 박수는 ‘시시’를 위한 박수죠. 그리고 앞으로 걸어 나가 관객의 얼굴이 가까워지면 비로소 ‘배우 옥주현에게 박수를 보내주시는구나’싶어 또 한 번 울컥하게 되는 거고요.”
- ‘옥주현’하면 열성팬과 안티팬이 극명하게 갈리는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이번 공연으로 많은 안티팬들이 ‘팬’으로 돌아섰다는 얘기가 들린다.
“아직 돌아서지 않은 분들 계실 거예요. 무대에 오르기 전 늘 기도해요. 배우 옥주현이 아닌 온전히 ‘시시’라는 한 여자로 무대 위에 있게 해 달라고. 한 인물의 삶과 외로움을 통해 관객분들 내면의 외로움을 다독이고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해 달라고요. ‘그 동안은 무대에서 옥주현이 보였는데 이번엔 옥주현이 아닌 시시를 만날 수 있었다’는 관객분들을 보며 ‘이런거구나’하는 느낌표가 생겼어요. 그런 면을 좋게 봐 주신 것 같아서 정말 감사하고 뭉클하더라고요.”
- 10대부터 60대까지, 한 여자의 일생을 연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특히 후반에는 어두운 면이 많았죠.
“공연을 할 때면 제 안에 있는 부분을 꺼내 쓰고, 스스로 내면을 더 발견하곤 하는데 이번 공연은 준비하는 과정부터 그랬다고나 할까요. 굳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부분을 마주하게 되니 힘들고 아프기도 했지만 이 공연에서 그 시간들이 약으로 쓰이는 것 같아요 저 개인에게도 무대 위 ‘시시’에게도요.”
- 그야말로 ‘시시’로의 빙의로군요.
“‘시시’는 일생동안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이라는 존재로부터 끊임없이 유혹을 받지만 마지막 한 발짝을 디디지는 못했죠. 사람이 극으로 몰리면 위험한 생각을 하듯 저 역시 그런 상황을 마주한 순간들이 있었어요. ‘시시’가 죽기 전에 ‘세상을 스치며 나를 지키려 했어. 언제나 간절히 자유를 갈망했어. 더 이상 무엇도 필요하지 않아. 내 주인은 나야’라는 소절을 부르죠. ‘시시’가 살아온 인생 속의 희로애락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한 인간의 결말을 마무리하는 감정이 벅차게 고동쳐요. ‘시시’가 눈을 감으며 다른 세상으로 가는 순간, 실제로 제가 죽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어요.”
팬들에게 옥주현은 ‘쓰러져도 더욱 강해져서 일어서는 사람’, ‘하지만 결코 쉽게 일어서지는 못 했던 사람’이란 이미지가 있다. 옥주현이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힘을 얻었다는 팬들도 적지 않다.
그는 핑클 시절, ‘예쁜 척을 한다’는 등의 이유로 시달림을 적지 않게 받았다.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요가 사업 실패, 뮤지컬 배우로 데뷔해서는 연기력 논란에 시달렸다.
또한 얼마전 ‘나는 가수다’에 출연할 때는 가수이소라와의 불화설 등에 휘말렸다.
이런 인생의 파고를 옥주현은 씩씩하게 넘어, 여기까지 왔다.
- 지나친 완벽주의자라는 시각도 있는데요.
“솔직히 공연 중에는 혹독하게 관리해요. 저도 나약한 인간이라 안 좋을만한 경우의 수를 줄이는 거죠. 예를 들어 공연 기간에는 ‘빨간(매운) 음식’을 안 먹어요. 예민을 요하는 분야는 신경성으로 위가 약할 수밖에 없잖아요. 매운 걸 먹어 위가 부으면 식도도 함께 붓고, 식도가 부으면 고음성부가 붓는다는 이비인후과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열심히 지켜요. 공연기간엔 제 몸이 제 것이 아니잖아요.”
- 스스로를 옭아매는 스타일이로군요.
“선배들이 저한테 ‘컨디션이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가는 거야’하고 얘기해 주곤 해요. 하지만 저는 그럴 수 없는 ‘분위기’가 있거든요. 오빠는 실수를 좀 해도 관객이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은가 보다’하고 이해해주실지 몰라도, 저는 그런 것이 허용이 안 되는 거죠. 제가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다면 그건 제 ‘의지’ 플러스 ‘냉정한 잣대’로 인한 것이죠. 하지만 원망해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오히려 감사하죠. 배우로서 더 관리하고, 더 노력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되니까.”
- 평범한 사람들은 숨이 막혀서 못 살 것 같다.
“그래서 공연 때마다 취미를 하나씩 만들어요. 이태리 요리, 프랑스 요리도 그래서 배우게 된 거죠. ‘엘리자벳’을 하면서는 도예를 배우고 있어요. 직접 물레질을 해서 그릇을 만들죠. 제가 손은 거칠어도 야물고, 힘이 세거든요. 일주일에 두 번 아카데미에 나가는데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나가요. 배우가 아닌 옥주현일 때는 그나름 행복한 삶이 있어야죠.”
- 최근 옥주현씨를 비롯한 핑클의 옛 멤버들이 B2M엔터테인먼트 길종화 대표이사의 결혼식에 참석해 화제가 됐죠. 이효리씨는 사회를 보고, 옥주현씨는 축가를 불렀는데요.
“종화오빠는 핑클 때 매니저였어요. 우리 네 명의 호르몬 주기를 다 알고 그에 따라 과격한 야외촬영을 조정해줄 정도로 세심한 언니, 엄마같은 존재죠. 물론 그만큼 애증이 있는 사이이기도 해요. 오빠는 무지 싫어했지만 핑클 멤버들은 ‘종화오빠’ 대신 ‘종자언니’라고 불렀답니다. 오빠 기분 안 좋은 날만 빼고요. 흐흐”
옥주현과의 인터뷰는 예정된 한 시간을 30분이나 넘기고, 자몽티를 두 잔이나 비운 뒤에야 마무리됐다. 옥주현에게는 고마웠지만,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며 초조해하던 매니저에게는 미안한 일이었다.
옥주현이 출연한 뮤지컬 ‘엘리자벳’을 보고난 뒤 기자는 트위터에 일종의 소감문 같은 글을 올렸다. 인터뷰를 하며 이 느낌은 더욱 단단히 굳어졌다. 방송에서 옥주현을 ‘곰’이라고 불렀던 이효리의 의견에는 절반만 동의한다.
● 에필로그
옥주현은 불 꺼진 객석에 숨은 관객 감정의 흐름을 읽을 뿐만 아니라, 예측하고 준비할 정도로(그것도 순식간에) 영리해진 느낌이다. ‘읽고 있어요’하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이, 더 여우같다.
기자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인간’ 옥주현은 ‘곰’…‘배우’ 옥주현은 여우.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