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우. 스포츠동아DB
“이 공,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KIA 김진우(29)는 마운드에 올라온 이강철 투수코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9일 대전 한화전 7회말 1사 후, 8-1로 앞선 상황에서 교체 지시를 받았을 때였다. 이 코치는 고개를 끄덕였고, 김진우는 손에 쥔 공을 더욱 꽉 잡은 채 덕아웃으로 들어왔다. 그 공은 바람대로 그가 1791일 만에 거둔 첫 승의 기념구가 됐다.
김진우는 10일 “점수차가 크고 팀이 잘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일을 예감했다. 그래서 꼭 챙겨두고 싶었다”고 귀띔했다. 그리고 경기 후 남자친구의 등판을 보기 위해 대전까지 온 여자친구 김혜경(28) 씨에게 김진우는 그 공을 건넸다. 아마도 사랑하는 이에게 받은 최고의 선물이었을 터다.
늘 묵묵히 곁을 지켜준 김 씨는 김진우의 부활을 이끈 일등공신 중 한 명이다. 김진우는 “경기 후 가장 먼저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울었냐?’ 하니까 ‘안 울었다’고 하더라. 그냥 ‘모처럼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수고했다’고 격려만 해줬다”며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걱정이 됐다. 나도 기쁘고 흥분된 나머지 아침까지 잠을 못 이뤘다”고 밝혔다.
김진우는 요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그라운드에 나와 동료들과 운동하고, 이기면 같이 좋아하고, 지면 같이 아쉬워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좋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가족과 여자친구의 미소를 보면서 힘을 낸다. 그는 “소중한 사람들이 날 보면서 행복해할 수 있어서 뿌듯한 마음을 느낀다.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이다”라고 덧붙였다. 덩치가 산만한 김진우의 입가에 어린아이 같은 웃음이 번졌다.
대전|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goodgo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