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환. 스포츠동아 DB
36경기를 치른 삼성은 16승1무19패로 6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시즌 우승팀에게는 어울리는 않는 성적이다. 압도적인 선두를 달릴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힘겨운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성적이 부진하자 삼성팬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특히 류중일 감독과 오치아이 투수코치의 ‘오승환 활용법’을 문제 삼고 있다. “오승환을 지나치게 아낀다”는 것이 삼성팬들의 주장이다. 지난 시즌에는 오승환의 세이브기록을 지켜주기 위해 철저하게 세이브 상황에서만 등판시켰던 것을 이해하지만, 연속 세이브기록이 다 끝난 이번 시즌까지 오승환을 아껴 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승환은 삼성팬들의 주장대로 다른 투수들에 비해 적은 경기에 출전하고 있을까? 정녕 오승환은 세이브 상황에서만 등판하는 ‘귀족 마무리’일까?
3억8000만원의 고액 연봉을 받는 최고액 마무리투수 오승환. 그가 ‘몸값’에 어울리는 활약을 하고 있는지 다른 마무리투수들과 비교해보자.
<프로야구 8개 구단 마무리 투수 성적 – 25일까지 등판 경기수 기준>
1. 프록터(16경기) : 13세이브-0블론/0.57/15.2이닝
2. 김사율(14경기) : 11세이브-1블론/3.38/13.1이닝
3. 손승락(17경기) : 11세이브-3블론/1.56/17.1이닝
4. 정우람(16경기) : 8세이브-2블론/2.40/15이닝
5. 바티스타(15경기) : 6세이브-1블론/4.60/15.2이닝
6. 유동훈(14경기) : 5세이브-2블론/4.91/11이닝
8. 봉중근(10경기) : 7세이브-0블론/1.93/9.1이닝
7. 오승환(11경기)/ 8세이브-1블론/5.40 /11.2
위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오승환은 등판 경기수에서 7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8위 봉중근은 5월 1일부터 마무리투수로 뛰며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4월은 대부분의 시간을 부상 탓에 2군에서 지냈다. 4월부터 마무리투수를 맡았다면 상위권에서 세이브 선두 경쟁을 펼치고 있었을 것이다. 봉중근의 상황을 감안하면 가장 적은 경기에 등판한 마무리투수는 7위 오승환인 셈이다. 지금의 페이스로 시즌을 마칠 경우 오승환은 약 40경기에 등판하게 되며 세이브는 30개를 넘지 못할 것이다.
오승환의 등판수는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의 마무리투수들과 비교해도 가장 떨어진다.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의 마무리투수 이와세 히토키는 24경기에 등판해 17세이브를 기록했다. 주니치가 24일까지 치른 경기는 44. 37경기를 마친 삼성이 남은 7경기에서 오승환을 모두 투입하더라도 이와세에 비해 6경기가 부족하다.
이대호가 뛰고 있는 퍼시픽리그 오릭스의 마무리투수 기시다 마모루 역시 저조한 팀성적에도 16경기에 등판해 9세이브를 기록했다. 오릭스는 삼성보다 5경기가 많은 42경기를 마쳤다. 5경기에 모두 등판해야만 동률이 된다.
메이저리그도 마찬가지다. 팀 당 약 45경기를 치른 현재 20경기 이상 등판한 마무리투수는 10명이다. 16경기로 기준을 낮추면 부상이나 부진으로 마무리투수가 전력에서 이탈된 팀을 제외한 모든 팀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오승환이 남은 8경기에서 5회 이상 등판해야만 이 기준에 닿을 수 있다.
위의 수치만 놓고 보면 5월 25일 현재 한국-미국-일본 프로야구에서 가장 등판 경기수가 적은 투수 마무리투수는 오승환인 것이다.
그렇다면 2군 한 번 안 내려간 오승환이 마무리투수들 중 가장 적은 경기에 등판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팀 성적의 부진으로 인한 ‘세이브 기회의 상실’이다. 지난해처럼 삼성이 초반부터 많은 승수를 쌓았다면 오승환의 모습을 좀 더 자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팀이 5할 승률에 미치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오승환의 등판간격도 길어지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다른 구원투수들과 달리 세이브 상황에서만 오승환에게 등판 기회를 주고 있어서다. 11경기에 등판한 오승환은 세이브 상황에서의 출격이 9회였다.
세이브 상황이 아니었던 다른 2경기도 등판 명령을 최대한 망설이다 투입시켰음을 알 수 있다. 1경기는 연장 혈투 끝에 무승부를 기록했던 롯데전으로, 연장 12회말에 이르러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최근 등판이었던 22일 롯데전 역시 등판 간격이 9일로 늘어난 상황이어서 등판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22일 경기는 이번 시즌 들어 처음으로 4점차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것이었다.
물론 메이저리그의 마무리투수들도 대부분 오승환처럼 1이닝을 소화한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경우 워낙 경기수가 많아 무리를 시키지 않는 편이다. 그래도 시즌이 끝내면 대부분의 마무리투수들이 60경기 이상 등판한다. 지난 시즌만 하더라도 30개 구단 중 25개 팀의 마무리투수가 60경기 이상 등판했다.
경기 수가 적은 국내 프로야구의 경우 메이저리그와 같은 시스템으로 시즌을 운영한다면 한 시즌 최다 출전 경기와 세이브 수는 오승환의 2011시즌 기록이 될 것이다. 오승환은 지난해 57이닝을 투구해 47세이브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점은 0.63. 삼성의 높은 승률과 오승환의 무결점 투구가 빚어낸 완벽한 성적이었다. 이는 게임수가 늘어나지 않는 이상, 1이닝 마무리투수가 거둘 수 있는 성적의 최대값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런 성적을 매년 거둘 수 없다면 등판 간격을 조절하거나 동점 상황에 투입시켜 팀에 도움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승환. 스포츠동아 DB
오승환의 등판 경기가 적은 또 다른 이유는 동점 상황에서의 등판이 제한되고 있어서다. 마무리투수 오승환은 철저하게 ‘마무리 상황’에서만 출격하고 있다. 동점에서는 안지만-권오준-권혁 등이 등판한다. 이런 식으로 마운드가 운영되면 오승환은 홈인 대구에서 펼쳐지는 경기에서는 동점 상황에 오를 수 없다. 실제로 지난 시즌부터 오승환은 동점 상황에서 전혀 등판하지 않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런 기용은 이례적이다. 메이저리그의 마무리투수들은 홈경기에서 동점 상황인 경우 9회초나 10회초에 등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기가 길어지면 불펜의 과부하와 선수들의 체력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경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마무리투수가 조기 투입돼 9회초나 10회초를 막고, 끝내기를 시도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원정팀의 경우 상대팀의 최종공격이 한 번 더 남아 있는 만큼 마무리투수를 상황에 맞게 투입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큰 이변이 없는 연장전에는 대부분 모습을 드러낸다.
오승환이 동점 상황에서만 등판했더라도 그의 등판 간격이나 이닝수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혹사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아끼는 것도 투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혹시라도 4월 24일 경기처럼 오랜만에 등판한 오승환이 블론 세이브를 기록한다면 팀은 엄청난 충격에 빠진다.
오승환의 등판은 곧 삼성의 승리를 의미한다. 오승환이 지금보다 마운드에 자주 나타나야 삼성의 성적도 향상된다. ‘끝판왕’ 오승환의 등판 간격이 좁혀질 수 있을 지, 이번 시즌을 프로야구의 또 다른 관심거리다.
동아닷컴 | 임동훈 기자 arod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