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를 다룬 로맨틱 코미디 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으로 첫 스크린 주연을 맡은 배우 송용진. 알고 보면 그는 뮤지컬과 연극 무대의 ‘톱스타’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난 명랑 게이” 감독 한마디에 출연 결심
상대역과 격한 러브신으로 주변도 당황
뮤지컬·콘서트 바쁜 삶…마초역 욕심!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몸이 바쁘다. 호기심에 재능까지 갖췄다면 주위로부터 “너는 너무 바쁘다”는 핀잔을 자주 들을 수밖에 없다.
배우 송용진(36)이 그렇다. 뮤지컬 스타이자 4인조 밴드 쿠바의 보컬, 연극 무대에 이어 영화 주연까지 맡은 송용진이야말로 ‘멀티 플레이어’가 아닐까.
1999년 뮤지컬로 데뷔해 ‘헤드윅’ ‘셜록홈즈’ 등 인기 작품을 두루 거치며 무대 위 스타로 인정받아온 송용진이 ‘신인’으로 돌아가 첫 영화 주연을 맡았다. 21일 동성애를 다룬 로맨틱 코미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감독 김조광수·이하 두결한장)으로 첫 스크린 주연을 맡은 송용진은 “영화를 오랫동안 기다려왔고 정말 하고 싶었다”고 했지만 “그 기회가 동성애 영화로 시작될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 “격한 키스 연기…감독이 놀라 ‘컷!’”
게이 감독이 만든 동성애 영화 ‘두결한장’과 송용진의 인연은 5년 전 시작됐다. 당시 뮤지컬 스타로 정상의 인기를 얻고 있던 송용진은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던 도중 우연히 옆 테이블에 앉은 김조광수 감독과 인사를 나눴다. 다음 날 송용진은 감독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김조광수 감독이 제작을 준비하던 ‘은하해방전선’이란 영화에 출연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제가 늘 꿈꾸던 영화였는데 마침 하고 있던 뮤지컬과 겹쳐 아쉽게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인연은 이후로도 이어졌다. 송용진은 김조광수 감독이 연출한 동성애 영화 ‘친구사이’ 음악 작업에 참여했고 2년 전 ‘두결한장’ 출연 제의를 받았다.
“2년 전 가을이었어요. 그땐 시나리오도 나오지 않은 상태였는데 줄거리만 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았죠. 저를 믿어주는 감독과 작업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주인공 석 역할에 저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는 감독님 말에 혹 넘어갔죠. 하하!”
막상 촬영을 앞두곤 두려움이 밀려왔다. 게이와 레즈비언의 위장 결혼 해프닝을 그린 이야기, 게다가 게이커플의 베드신까지 소화해야 하는 부담 탓이었다. 송용진은 “또 다른 퀴어영화 ‘후회하지 않아’처럼 진지한 분위기면 어쩌나 걱정하던 저를 보고 감독님이 한 말이 기억 난다”고 했다.
김조광수 감독의 말. “날 믿어. 나는 명랑 게이잖아!”
‘두결한장’에서 송용진이 연기한 석은 미국 시애틀에서 커밍아웃을 하고 한국에 온 게이. 동성애를 고백하기 어려워 위장결혼을 하고 살아가는 의사 김동윤과 사랑에 빠진다. 영화가 담고 있는 게이 커플의 멜로 표현은 상당히 적극적이다. 송용진은 상대역인 김동윤과 진한 키스신부터 베드신까지 소화했다.
“우린 30대니까 NG 없이 하자고 적극적으로 했죠. 여러 번 다시 찍는 것보다 한 번에 화끈하게 하자고. 옥상 키스신에서 동윤이와 제가 너무 ‘설왕설래’를 하니까 감독님이 깜짝 놀라서 ‘컷!’을 외쳤어요. 부드럽게 하라고요. 하하!”
완성된 영화를 처음 보며 송용진은 입고 있던 옷이 전부 땀에 젖었다. “무대 위에서는 호흡 조절이 잘 되는데 영화 연기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는 그는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았고 40대가 되면 장편영화를 연출하고 싶은 꿈도 생겼다”고 말했다.
출연료를 거의 받지 않고 영화에 참여한 송용진은 내심 30만 관객 돌파를 바라고 있다. ‘두결한장’의 제작자이기도 한 김조광수 감독은 30만 명을 넘어설 경우 모든 배우와 스태프에게 하와이 여행을 선물하기로 했다.
● 뮤지컬·연극, 밴드 콘서트까지
송용진은 주연을 맡은 뮤지컬 ‘셜록홈즈’ 지방 공연도 소화하고 있다. 일주일에 3일씩은 대학로에서 연극 ‘칠수와 만수’ 무대에 선다. 22일에는 밴드 쿠바의 단독 콘서트를 연다. 한 사람이 소화하기에는 벅찬 ‘전국일주’ 일정이다.
“모두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잖아요. 힘들어도 하소연할 데가 없어요. 이 일이 비정규직이라서 막상 집에 있을 때면 얼마나 불안한데요. 바쁜 게 좋죠.”
뮤지컬 무대에서 송용진은 톱스타다. 티켓파워도 강해 굵직한 뮤지컬이 새로 시작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출연 요청을 받는다. 하지만 영화에서 상황은 반대다. “하고 싶다”고 찾아다녀도 기회가 오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엄연히 따지면 영화에서 저는 나이 많은 신인이잖아요. 무조건 시켜만 주면 열심히 하자는 주의에요. 동성애 영화를 한 편 했으니 이제 마초 같은 역할, 영화 ‘똥파리’ 같은 밑바닥 인생도 해보고 싶어요.”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트위터@madeinha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