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수’는 가요계 판 흔드는 외래종”

입력 2012-06-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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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돈 케어’로 인기를 얻고 있는 KBS 2TV ‘개그콘서트’의 코너 ‘용감한 녀석들’. 개가수들의 활약에 숨은 진정성을 인정하면서도 가요 제작자들의 한숨은 또 그만큼 깊다. 사진출처|박성광 트위터

■ ‘개가수’ 열풍에 음반 제작사들 한숨

‘용감한…’ ‘형돈이와…’ 등 가요 차트 장악
제작자들 “실력 갖춘 신인들 설 자리 없어”

음악성보다 흥미 위주…음악 수준 하락
우려
일부선 “음악-예능 결합된 새 콘텐츠” 호평

‘개가수’ 열풍이 불고 있다. ‘용감한 녀석들’, ‘형돈이와 대준이’ 등 개그맨 혹은 개그맨이 속한 팀들의 음반이 음악 차트를 강타하고 있다.

개그맨 정형돈과 래퍼 데프콘으로 이뤄진 ‘형돈이와 대준이’의 ‘안 좋을 때 부르면 더 안 좋은 노래’는 5일 발매와 동시에 빅뱅, 원더걸스에 이어 음악 사이트 멜론 실시간 차트 3위에 올랐다. 21일 엠넷 ‘엠 카운트다운’에서는 에프엑스의 ‘일렉트릭 쇼크’와 1위를 다퉜다. 개그우먼 신보라가 부른 SBS 드라마 ‘유령’ 삽입곡 ‘그리워 운다’도 14일 발매 당일 멜론 실시간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앞서 5월 나온 ‘용감한 녀석들’의 ‘아이 돈 케어’는 발매 첫 주 가온차트 디지털 종합 순위 2위에 올라 백지영 ‘굿보이’(6위), 인피니트 ‘추격자’(7위) 등을 제쳤다.

개가수의 음악은 재미를 추구하는 대중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지만, 그 열풍을 바라보는 음반 제작자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좋은 노래를 만들고, 좋은 신인을 발굴하려 오랫동안 시간과 돈을 들여온 제작자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크기 때문이다.

‘형돈이와 대준이’는 개그맨 정형돈과 가수 데프콘의 듀오. 갱스터랩을 앞세워 인기몰이 중이다. 스포츠동아DB


음악성보다는 흥미를 추구하는 노래가 범람하다 보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우리 대중음악의 수준을 떨어트릴 수도 있고 결국 케이팝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한 신인급 걸그룹 제작자는 “개가수의 노래가 잇달아 흥행에 성공하면서 가요계에서는 ‘이제 음악을 잘 만들 필요 없이 재미있게만 만들면 된다’는 자조(自嘲)로 허탈감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개가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얻은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음악 프로그램 출연도 비교적 쉽게 하고 있다. 신인가수들의 방송 출연을 위해 애써 온 가수 매니저들로선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박탈감과 허탈감이 심해지면서 가요계 입장에선 개가수를 ‘가요계 생태계를 위협하는 외래종’으로 여기기도 한다.

실력을 갖춘 신인가수들이 좋은 트레이닝 시스템 속에 탄생하고 성장해 나가야 가요계의 생태계가 건강하게 오래 유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작곡가들도 장인정신으로 음악을 만들어야 전 세대가 함께 부를 수 있는 ‘국민가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불리는 ‘불후의 명곡’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가요계에는 나름의 생태계가 있다. 그런 생태계를 통해 좋은 가수들이 나오고 음악의 장인들이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개가수들의 활약을 드러내놓고 비판할 수도 없다. 우선 대중이 그에 열광하고 있고, 개가수들도 나름 음악에 대한 진정성을 갖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란 어차피 대중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이고, 음악이 예능과 결합됐을 때 대중에겐 새로운 콘텐츠가 된다는 평가다. 더욱이 대중문화 장르간의 경계가 무너진 지 오래. 아이돌 가수들도 연기 분야로 진출하면서 드라마나 영화 속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까지 역할은 이미 아이돌 가수들의 차지가 되어 버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가수들도 연기자의 영역을 심대하게 침범한 ‘외래종’이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다. 많은 관계자들은 “장르간 경계보다는 대중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진정성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냐”고 입을 모은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ziod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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