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아날로그 베이스볼] 김성갑 “작은 체격이 걸림돌? 52㎏때도 선동열 공 넘겼어”

입력 2012-06-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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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걸그룹 애프터스쿨의 멤버 유이의 아빠로 알려져 있지만 넥센 김성갑 수석코치는 원래 ‘작은 거인’으로 유명했다. 불리한 신체조건에도 이를 악물며 그라운드를 누볐던 김 코치가 목동구장에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목동|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몸무게 60kg로 통산 14아치 ‘작은 거인’ 넥센 수석코치


몸무게 적어 방위 판정때도 잠실서 홈런
최고연봉 삼성 입단 불구 11경기만에 입대
내 자리 김성래가 채우고 홈런왕으로 떴지

작다는 이유로 빙그레로 이적 땐 정말 섭섭
울면서 갔는데 되레 행운…딸 유이 얻었거든

코치생활 16년째…야구는 나의 자신감
성실했고, 무엇보다 난 작지 않으니깐!


넥센 김성갑(50) 수석코치에게 기자는 빚이 있었다. 1989년 빙그레가 ‘TNT 타선’을 자랑할 때였다. 다른 팀에서 의혹의 눈길을 줬다. 혹시 부정배트를 사용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근거는 없었지만 의혹은 기사화됐다. 문제는 사진이었다. 전날 경기에서 홈런을 친 김성갑의 사진이 실렸다. 그는 기사가 나간 다음날 경기가 끝나자마자 기자를 찾아왔다. “작은 키지만 자존심으로 야구한다. 결백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날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이후 친구가 됐다. 아날로그 시대에 선수와 매스컴의 문제해결방법이었다. 11년의 선수생활 동안 몸무게 60kg도 안되는 몸으로 통산 14개의 홈런을 쳤다. 신체의 한계를 성실로 극복한 의지의 사나이였다.


○대구상고 동기 4명이 프로야구 코치로

1981년 대구상고를 졸업했다. 동기가 김용국(삼성) 이종두(한화) 이강돈(롯데)이다. 야구를 하는 학교에서 한두 명 나오기도 힘든 프로야구 코치 4명이 동기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일본프로야구에서도 없다.

체격은 작았지만 운동신경이 빼어났다. 초등학교 때 반 대항 야구대회를 하면 다른 반으로 스카우트될 정도였다. 어깨도 강했고 잘 달렸다. 문제는 키. 생각만큼 자라지 않았다. 운동을 하면서 체중 60kg을 넘어본 적이 없다. 건국대 시절 4번타자였다. 몸무게 52kg으로 방위판정을 받을 때였다. 그래도 고려대 선동열의 공을 밀어쳐 잠실구장을 넘겼다. 대학 4년간 단 한경에도 빠지지 않고 출전했다.

1985년 삼성에 입단했다. 계약금 1300만원, 연봉 1200만원이었다. 그해부터 신인의 연봉은 최고 1200만원으로 정해졌다. 플로리다 전지훈련에도 따라갔다. 개막전에도 출장했다. 희망이 넘쳤다. 그러나 삼성에서의 출전기록은 11경기에서 끝났다. 군입대 통지서가 날아왔다. “서울 원정숙소 삼정호텔이었다. 김영덕 감독이 호출했다. 김 감독은 ‘팀에 배대웅 등 선배들이 있으니 군에 다녀오라’고 했다.” 그 자리를 대신해 2군에서 올라온 선수가 바로 김성래. 2루수 출신의 홈런왕은 그렇게 기회를 잡았고 우리 프로야구 역사를 바꿨다.


○울면서 떠난 고향

건국대 4학년 때 결혼을 했다. 1984년 10월 삼성과 입단계약을 한 직후였다. 대학 2학년 때부터 사귄 아내와 10월 27일 약혼을 하고, 11월 25일 결혼을 하는 초스피드였다. 젊은 부부는 대구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서울이 고향인 아내만 홀로 두고 전지훈련을 떠났다. 동네에서 이상한 소문이 났다. 이들 부부를 오해했다. 가출한 10대 청소년들로 알았던 모양이다. 아내가 등나무 교실에 다니면서 주위사람들과 안면을 튼 뒤에야 이상한 소문은 사라졌다.

1985년 말 첫 딸 유나가 태어났다. 방위복무를 계속하던 1986년 트레이드 소식을 들었다. 신생팀 빙그레로 가라고 했다. 당시 삼성에는 배대웅 김성래 김동재 오대석 김용국 등 쟁쟁한 내야수가 넘쳤다. 뒤이을 류중일 강기웅 등까지 생각한다면 정리가 필요했다. 구단이 트레이드 대상으로 택한 이유는 작은 체격. 발전 가능성이 적다고 봤다. 울면서 대전으로 갔다. “그때 정말 섭섭했다. 체구는 작아도 야구를 잘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마음에 섭섭했다. 그 뒤 생각해보면 그 트레이드가 지금의 나를 만든 계기가 됐다.”

선수가 부족했던 신생팀 빙그레에서 주전 3루수였다. 방위복무 중이었지만 제대할 때까지 계속 출전했다. 열흘짜리 휴가증만 받아오면 원정경기 출장도 가능했던 시기였다. 홈·원정 가리지 않고 뛰었다. 다부지게 했다. “86년 많이 졌다. 전반기 66경기에서 12승42패를 했다. 3연패는 기본이었다. 에이스 이상군 한희민이 지면 연패가 7∼8로 넘어갈 때였다.”

배성서 초대 감독은 성적부진으로 1987년을 끝으로 팀을 떠났다. 구단 사무실에서 모든 선수와 이별의 악수를 하는데 절반 이상의 선수가 울었다. 팀 성적은 나빠도 감독과는 정으로 똘똘 뭉친 사이였다. 대전에서 둘째 유진을 얻었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유이라고 부르는 그 딸이다. 대전은 이래저래 행운의 장소였다.

작은 체격에도 악바리처럼 야구를 했던 넥센 김성갑 수석코치(오른쪽)가 빙그레 시절 홈으로 몸을 던져 슬라이딩하고 있다. 포츠동아DB




○세 번째 팀, 그리고…

1990시즌 후반부터 고민이 생겼다. 김영덕 감독과 신경전이 이어졌다. 북일고 출신의 내야수 조양근이 원인을 제공했다. 김 감독은 유격수로 쓰려했다. 장종훈의 자리. 그러나 장종훈이 홈런을 펑펑 쳐내자 없던 일이 됐다. 2루수로 눈을 돌렸다. 김성갑의 자리였다. 두 사람을 번갈아 뛰게 했다. 아직 한참 힘이 남았다고 생각해 반발했다. 나이 서른에 아직은 뒤로 물러나기 싫었다. 주전으로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시즌을 마친 뒤 트레이드를 요구했다. 구단은 반대했다. 2∼3년만 더 참고 뛴 뒤 코치를 하라는 제의도 왔다. 그렇게 고민할 때 기자는 1년 전의 빚을 갚을 수 있었다. 어느 구단에 김성갑의 사정과 함께 몸 상태 등 능력을 설명해줬다. 1991년 2월 트레이드가 결정됐다. 태평양이었다.

만년 꼴찌 태평양은 1994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기적의 순간에 김성갑도 있었다. 1995년 처음으로 올스타 베스트10에도 뽑혔다. 그 해를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현대의 창단과 함께 젊은 피로 팀을 만들겠다는 김재박 감독의 의지를 읽었다. 선수에서 코치로 신분이 달라졌다. 그리고 팀의 이름은 달라졌지만 같은 팀에서 16년째 코치생활을 하고 있다.


○시간과 건강을 최고로 치는 코치

수비·주루 코치로 열심히 했다. 지도자가 된 이후 자랑할 것이 하나 있다. 아직까지 단 한번도 훈련시간에 늦은 적이 없다. 그만큼 성실하다. 훈련에도 빠지지 않았다. 그 기록이 깨진 것은 단 한 번. 지난 시즌 2군 감독으로 전남 강진에 있을 때 간농양으로 입원해 보름간 엔트리에 빠진 것이 전부다.

“코치를 하면서 헬스를 시작해 지금까지 한다. 코치는 선수들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운동장에서 몸으로 많이 부대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

IMF 사태가 터졌다. 유니폼을 벗었다.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각 구단의 코치 인원을 제한했다. 김성갑이 그 피해를 봤다. 구단 관계자는 미안하다고 했다. 캐나다로 이민을 가려고 했다. 가족과 비자 인터뷰까지 마쳤다. 그러나 유나가 이민을 꺼려했다. 만일 갔다면 그룹 애프터스쿨의 멤버는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혼자 떠났다. 아내와 두 딸을 한국에 두고서. 3개월 뒤 돌아왔다. 가족이 그리웠다. 서울고 인스트럭터 제의가 왔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자 다시 현대에서 컴백 요청이 왔다. 지금은 유니폼 앞의 이름이 현대에서 넥센으로 달라졌지만 여전히 한 팀에서 지도자로 있다. 가끔 1996년부터 모아온 구단의 팬북을 본다. 자신과 함께 해온 선수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 모두의 얼굴을 떠올리며 지도자로서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야구를 시작해 힘든 때도 많았다. 어렵게 야구했고 남들에게 지기 싫어 더욱 악착같이 했다. “그동안 단 한번도 야구를 그만 두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만큼 야구가 재미있고 자신감도 있었다. 내 자신이 작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야구와 가족에 성실했다. 야구와 인생은 성실한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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