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2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2차전 두산베어스 대 롯데자이언츠 경기 9회초 1사 롯데 용덕한이 두산 홍상삼을 상대로 역전 좌월 솔로 홈런을 날린 후 그라운드를 돌며 환호하고 있다. 잠실|김종원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붙박이 강민호 부상속 행운의 선발 출격
친정 상대 1차전 결승득점·2차전 결승포
양승호 감독 “용덕한 넌 역시 가을사나이”
역사는 우연에서 그 불씨가 당겨질 수 있는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것은 의도치 않았던 부상에서 비롯됐다. 8일 준플레이오프(준PO) 잠실 1차전, 롯데가 두산에 5점째를 내주던 7회말. 중견수 전준우의 홈 송구를 받으려다 생긴 불규칙 바운드에 포수 강민호가 얼굴을 맞고 쓰러졌다. 패배 위기, 그리고 실려나간 주전 포수. 이런 절망적 사면초가에서 롯데는 어쩔 수 없이 백업포수 용덕한(31)을 쓸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순간, 롯데의 가을 기적이 시작됐다.
○기적의 기원
용덕한은 2010년 준PO의 영웅이었다. 그때는 두산 유니폼을 입고, 롯데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당시 2패로 몰리자 두산 김경문 감독(현 NC 감독)은 주전 포수 양의지를 용덕한으로 바꿔서 분위기 전환을 꾀했는데 적중했다. 용덕한은 수비는 물론 4·5차전 결승타로 두산 리버스 스윕의 주역이 됐다. 준PO MVP는 그의 몫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2012년 6월 17일 롯데는 신예투수 김명성을 내주고 용덕한을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야구계는 ‘롯데가 포수 강민호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용덕한을 영입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롯데 구단 관계자는 이번 준PO를 앞두고 아주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롯데는 포스트시즌까지 염두에 두고서 용덕한을 데려왔다. 특히 두산을 겨냥했다. 두산과 대결했을 때, 용덕한이 우리 팀에 있다면 롯데가 받는 위협감은 반감될 수 있다.”
○거인을 깨우다!
롯데에 9월은 악몽이었다. 1승만 더하면 4강 확정인데 그 1승을 못하고, 7연패에 이어 5연패로 속절없이 깨졌다. 출구가 안 보이는 지경. 롯데 홍성흔은 선수단 전체 미팅에서 이적생인 용덕한에게 직언을 부탁했다. 용덕한은 “바깥에서 롯데를 제일 상대하기 쉬운 팀으로 여긴다. 롯데 선수들은 볼카운트가 유리하면 유인구를 던져도 큰 스윙으로 나온다”는 쓴소리로 롯데 선수들을 자극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롯데는 지난 2일 KIA 윤석민을 깨고, 4강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준PO라는 가장 큰 무대에서 용덕한은 백업이 아닌 주전 포수급 활약을 펼쳤다. 1차전 연장 10회초 선두타자로 나서 2루타를 터뜨려 결승 득점을 올렸다. 이어 그 외에는 어떤 대체 포수도 없는 상황에서 맞은 9일 2차전에선 7회 동점의 가교가 되는 중전안타에 이어 9회 홍상삼을 상대로 결승 좌월1점홈런을 터뜨렸다. 시즌 홈런이 고작 1개인 용덕한이 준PO에서, 그것도 잠실에서 아치를 그린 것이다. 이제 가을만 되면 눈물 흘린 롯데에도 ‘가을사나이’가 생겼다.
○롯데 용덕한=내가 원래 큰 것을 치는 타자는 아니지 않나? 의식적으로 홈런을 치려던 것은 아니다. 원래 포크볼을 노리려고 했는데, 가운데 (실투성) 직구가 들어와서 생각 없이 돌렸다. 그런데 잘 맞았다 싶어 ‘제발 넘어가라’고 바랐다. 친정팀 두산을 상대로 한 홈런이라 의미가 남다르다. 그렇지 않다면 이상한 것 아닌가. 날 보낸 팀인데…. 사실 오늘 수비에 더 집중하려고 했다. 큰 경기이니 점수를 안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유먼의 직구가 좋지 않아서 변화구를 많이 유도하면서, 내 스타일대로 리드했다.
○롯데 양승호 감독=용덕한에게 기대를 했겠나? 농담이다. 두산 유니폼을 입던 시절부터 용덕한은 ‘가을사나이’다. 그 점에서 기대를 했다. 어제(준PO 1차전) 8회 (박)준서가 나왔을 때처럼 누상에 살아나가 주기만을 바랐는데, 큰일을 해줬다.
잠실|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tsri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