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비정한 도시’ 조성하 “ 쉬는 것 싫어…계속 변화하고 싶다”

입력 2012-10-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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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정한 도시’에서 택시기사 ‘돈일호’역을 맡은 조성하는 “아직 우리가 사는 세상은 비정한 사람보다 착한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인터뷰, 이제 시작하는 걸로~”

배우 조성하(37)는 부드럽고 따뜻했다. 포근포근 카푸치노 거품처럼.

‘꽃중년’의 원조다운 온화한 미소와 친근한 말투, 그리고 푸근한 성격까지…. 조성하는 친절한 이웃집 아저씨 혹은 자상한 아버지 같았다.

영화 ‘비정한 도시’에서 자신의 뺑소니를 목격한 김대우(김석훈)의 협박으로 승객을 납치해 5000만원을 빼앗는 평범한 택시기사 돈일호 역을 맡은 조성하를 광화문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조성하는 사진을 찍을 때도 “아 옆모습을 찍는 걸로~” “이렇게 표정 짓는 걸로~” 하며 ‘신사의 품격’의 ‘~걸로체’를 사용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걸로체’에 빠진 것 같다는 말에 조성하는 “장동건씨가 쓰는 줄 몰랐는데 그렇더라. 어쩐지 여자 분들이 좋아하시더라. 대화 분위기도 좋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비정한 도시’, 애니팡처럼 팡팡! 연결시켜 보세요”

- 이번 영화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무척 재밌어서 참여하고 싶었지만 ‘로맨스타운’과 ‘화차’를 찍고 있어서 고사했다. 그런데 김문흠 감독이 정말 끈질기게 열심히 청했고 결국 영화에 참여하게 됐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를 절실하게 캐스팅했더라. 이제 감독이 빚을 갚을지 두고 봐야한다.(웃음)”

-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하나.

“뭐… 감독이 빚 갚는 방법이야 좋은 작품 만들고, 좋은 배우들한테 좋은 배역 주는 게 빚 갚는 거다.”

- 언론 시사회때, 애니팡(스마트폰 게임)처럼 봐달라고 했다.

“이 영화가 다른 영화와는 전개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관객들이 접근하기 다소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범죄에 10가지 에피소드 그리고 연쇄적인 인간관계 등이 있다. 그래서 관객들이 애니팡을 하는 것처럼 각각의 에피소드를 연결시켜 ‘팡팡팡’ 터트리듯 봤으면 좋겠다.”

- 돈일호는 속마음이 여려서 그런지 좀 답답했다.

“워낙 소시민이고 여린 사람이다. 여린 사람이 평생 안 해본 나쁜 짓을 하려니 얼마나 가슴이 뛰겠나. 몸이 말을 잘 듣지 않는 거다. 5000만 원은 있어야 하고 나쁜 짓을 하려니 미안하고… 스스로 번뇌하는 거다. 아마 모든 사람이 이런 일을 당했을 때는 두서없는 행동을 하지 않을까.”

- 돈일호가 아이를 치었을 때 감정연기가 인상적이었다.

“나 역시 그 장면을 시나리오로 봤을 때 눈물을 흘렸다. 촬영을 하고 모니터를 하면서도 울었다. 돈일호의 번뇌가 쏟아져 나오는 순간이다. 몸과 마음이 따로 교차되는 복잡한 구조를 표현하려고 했다. 정말 뭐라고 표현하기 어렵고 답답했다. 현실로 다가온다면 미치지 않을까. 그런 감정들은 준비돼 있지 않으니까.”

- 실제로 택시기사를 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돈이 필요하고 배우니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경험해보는 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배우에겐 많은 인물을 접촉하는 게 가장 큰 무기니까. 도랑치고 가재 잡는 방법을 선택했다.

- 인상 깊은 손님이 있었나.

“첫 날, 첫 손님이었다. 교장선생님이었는데 날 슬쩍 보더니 노발대발하더라. 성공과 실패를 맛 봐도 모자를 젊은 나이에 현실에 안주하려한다고 화내시더라. 물론 그 분이 택시 기사를 비하하시는 건 아니었다. 아무튼 첫 손님부터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웃음) 가끔 그 분의 말씀을 기억하며 늘 도전하고 열심히 살려고 한다.”

배우 조성하.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 “작품이 끝날 때 마다 매니저들에게 선물을 하는 이유는…”

- 올해 출연한 작품이 꽤 많았다.

“예전에 찍어뒀던 게 많이 개봉이 된 거지 결코 올해 활동을 많이 한 건 아니다. 겉으로 그렇게 보여서 일명 ‘다작(多作)배우’ 라는 말도 있던데…사실 그런 말 유쾌하지 않다. 마치 내가 이 기회에 돈을 모아보려는 것처럼 비춰지긴 싫다. 나는 돈을 벌려고 배우를 하는 게 아니다. ‘명왕성’이나 ‘파수꾼’ 등 감독의 비전이 좋지만 제작 등 여건이 어려운 작품들은 노개런티로 출연한다. 그 감독이 나를 통해, 나도 그 감독을 통해 서로 빛나고 내가 그 작품에 기여할 수 있다면 출연하는 거다.”

- 특별출연도 많이 한 것 같더라.

“‘착한남자’는 (송)중기하고 친하기도 하고, 감독에게도 도움을 받기도 해서 특별출연을 하게 됐다. 드라마 스페셜 같은 경우도 감독과의 유대관계가 있어 참여하게 됐다.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도 다 그들 덕분인데 참여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 인간관계를 엄청 중요시 하는 것 같다.

“제일 중요하다. 서른 살이 되면서 휴대폰을 보니 200여명이 입력돼있더라. 연극배우가 그 정도면 꽤 많은 사람을 아는 건데 훑어보니 평생 함께 할 사람은 별로 없더라. 왜 그런 사람 말이다. 어느 순간이 와도 나를 이해해주고 믿어주는 사람. 그래서 ‘이젠 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내게 소중한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한 작품을 할 때마다 한 사람씩 만든다. 그러다보니 내게 좋은 사람들이 꽤 많더라. 그래서 이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사람 관계가 정말 중요하다.”

- 작품이 끝나면, 매니저들에게 선물을 준다고.

“그냥 크게 볼 필요는 없다. 배우 한 사람을 위해서 많은 스태프들이 준비가 되고 걱정해주는 데 그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고 신발이라도 하나 사주는 등 고마움을 표시하는 거다. 사회에서 만났지만 친밀하게 지낼 수 있고 맘을 나누고 정을 나누는 거다. 사실 나보다 더 큰 일 하시는 배우들이 더 많다.”


▶ “하루하루가 나에겐 성장통”

- 연기는 어떻게 시작했나.

“고등학교 때, 일주일에 5번 미팅을 시켜준다는 연극 서클 선배들의 꼬드김에 넘어갔다. 근데 미팅 대신 얼차려만 받았다. ‘미팅’의 ‘미’자도 생각 못하게 맞았다. 그렇게 연극학과를 갔고 연기를 시작했다.”

- 대중들에게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젊은 시절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보통 연극배우가 혼자 살면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다. 교통비만 있으면 밥은 어떻게든 해결이 된다. 하지만 가정을 꾸리게 되면 이 세상이 내가 생각했던 세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이 자본주의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하시는 분들도 있고 다른 매체를 통해 이름을 알리려는 분들도 많을 거다.”

- 가족들의 지지가 컸을 것 같다.

“그렇다. 보통의 여성은 봐주기 힘들었을 거다. 인내심으로 버텨준 것이 참 고마웠다. 어떤 가족이든 가정 안에서 구김이 없고 힘을 줘야 밖에서 더 열심히 할 수 있고 잘 할 수 있다. 우리 가족은 그래서 서로에게 최대한 잘 해주려고 노력한다.”

- 연기 생활에서의 성장통은 언제 느꼈나.

“나는 매일 성장통을 느끼며 산다. 주제는 만날 다르지만 거의 나에 대한 거다. 어떻게 해야 연기를 더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을까 등을 생각한다. 또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실수를 줄이고 살 수 있을까도 생각한다.”

- ‘꽃중년’이라는 수식어를 만들었다.

“‘황진이’를 할 때 처음 ‘꽃중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굉장히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왠지 그냥 ‘중년’이라고 하면 꼬질꼬질한 냄새가 날 것 같은데 앞에 ‘꽃’이 붙으니 뭔가 기품 있어 보인다. (웃음) ‘꽃중년’이라는 별명이 중년 배우들이 배역 영역을 더 넓힐 수 있다면 굉장히 좋을 것 같다. 이 별명이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앞으로 버릴 생각은 없다.”

- 연극 무대에 설 계획은 없나.

“물론 있다. 태생이 연극배우이니 무대에 서는 것처럼 아름답고 편안함은 없는 것 같다. 마치 엄마 뱃속에 있는 기분이랄까. 무대를 늘 동경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무대에 서고 싶다.”

- 앞으로도 쉬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맞다. 난 쉬고 싶지 않다. 또 계속 변화하고 싶다. ‘조성하답다’ ‘노련하다’ ‘조성하의 완성체’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뭔가 양식화되어가는 게 싫고 배우로서 위험한 일인 것 같다. 늘 ‘조성하의 또 다른 모습’ ‘조성하가 이런 연기도 가능하구나!’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관객들에게 늘 수수께끼를 던져주는 사람이고 싶다.”

인터뷰가 끝난 후, “인터뷰는 여기서 끝내는 걸로~”라고 하자 조성하는 “그럼 이젠 뭐하는 걸로?”라고 재치 있게 답했다.

또, 가방이 열린 것을 모르고 나간 기자를 보고 “어~가방이 열렸네, 천천히 가요”라고 말했다. 끝까지 친절한 조성하였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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