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시즌 결산 키워드 3가지…웨이팅과 매뉴팩처링 사이·발 야구·인치의 승부

입력 2012-11-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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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인 전력에서 밀리는 SK는 소위 득점을 제조하는 ‘매뉴팩처링’ 능력으로 삼성을 따라잡아야 했지만 한국시리즈(KS)에서는 생각만큼 되지 않았다. 최대 분수령이었던 KS 5차전 4회 무사 1·2루에서 박정권은 번트를 시도했으나(위) 삼성의 ‘100% 번트 수비’에 막혀 2루주자 최정이 3루에서 아웃됐다.(가운데) 최정이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아래). 스포츠동아DB

1. 웨이팅과 매뉴팩처링 사이…뻔한 작전은 들통난다
2. 발 야구…배영섭, KS 1차전 결정적 베이스러닝 압권
3. 인치의 승부…KS 1·2차전 SK투수 높은 변화구 실투


가을야구에선 평소 듣지 못하는 야구용어가 자주 나온다. SK-삼성의 한국시리즈(KS) 2·3·5차전에서 나온 ‘100% 번트 시프트’와 ‘페이크번트&슬래시’가 대표적이다. 무사 1·2루서 주자를 2·3루로 보내려는 팀과 이를 막으려는 팀의 눈치싸움 또는 머리싸움이 가을야구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상대 타자에 따라 계속 변하는 수비 위치는 상대팀의 빈틈 파고들기 전술 가운데 하나다. 또 각 구단 전력분석팀이 상대의 장단점을 분석해 건네주는 정보의 양은 포스트시즌이 되면 훨씬 많아진다. SK는 롯데와의 플레이오프(PO)를 앞두고 심판의 스트라이크존 성향까지 파악했을 정도로 깊이 있게 전력분석을 했다.


○롯데의 ‘웨이팅’과 SK의 ‘매뉴팩처링’

‘웨이팅’도 페넌트레이스에선 자주 듣지 못했지만, 이번 가을야구를 통해 귀에 익숙해졌다. 롯데 양승호 전 감독이 두산과의 준PO 1차전에서 외국인투수 니퍼트를 공략할 때 처음 나왔다. 상대 투수의 유인구를 치지 않고 기다리게 하는 벤치의 지시를 잘 따른 롯데 타자들은 페넌트레이스와는 다른 공격 스타일로 가을잔치에서 선전했다. 지난해 PO에서 타자들의 지나친 공격성향 때문에 낭패를 봤던 롯데로선 새로운 야구의 경험이었다. “가을에는 선수들을 믿지 않겠다”던 양 전 감독의 발언은 개인성적은 필요 없고 오직 팀 승리만이 절대명제인 가을야구의 본질을 잘 보여줬다.

‘매뉴팩처링’도 정규시즌보다는 가을에 들을 수 있는 야구용어다. 누상에 나간 주자를 도루 또는 진루타, 희생타 등 안타가 아닌 방법으로 연결해 홈으로 불러들이는 야구를 말한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다양한 방법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점수를 만들어내는 야구’라고 할까. 팬들에게 화끈하게 보이진 않지만, 강팀에는 꼭 필요한 능력이다. 20세기에는 해태가 이런 야구를 잘했다. 한번 찬스를 잡으면 물고 늘어져 9번의 KS 우승을 일궜다. 21세기에는 SK가 매뉴팩처링 야구를 가장 잘하지만 이번 KS에선 그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5차전 9회 무사 3루서 최정이 득점하지 못한 것이 2012년 SK의 현주소였다. 그것이 결국 우승을 넘겨준 원인이었다.


○베이스러닝은 21세기 야구의 키워드

21세기 야구가 20세기 야구와 가장 달라진 부분은 발이다. 2007년 SK 김성근 전 감독이 한국야구에 가져온 선물이 베이스러닝이다. 2년간 일본프로야구 지바롯데 마린스에서 코치생활을 했던 그가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내야안타 때 2루주자가 홈까지 파고드는 장면이었다. 그동안 야구의 기본 가운데 하나지만 깊게 연구하지 않았던 베이스러닝을 SK는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SK의 공격적 발은 두산 김경문 전 감독이 일명 ‘육상부’를 만들며 성공사례로 발전시켰다. 이후 다른 팀에도 전파되면서 2000년대 한국야구를 상징하는 공격방법이 됐다. 삼성 강명구는 이번 KS 1차전 7회말 배영섭의 2루쪽 내야안타 때 2루서 홈까지 파고들며 발의 팀 SK에 충격을 안겼다. 야구역사에 남을 멋진 베이스러닝이었다.


○인치와 30cm의 승부

정교함도 페넌트레이스보다는 가을야구와 연관이 깊다. 흔히 야구를 ‘인치의 경기’라고 한다. 투수가 홈플레이트에서 1인치의 차이만큼 정교하게 컨트롤을 할 수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KS 1·2차전서 SK는 선발투수의 변화구가 높아 결정적 홈런 2방을 얻어맞았다. 삼성 이승엽, 최형우의 홈런은 모두 포수의 어깨 언저리로 오는 높은 공이었다. 3차전서 삼성이 5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한 것도 불펜투수들의 공이 홈플레이트 양쪽을 이용하지 못하고 가운데로 몰렸기 때문이다. 정교한 컨트롤은 가을야구의 생명이다. 김성근 감독은 베이스러닝이 ‘30cm의 승부’라고 했다. 주자가 아웃되거나 세이프되는 차이는 대부분 30cm 이내라는 얘기다. 이 30cm를 위해 주자는 한 발 먼저 뛰거나 리드를 잘 하고, 상대 수비수는 30cm를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이는 가을야구뿐 아니라 정규시즌에도 강팀과 약팀을 가리는 중요한 판단기준 가운데 하나로 충분히 통용될 수 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bga.com트위터 @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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