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댐의 영화 까대기] 브레이킹 던 Part 2

입력 2012-11-14 1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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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의 완성은 제약! (스포일러 주의!)

어쩌면 젊은 세대들에겐, 그저 낡고 시든 왕년의 법칙 정도로 읽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엄연히 존재했던 기쁜 우리 젊은 나날의 마성적 매직들은, 대게 자신의 무한대적 환상에 스스로 제약을 둠으로써, 기묘하고 아이러니한 형태로 완성되곤 했다.

그 예로!
현재 뱀파이어로 세련화 된 드라큘라 백작에겐 햇빛과 마늘, 성수나 십자가등이 그랬고,
늑대인간에겐 보름달, 은 총알, 괴물이 된 후의 무의식적 파괴 본능이 그랬다.
하이드에겐 지킬, 배트맨에겐 어린 시절 트라우마, 스파이더맨의 정체성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판타지라 이름 붙여진 영화에서 이것들이 실종되기 시작했다.
그로인해 극의 긴장감은 밍밍해졌고 판타지 속 캐릭터들은 공포와 스릴러 같은 장르에서 멜로나 드라마 등의 얼레리 꼴레리 한 장르로 너나 할 것 없이 환승하기에 이른다.

트와일 라잇은 이런 자유분방한 하이틴 판타지물 중에서도 최전선에 위치한 작품이다.

인간과 뱀파이어의 금기를 넘어선 불멸의 사랑이라는 단순강력한 한 줄 카피로 함축 되는 이 영화는, 나로 하여금!

영화에 존재하던 최소한의 미덕이었던 인간과 뱀파이어의 불법적(?) 러브 라인과 그로인해 사람과 미지의 존재가 지니는 특유의 습성과 힘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불안 요소마저 벨라가 뱀파이어로 환생하며 사라진 이 마당에 과연 이 무제약적 환상 속 캐릭터와 스토리를 어떻게 마무리 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들게 했다.

하긴, 이런 류의 영화에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환상이라는 세계를 저해하는 가장 고리타분한 관섭이라는 사실은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이것들을 눈 딱 감고 모두 지나친다 하더라도, 이건 좀 해도 너무 했다 싶다.
밤낮 안 가리고, 잠도 안자고, 피로도 없고, 17년산 성수에 마늘 짱아치로는 간에 기별도 못 느끼며 미래를 읽는 능력에 물 폭탄 걱정 없이 쉴드도 자유자재로 치고 소머즈처럼 듣고 600백만 불의 사나이처럼 보는데다 두기만큼 영리하며 앤드류보다 빠른 이 영원불멸의 존재들로도 모자라 추석, 설날 안 가리고 지 맘대로 자유변태 가능한 늑대인간이 사랑하는 여인을 핑계로 로미오와 줄리엣 저리가라인 일족의 철천지원수인 뱀파이어와 사돈관계 운운하며 동고동락 하는 것을 어찌 꼬투리 잡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양심은 있었는지 일말의 제약을 심어 놓기는 했다.
바로 르네즈미라는 벨라와 에드워드 사이에서 태어난 반은 인간이며 반은 뱀파이어인 아이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 존재로 인해 일족들 간에 오해와 갈등이 싹트고 판타지의 최종편의 정석대로 뱀파이어, 늑대인간 연합군 대 막강 순수혈통 귀족무리의 전쟁(이라기엔 좀 소박한)이라는 박진감 넘치는 피날레도 충분히 제몫을 해주고 말이다.

거기에 시리즈를 진화 시키려는 나름의 시도도 성공적으로 보인다.
전편에서 다소 밋밋하게 그려졌던 벨라와 에드워드의 애정씬 농도도 나름 끈적해졌고 일족의 전쟁으로 불가피해진 폭력성의 수위도 전편과는 그 자극이나 강도면에서 극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전형적인 하이틴 멜로에서 약간의 이미지 더부살이로 성인 교집합적 판타지로의 변형을 꽤한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미 ‘파괴자들(올리버 스톤(2012)’에서 선보여 욕을 따발총으로 얻어먹은바 있는, 비극적 결말을 리와인드성 반전으로 비틀어 억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려 한 시리즈 영화의 강박은, 이러한 소소한 매력마저 무마시킬 위기의 절벽 너머로 스스로를 등 떠민 꼴이라 아니 말 할 수 없다 하겠다.--;

사진|‘브레이킹 던 Part 2’ 공식사이트
글|까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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