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정상호 “불운한 포수? 쟁쟁한 선배들 만나 다행”

입력 2012-12-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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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정상호는 “타 팀에 가면 주전”이라는 평가를 들었지만, 쟁쟁한 선배들에 치여 소속팀에선 많은 기회를 잡지 못했다. 올 시즌에는 부상까지 겹쳐 더 힘겨웠다. 23일 결혼을 앞둔 그의 내년 시즌 포부는 남다르다. “부상을 털고, 공격력을 회복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강성우 김동수 박경완 등 가려 백업 10년
당대 최고 포수들 통해 기본기 키운 시간
23일 웨딩마치…이젠 가장 책임감 막중
부상 털고 주전 꿰차기 자율 훈련 구슬땀


누군가는 그를 두고 “불운한 포수”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정상호(30·SK) 본인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훌륭한 선배들 곁에서 포수로서의 안목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인천 동산고 재학시절부터 그는 이미 초고교급 포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1년 1차 지명으로 SK에 입단할 때는 계약금만 4억5000만원을 받았다.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프로에 발을 디뎠지만, 10년의 세월은 불운의 연속이었다. 당대 최고의 포수들과 한솥밥을 먹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회가 적었다. 지금도 그는 “다른 팀에 가면 당장 주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타 팀들이 SK에 트레이드 카드를 내밀 때도 그의 이름을 가장 먼저 거론한다. 복잡한 사정에 속이 상할 법도 하지만, 정상호의 생각은 명쾌하다. “그간 내가 실력으로 보여주지 못한 것이 맞다. 이제는 나 스스로 빛을 터트려야 한다”는 것이다. 23일 4세 연하의 중학교 육상 코치 서한나 씨와 백년가약을 맺는 터라, 책임감은 더 커졌다. 결혼으로 인생의 2막을 여는 그는 야구선수로서도 새 페이지를 쓰겠다는 각오다.

○거인의 어깨에서 포수를 배우다!

정상호가 신인으로 SK 유니폼을 입던 해, ‘수비형 포수’ 강성우(42·현 두산 코치)도 롯데에서 SK로 이적했다. “그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거든요.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됐던 것 같아요.” 2년차 때는 김동수(44·현 넥센 코치)라는 ‘대포수’와도 한 팀 소속이 됐다. “야간경기 끝나고 돌아와도 자정 전에는 항상 잠자리에 드셨던 것으로 기억해요. 오전 7시면 일어나셔서 아침식사 하시고, 소설책 보시고, …. 몸 관리가 정말 철저하셨죠. 그러니 마흔 넘어서까지 선수생활을 하신 것 같아요.” 3년차 때는 박경완(40·SK)이 현대서 SK로 둥지를 옮겼다. 그리고 올해로 10년 째 한 팀에서 뛰고 있다. “박경완 선배를 보면서, 포수는 이래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수비에서의 안정감 같은 것들이요.” 곁눈질로 선배들의 블로킹 동작을 스캐닝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확실히 기회가 오는 시점은 더뎠다. 자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이럴 바에는 대학에 갔다가 프로에 올 걸…”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인고의 세월을 통해 얻은 기본기들은 지금의 그에게 큰 자산이다.


○부상 탈출을 다짐한 터미네이터

올 시즌을 앞두고 정상호는 “4번타자 후보”로 거론됐다.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처럼 파괴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시범경기에서 발목 부상을 당하며 첫 단추를 잘 못 끼웠다. 시즌 중에는 허리 부상도 엄습했다. “타석에 서면, 무엇인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성급해졌다”는 게 본인의 평가다. 이제 수비능력도 수준급이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타격능력의 부활이 정상호에게 떨어진 과제다. “타격 메커니즘에 변화를 준다기보다는 부상을 안 당하는 것이 먼저인 것 같아요. 그래서 올 겨울에는 보강운동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그는 11월 한 달 동안 문학구장에서 구슬땀을 흘렸고, 12월에도 자율훈련에 여념이 없다. 정상적인 몸으로 시원하게 방망이를 돌리는 것이 정상호의 내년 시즌 최대 목표다.


○안방마님을 맞은 안방마님

정상호는 최근 하와이로 미리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결혼식 이후에는 스프링캠프 준비로 바쁘기 때문에 일정을 당겼다. 허니문 기간에도 그는 웨이트트레이닝을 거르지 않았다. 푹푹 꺼지는 해변의 모래밭에서 하체를 단련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예비신부는 단 한번도 서운함을 표현하지 않았다. “운동선수 출신이라서 그런지 제 직업에 대한 이해심이 깊어요. 눈치가 빨라서 제가 잘 하든, 못하든 응원을 보내는 것도 힘이 되고요.” 그는 또 한 가지 예비신부에 대한 자랑을 덧붙였다. “장모님 닮아서 그런지 요리솜씨가 대단해요. 제가 사실 가을부터 살이 조금 올랐는데, 장모님과 예비신부 덕입니다.” 사랑의 결실을 맺은 그는 감성적인 비유 하나를 들었다. “저도 이제 꽃망울을 터트릴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빛을 한번 활짝 볼 때가 됐죠.” 새 신랑이 된 안방마님은 “신부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말을 꺼냈다. 그래서 정상호의 겨울은 더 뜨겁기만 하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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