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현 사망, ‘서른까지만 살고 싶다’던 희망의 불꽃 꺼지다

입력 2013-05-08 15:3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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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사망 소식이 전해진 프로게이머 박승현의 과거 모습. 박승현은 온라인으로만 경기를 치르다 아프리카 워크래프트3 리그 결승-4강 경기 당시 처음 오프라인 경기에  당시 오프라인 경기에 출전한 박승현. 사진출처|온라인 커뮤니티

[동아닷컴]

지난 7일, e스포츠 팬들에게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워크래프트3 프로게이머 박승현의 사망 소식이었다.

고스페이스(Go)Space) 박승현(당시 18세)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2006년이다. 박승현은 당시 워3계에서 사실상 ‘버려진 종족’이라 불리던 언데드로 놀라운 기량을 선보였다.

최근 몇 년간 언데드하면 중국의 'Ted' 쩡 주오를 가장 알아주지만, 원래 언데드하면 한국이었다. 'Sweet' 천정희, 'Gostop' 김동문, 'Lucifer' 노재욱 등 일명 ‘6언데’는 'Moon' 장재호, 'Lyn' 박준 등과 더불어 한국 워3계를 지배한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게임 설계상 언데드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타 종족과 달리 금 캐는 일꾼 5명이 반드시 필요했던 언데드는 다시 말하면 그 금 캐는 일꾼에만 어떻게든 피해를 줄 경우 힘을 잃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때문에 '6언데'도 차차 쇠퇴해갔다. 당시 워3 커뮤니티들에는 ‘워3는 3종족이 경쟁하는 게임’, ‘언데드는 종족이 아니라 경험치’, ‘야 언데드 좋지 않아 하지마’ 등의 자학 섞인 말들이 가득했다.

그 와중에 등장한 것이 박승현이었다. 박승현은 인터넷방송 아프리카 등을 통해 중계된 각종 워3 온라인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박승현의 활약상은 해외 프로게임단 프나틱(Fnatic)에서 입단 제의를 해올 만큼 굉장했다.

하지만 박승현이 세인들의 관심을 끈 것은 성적 뿐만이 아니었다. 박승현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근위축증이 발병, 다리부터 시작해 차츰 온몸의 근육을 쓸수 없게 됐다. 박승현의 전성기였던 2006-2008년 당시, 이미 박승현은 손가락과 목 밖에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이 의자 위에 그를 앉힌 후, 마우스와 키보드 위에 손을 얹어줘야 비로소 박승현은 경기에 임할 수 있었다. 손가락의 움직임이 극히 제한되다보니 단축키도 1번부터 4번까지밖에 쓸 수 없었다. '근위축증' 환자는 대부분 30세 이전에 사망한다는 '타임 리미트'도 걸려있었다.

그런 몸으로 박승현은 아프리카 워크래프트3(AWL) 리그 시즌1 4위, 시즌3 준우승 등 혁혁한 성적을 냈다. 당시 AWL은 결승 및 3-4위전을 오프라인에서 치렀는데, ‘박승현에게 온라인 경기를 허용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두고 관련 커뮤니티들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결국 오프라인에서 치러진 경기에서 박승현은 본인의 실력을 다 내지 못하고 아쉽게 졌다.

2008년 영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승현은 “딱 서른까지만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유는 “게임을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사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아서”였다.

워크래프트3 프로게이머 엄효섭은 지난 7일 워3 커뮤니티 'A1 방송국‘에 “박승현 선수가 월요일 새벽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장은 대구 북구 대현2동 415-2 큰사랑요양병원 장례식장이고, 내일(8일) 오전 발인한다고 하시네요”라고 박승현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향년 25세였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동아닷컴 김영록 기자 bread425@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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