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SK 박경완 “투수와의 깊은 신뢰? 사인 낸 이유 꼭 설명”

입력 2013-06-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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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프로야구의 명장 노무라 감독은 ‘우승팀의 10가지 조건’으로 확실한 포수의 존재를 언급했다. 1991년 쌍방울에 입단한 박경완은 현대(1998∼2002년), SK(2003년∼ )를 거치며 다섯 개의 우승 반지를 끼었다. 역대 최고의 포수로 꼽히는 그가 1군으로 돌아왔다. SK는 박경완의 합류로 반전을 노리고 있다. 박경완이 3일 문학구장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학|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sevensola

부상·2군…돈 주고도 못할 인생공부
1000타점 신기록 보다 난 야구가 재미있어
롱런 하는 자가 강한 것… 프로는 근성
SK는 스타의 팀 아닌 끈끈한 조직력의 팀
지금도 한경기 투수 리드 모두 복기
중요한 포인트의 공배합 1년 지나도 안잊어

‘포도대장’이 돌아왔다. 지난달 28일 1군 엔트리에 등록한 박경완은 30일 문학 삼성전에서 6회부터 포수 마스크를 쓰며 333일 만에 1군 복귀전을 치렀다. 김동수(넥센 코치·40세 9개월 19일)가 보유한 역대 포수 최고령 출전 기록도 40세 10개월 19일로 갈아 치웠다. 김광현과 호흡을 맞춘 5일 마산 NC전부터는 매 경기가 신기록 행진. 2007∼2012시즌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의 위업을 달성한 SK는 올 시즌 하위권으로 처져있다. 한때 ‘팀 전력의 절반’이라던 박경완은 SK가 내민 반전 카드다. 2군에서 박경완의 활약을 지켜본 타 팀 코칭스태프는 “아직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팀 재건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박경완을 만났다.


● 2년간의 2군 생활, 돈 주고도 못살 인생공부


-1군 경기를 치른 소감은.

“첫 타석에선 사실 좀 어색했다. 야간경기가 너무 오랜만이었다. (삼진을 당할 때) 안지만(삼성)의 공이 원바운드인줄 알았다. 역시 1·2군 투수의 공에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수비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더라. (진)해수랑 처음 호흡을 맞춰봤는데, 공이 엄청 빨라서 놀랐다. 제구만 좀 되면 매력적인 투수가 될 것 같다.(웃음)”


-지난 2년간은 부상 등으로 시련기였다. 2군 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은.

“프로 21년차 때(2011년) 그런 상황이 닥쳤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다. 그 과정을 이해 못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솔직히 심리적으로 불안정했던 시기도 있었다. 내 마음을 다스리는 데 1년이 걸린 것 같다. ‘내가 운동을 게을리 하면, 2군 선수들이 뭘 배우겠나’하는 생각 때문에라도 열심히 했다. 2년간 돈 주고도 못살 인생공부를 한 것 같다.”


-한때 은퇴 결심까지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은퇴 선언을 해버릴까. 내 다리가 과연 나을까. 내 몸이 될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박경완이라는 야구선수가 한순간에 확 없어지는 게 싫었다. 결국 ‘언젠가 은퇴를 하겠지만, 이런 식으로 그만두지는 말자’고 결론을 내렸다.”


-300홈런(313개)을 달성했고, 1000타점(994개)도 얼마 남지 않았다. 더 이루고 싶은 게 있나.

“기록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야구를 한 게 아니다.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다. 야구가 너무 하고 싶었고, 지금도 너무 재밌다. 투수들이 늘어가는 게 보일 때, 포수로서 희열을 느낀다. 뒤에서 채찍질하는 게 내 역할인 것 같다. 1군에서 내가 안 된다고 생각할 때 깨끗하게 물러나고 싶다. 우승하고 그만두면 최고인데….”


-오랜 기간 선수생활을 한 비결은.

“후배들에게 그런 얘길 한 적이 있다. ‘부러지지 않는 이상 야구해야 되는 거 아니냐? 터지지 않는 이상 야구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렇게 말하니, 정말 아킬레스건이 터지더라.(웃음) 예전에는 강한 놈이 오래하는 줄 알았는데, 오래 하는 놈이 강한 것 같다. 근성을 가져야 한다. 요즘에는 조금 아프면 쉬려고 하는 선수들도 있다. 야구 하면서 정말 안 아픈 때는 별로 없다. 그걸 잘 이겨내야 오래, 잘 할 수 있다.”


● SK는 슈퍼스타가 아니라, 끈끈한 조직력으로 돌아가는 팀


-팀이 위급한 상황에서 돌아왔다.

“포수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다. 젊은 투수들을 잘 이끌어야 할 것 같다.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는 ‘그라운드 안에선 코칭스태프가 아닌 선수가 야구를 한다’는 것이다. 팀 성적이야 떨어질 수도 있지만, 자기가 갖고 있던 것들을 잃어버려선 안 된다. 다시 자신의 궤도를 찾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현재 SK가 부진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나 역시 선수다. 굉장히 민감한 얘기이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하지만 선수들에게 말하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 우리 SK는 특출한 선수 서너 명으로 운영하던 팀이 아니었다. 김광현도, 정근우도 슈퍼스타는 아니다. 위에서 당겨주면 밑에서 따라오고…. 그렇게 끈끈한 조직력으로 버텨온 팀이다. 지금은 약간 그런 맛이 없지 않나 싶다.”


● 투수가 내 리드를 믿어 주기에, 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


-SK 투수들은 ‘박경완 선배와 복기를 하면서 신뢰가 생긴다’고 하던데 어떤 식인가.

“중요한 포인트에 대해선 왜 그 사인을 냈는지 꼭 설명한다. 때로는 ‘다음 공은 무엇을 던지려고 했는데 써보지도 못하고 맞았다. 그냥 그 공을 먼저 써버릴 걸…. 후회된다.’ 이런 얘기까지도 전한다. 내가 앉아 있기 때문에 던지고 싶은 공을 선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투수의 생각도 묻는다.”


-김수경(넥센) 코치는 ‘박경완은 안타를 맞으면, 투수보다 더 아쉬워한다’는 말을 하던데.

“언젠가부터 그렇게 됐다. 투수들이 나를 믿고 고개 한번 안 흔들고 던지지 않나. 그래서 난 막아도 본전이라고 생각한다. 안타 맞으면 내가 투수들 연봉을 깎아먹는 것이다. 내 머리와 손가락만 믿고 따라와주기 때문에 사인을 낼 때 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


-박경완의 리드는 변화구 비율이 높다거나, 투구수가 많아진다는 얘기도 있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2000년대 이후 직구 못 치는 타자는 거의 없다. 그리고 변화구를 던져야 직구가 살아난다. 직구 던져서 변화구가 사는 투수는 없다. 나는 이기기 위한 리드를 한다. 어찌 보면 신중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투구수가 많을 수는 있다. 하지만 항상 많은 것은 아니다. 적극적 타자에게는 초구에 승부구를 던지기도 한다.”


-정말 한경기의 모든 리드를 다 복기할 수 있나. 100개가 넘는데.

“웬만하면 다…. 중요한 포인트의 공 배합은 몇 개월, 1년이 지나도 안 잊는다. 그래야 다시 그 타자를 만났을 때 유리하다.”


-몇 구 뒤까지 고려하고 리드를 하나.

“2∼3구? 일단은 스트라이크가 될 경우와 볼이 될 경우를 구분한다. 거기에 타자의 움직임, 투수의 구위, 야수의 움직임, 바람의 움직임 등이 플러스된다고 보면 된다.”


-카도쿠라(삼성 인스트럭터) 역시 박경완을 훌륭한 포수로 꼽던데.

“2010년 우승 뒤풀이 때였다. 펑펑 울면서 고맙다는 말을 하더라. 통역을 불렀더니 ‘야구 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너무 많은 것을 배우고 간다’고 했다. 나 역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포수는 어찌 보면 한 경기에 대해 투수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할 수도 있다. 이럴 때 정말 포수로서 희열을 느낀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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