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입스와 싸움…김태훈의 인간승리

입력 2013-08-05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데뷔 7년 만에 첫 우승을 차지한 김태훈이 우승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사진제공|KPGA

데뷔 7년 만에 첫 우승을 차지한 김태훈이 우승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사진제공|KPGA

■ KPGA 보성CC클래식 V…프로 첫 승

입스 악몽에 멘탈 상담·골프 은퇴 생각도
우연히 페어웨이 넓은 골프장서 입스 탈출

타고난 피…아버지 큰아버지 등 선수출신


8년을 괴롭혀온 긴 슬럼프. ‘포기’라는 말이 맴돌았지만 그래도 골프채를 놓지 않았다. 첫 우승은 악몽 같았던 시간을 말끔히 씻어냈다.

‘프로 7년 차’ 김태훈(27)이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하반기 첫 대회인 보성CC클래식(총상금 3억원·우승상금 6000만원)에서 프로 첫 우승을 차지했다.

김태훈은 4일 전남 보성의 보성골프장(파72·7045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합계 21언더파 267타로 우승했다. 상금랭킹 1위 류현우(33·18언더파 270타)가 이날만 6타를 줄이며 끈질긴 추격을 펼쳤지만 끝까지 역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김태훈은 아마추어 시절 국가대표를 지낸 유망주다. 전국체전에서 2관왕을 차지한 적도 있다. 그러나 잘나가던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국가대표 활동 중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다. 골퍼들에게는 불치병으로 불리는 드라이브 샷 입스(Yips)에 걸렸다. 입스는 미스샷에 대한 두려움으로 몹시 불안한 심리 상태다.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기술적인 문제보다 마음의 병으로 불린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선수라고 해도 입스에 걸리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심지어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다. 드라이브 샷 입스가 가장 흔한 경우이고 아이언, 퍼팅 등 모든 스윙에서 입스가 발생하기도 한다.

입스는 8년이나 김태훈을 괴롭혔다. 골프를 포기할 생각까지 하게 했다.

김태훈은 “멘탈 상담도 받아보고 하루 700∼800개의 드라이브 샷 연습을 하기도 했다. 유명 코치에게 레슨도 받아봤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뜻대로 되지 않고 마음고생이 심해지면서 주변 분들에게 화도 많이 내고 못된 행동도 많이 했다. 골프를 포기할 생각도 했었다”라고 말했다.

지독하게 괴롭혀온 입스는 우연한 계기에 벗어나게 됐다.

“작년 전북 익산의 베어리버 골프장이 페어웨이가 넓어 드라이브 샷을 마음껏 휘두르며 됐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드라이브 샷이 잡혔다.”

입스에서 탈출한 뒤 김태훈의 골프인생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2년 간 시드를 잃고 Q스쿨을 전전했던 그는 올해 전 대회 예선통과에 이어 데뷔 7년 만에 감격의 첫 우승을 차지했다.

김태훈은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나지 않는다. 지난 8년간 너무 많은 고생을 해서 감정이 무뎌진 것 같다”라고 말한 뒤 “이번 우승으로 코리안투어 시드를 획득하게 됐다. 9월 일본투어 큐스쿨에 도전하겠다”라며 각오를 밝혔다.

김태훈은 우승으로 상금 6000만원과 함께 내년 KPGA 코리안투어 풀 시드를 받았다.

단독 2위에 오른 류현우는 상금 3000만원을 추가해 1위(2억4721만원)를 지켰다. 이동민(28)은 합계 17언더파 271타로 3위, 최호성(40)은 4위(16언더파 272타)에 올랐다.

김태훈(오른쪽)이 4일 전남 보성에서 열린 KPGA 코리안투어 보성CC클래식에서 프로 데뷔 첫 우승을 차지했다. 캐디로 나서 우승을 함께 일궈낸 아버지 김형돈 씨가 아들의 등을 두드리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KPGA

김태훈(오른쪽)이 4일 전남 보성에서 열린 KPGA 코리안투어 보성CC클래식에서 프로 데뷔 첫 우승을 차지했다. 캐디로 나서 우승을 함께 일궈낸 아버지 김형돈 씨가 아들의 등을 두드리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KPGA



● 아버지 큰아버지 사촌 누나 등 스포츠선수 가족

김태훈은 스포츠 유전자를 타고 났다. 뼛속까지 운동선수다. 그의 아버지 김형돈(52) 씨는 축구 선수 출신이다. 또 큰아버지는 프로야구 초창기 해태 타이거즈의 강타자로 이름을 날린 김준환(58) 현 원광대 감독이다. 사촌누나 김상희(31)는 KLPGA 프로골퍼로 활동 중이다. 골프선수를 하게 된 것도 큰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아이스하키를 했다. 그러다 인근 중학교에 있던 아이스하키부가 없어져 진학할 곳이 없었다. 큰아버지께서 골프를 권유해서 시작하게 됐다.”

김태훈은 아버지와 함께 필드를 누빈다. 아버지가 캐디를 맡고 있다. 우승 뒤 김태훈은 “아버지가 캐디를 하시는데 나랑 잘 안 맞는 것 같다. 아버지는 실수를 하기 전에 말씀하시지 않고 실수를 하면 ‘그럴 줄 알았다’라고 말하신다. 그 전에 말씀해주시면 좋을 텐데….”라고 웃으며 말한 뒤 “하지만 누구보다 나에 대해 잘 알기에 아버지와 계속 필드를 누비고 싶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na1872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