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간소화 면허’ 김여사, 동네 마트도 못 간다

입력 2013-08-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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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허를 따도 운전을 못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011년 운전면허 간소화 이후 극단적으로 쉬워진 시험과 턱없이 부족한 의무교육시간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경기도의 한 자동차전문운전학원에서 50m 직진 주행연습을 하고 있는 교육차량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5. 면허를 따도 운전이 두렵다

“마트나 아파트 주차장 들어가기 겁난다”
S·T자 코스 교육 필요…2시간으론 무리
면허 따도 운전 못해 ‘장롱면허’만 양산

“돈을 주고 면허를 산 기분이다.”

운전면허시험을 위한 최종관문인 도로시험주행까지 통과해 기다리고 기다리던 면허증을 손에 쥐게 됐지만 최동일(24·가명)씨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최씨는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운전전문학원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의무교육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대로는 도로에 나가 운전을 한다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고 했다.

역시 갓 면허를 획득한 주부 김연정(35·가명)씨는 “도로 운전도 운전이지만 주차할 때마다 너무 무섭다. 마트 주차장을 들어가거나 아파트에 주차를 하기 위해서는 S자, T자 코스를 익혀야 하는데 학원에서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학원에서 강사에게 S자와 T자 코스를 가르쳐 달라고 요구했지만 2시간 교육시간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불만을 비쳤다.


● 도로를 누비는 2시간짜리 ‘폭탄차량’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업계, 전문가들은 물론 운전교육생, 면허 획득자들까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부분은 두 가지다. 우리나라 운전면허시험이 지나치게 쉽고, 교육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시험이 쉬우면 합격자가 늘어나고, 교육시간이 줄어들면 수험생들의 경제적 부담이 적어지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문제는 이 시험이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한 시험이라는 점이다. 면허를 획득했지만 실제로 운전을 할 수 없는 운전자가 늘고 있다. 도로에는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운전자들이 모는 ‘폭탄차량’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도로주행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연습차량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운전학원 내부 연습장에서 달랑 2시간 교육을 받은 교육생들이 운전하는 차량들이다. 기능강사들은 매일 ‘오늘도 무사히’를 되뇌며 도로주행 연습차량에 동승한다. 교차로 신호위반은 물론이고 툭하면 중앙차로를 넘어가는 차량들이다.

면허를 획득해도 운전이 두려워 추가 비용을 들여 교육을 받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전문학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으면 그나마 다행. 운전면허시험장에 가보면 도로주행교육을 해주겠다는 속칭 ‘운전교육 삐끼’들이 즐비하다. 보조브레이크가 없는 무허가 차량으로 교육해 사고 위험이 높을 뿐만 아니라 사고가 났을 경우 보험혜택도 받을 수 없다. 무엇보다 불법행위다.


● 800만장이 ‘장롱면허’…“앞으로가 더 문제다”

현재 실시되고 있는 우리나라 운전면허시험제도는 2011년 6월에 간소화된 제도이다. 정부에서는 면허 취득을 원하는 사람들의 경제적, 시간적 부담을 줄여준다는 명목으로 기존의 시험제도와 전문학원들의 의무교육시간에 메스를 들이댔다. 기능시험은 ‘원숭이도 딸 수 있을 만큼’ 쉬워졌고, 교육시간은 대폭 줄어들었다.

25시간이던 학과교육은 5시간, 20시간 장내 기능교육은 2시간, 도로주행교육은 15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었다. 현재 교육생이 전문학원에서 받을 수 있는 교육시간은 총 13시간에 불과하다.

그 결과는 교통사고의 증가로 나타났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한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011년 5229명에서 2012년 5392명으로 증가했다. 차량 1만대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6명에 달한다. 이는 OECD국가 평균에 비해 2배나 높은 수준이다.

설상가상 정부, 경찰청 등에서 집계한 통계는 대부분 운전면허증 소지자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중에는 전혀 운전을 하지 않는 ‘장롱면허’가 포함돼 있다. 손해보험업계에서는 우리나라 운전면허 소지자(2012년 기준)를 2800만 여 명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중 800만명 이상이 운전을 하지 않는 것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실제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운전자 1명당 교통사고율’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운전교육 현장에서는 “앞으로가 더욱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운전면허시험 응시자는 만19세부터 20대 초반의 젊은 층이 많다. 아직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았거나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 운전을 하지 않는 세대이다. 따라서 이들의 면허증은 당분간 ‘장롱면허증’으로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2011년 운전면허시험 간소화 이후 면허를 획득한 젊은 세대들이 머지않아 도로로 쏟아져 나오게 될 것이다.

운전면허시험장과 교육 현장에서는 “하루하루가 불안하다”며 애타게 외치고 있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생명을 절감할 수는 없다.

양형모 기자 ranbi361@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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