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보 감독. 스포츠동아DB
“정성룡은 경험이 가장 풍부한, 우리 팀에 정말 중요한 선수 중 한 명이다.”
축구대표팀 홍명보 감독이 슬럼프에 빠져 있는 골키퍼 정성룡(28·수원 삼성)을 공개적으로 변호했다. 정성룡은 2010남아공월드컵 16강과 작년 런던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이다. 몇 년 동안 대표팀 부동의 넘버 원 수문장이었다.
그러나 최근 K리그 경기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등 부진에 빠져 있다. 공교롭게 비슷한 시기 후배 김승규(23·울산 현대)가 연일 좋은 활약을 보이면서 골키퍼 세대교체에 힘이 실리고 있다.
홍 감독은 스위스와 평가전 전날인 14일 공식 기자회견 때 골키퍼 경쟁에 대한 질문을 받은 뒤 “골키퍼 역시 마지막까지 훈련을 해봐야 안다. 지금부터 경쟁이 중요하다. 내년 5월에 어떤 경기력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그러나 이어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의견을 첨가했다.
“지금 정성룡에 대해 질문하시는 것 같은데 정성룡은 우리 선수 중 가장 경험이 많아 수비진에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선수다. 우리 팀에 중요한 선수 중 한 명이다. 밖에서 어떤 말을 해도 신경 쓰지 말고 지금 하는 일을 꾸준히 즐겁게 잘했으면 좋겠다. 선수는 분명 나쁠 때가 오고 거기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다. 자연스럽게 즐기면서 한다면 좀 더 쉽게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홍 감독은 평소 선수 개개인에 대한 평가는 삼간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코멘트는 분명 의도된 것이었다.
홍 감독은 정성룡을 보며 자신의 선수시절을 회상했을지 모른다. 홍 감독은 국내 어떤 선수보다 화려한 대표 생활을 보냈다. 하지만 그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 특히 2002한일월드컵을 앞두고 히딩크 전 감독이 부임한 뒤 젊은 수비수들이 치고 올라올 때 홍 감독은 예기치 않은 부상을 당했고 덩달아 경기력도 하향곡선을 그렸다. 지금 정성룡처럼 그 때도 수비수 세대교체론이 불었다.
홍 감독은 자신이 잠시 부진에 빠지자 그 동안 쌓아온 업적은 하나도 인정해주지 않는 주변 분위기에 속상했다. ‘이대로 명예롭게 은퇴할까’하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실력으로 후배들과 당당히 경쟁 하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시련을 이겨냈고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 된 뒤 명예롭게 은퇴했다.
홍 감독의 측근 중 한 명은 “홍 감독은 풍부한 대표팀 선수, 코치 경험을 통해 선수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또 그럴 때는 어떤 말을 해줘야 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대표팀 지도자로서 장점을 설명한 적이 있다. 홍 감독은 대표팀의 주전급 선수도 언젠가 힘든 시기를 겪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정성룡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트위터@Bergkam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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