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은 국내에서 1983년 초연된 이래 30년 동안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어 국민 뮤지컬로 불린다. 사진제공|CJ E&M
1983년 국내 초연…리바이벌 횟수만 17회
낡지 않은 재미 비결은 연출가 이지나 솜씨
사라·아들레이드 ‘오늘 결혼해’는 박장대소
꼭 우리나라 창작물이어야 ‘국민’이란 칭호를 붙일 수 있다는 조건이 아니라면 개인적으로 ‘국민뮤지컬’이라 불리어 마땅하다고 보는 작품은 세 개 정도가 있다. 전국을 ‘댄싱퀸’ 열풍으로 뒤덮은 ‘맘마미아’와 소극장 창작뮤지컬인 ‘빨래’.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아가씨와 건달들’이다.
이중에서도 ‘아가씨와 건달들’이 지닌 위상은 남다른 점이 있다. 다른 건 몰라도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가장 꾸준히 무대에 올려진 작품이라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아가씨와 건달들’을 넘볼 작품이 없지 않을까. 1950년에 미국에서 첫 선을 보인 작품이니 뮤지컬사로 봐도 요즘 작품들에게 증조 할아버지뻘쯤 되는 고전. 우리나라에서도 1983년에 초연되었으니 무려 30년이나 되었다. 그 동안 리바이벌된 회수만 17회에 달한다.
●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는 마법같은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이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질리지 않고’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요즘 눈으로 보면 ‘아가씨와 건달들’은 말 그대로 케케묵은 고전이다. 뮤지컬은 음악의 장르지만 음악도 크게 귀에 꽂히지 않는다. 넘버(노래)도 요즘 뮤지컬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그런데 어깨에 힘을 빼고 어둠 속 관람석에 몸을 묻고 있으면 곧 알게 된다. ‘아가씨와 건달들’을 보는 동안 행복감이 자신도 모르게 부글부글 끓어올라 어느 순간 비등점을 넘어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뉴욕 최고의 승부사. 도박사라는 점만 빼면 그야말로 퍼펙트한 완벽남인 ‘스카이’와 선교로 퇴폐한 브로드웨이 뒷골목을 정화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매력적인 선교사 ‘사라’가 사랑을 쌓아 나가는 이야기는 지금 봐도 조금도 낡지 않은 재미를 준다. 고전을 요즘 감각에 맞게 풀어내는데 일가견이 있는 연출가 이지나의 솜씨다. 그는 배우 시절 실제로 ‘아들레이드’를 맡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아들레이드는 이지나가 최고”라고 꼽는 올드팬들이 있을 정도다.
● 사라·아들레이드의 ‘오늘 결혼해’는 놓치지 말 것
TV 드라마를 통해 많은 여성팬을 확보하고 있는 류수영은 ‘스카이’를 맡아 완벽한 도시남을 섬세하게 그렸다. 노래가 조금 아쉽지만 연기만큼은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결혼 후 무대로 복귀한 김지우의 ‘사라’는 귀엽고 깜찍해 호주머니에 넣고 싶을 정도다. 특히 노처녀 쇼걸 ‘아들레이드’의 구원영은 엄지손가락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약혼 후 무려 14년이나 ‘네이슨’이 결혼해 주기를 기다리는 처량한 푼수녀 역이 마치 본인 얘기를 하는 듯 자연스러워 너무 재미있어 하기에 미안해질 정도다.
극 후반 ‘사라’와 ‘아들레이드’가 만나 함께 부르는 ‘메리 더 맨 투데이’(그와 오늘 결혼해)는 박장대소하며 어깨를 들썩이게 된다.
내년 1월 5일까지 서울 압구정동 BBC씨어터에서 공연한다. 11월 ‘아가씨와 건달들’과 함께 문을 연 새 극장이라 시설도 쾌적하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