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 카노(시애틀). 동아닷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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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닷컴]

지난해 메이저리그 자유계약선수(FA) 시장 최대어였던 로빈슨 카노(32)가 시애틀로 이적했다. 계약 조건은 10년 총액 2억4000만 달러(약 2545억 원). 빅리그 총액규모 역대 3번째에 해당하는 초대형 계약이었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2루수 카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2001년 뉴욕 양키스에 입단하며 미국으로 건너갔다. 프로 초창기에는 주목 받지 못했지만 2003년부터 유망주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두각을 나타냈고 프로진출 4년 째인 2005년 5월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카노는 빅리그 풀타임 첫 해였던 2005년 타율 0.297 14홈런 62타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입증했고 이듬해인 2006년에는 자신의 빅리그 커리어하이 타율(0.342)과 15홈런 78타점을 기록하며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카노는 이후 2008년 타율(0.271)만 제외하고 매년 3할 이상의 성적을 기록하며 뉴욕 양키스를 대표하는 빅리그 정상급 내야수로 군림했다. 메이저리그 9년 통산 성적은 타율 0.309 204홈런 822타점 1374안타.

카노는 또 2009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비롯해 올스타(5회), 실버슬러거 상(5회), 골드글러브(2회)를 수상했고, 지난해에는 도미니카공화국 대표로 참가한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우승의 감격을 맛보며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카노의 부친 호세 카노(52) 또한 과거 메이저리그 선수였다. 투수였던 그는 1989년 휴스턴에서 빅리그에 데뷔했다. 하지만 이후 단 3경기에 등판해 1승 1패 평균자책점 5.09의 기록만 남겼다.

카노의 부친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메이저리그 성공’의 꿈을 위해 아들의 이름을 로빈슨으로 지었다고 한다. 로빈슨은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선수였던 재키 로빈슨(작고)에서 따온 것이다.

카노의 부친은 오른손 타자였던 카노를 좌타석으로 옮기게 하는 등 일찍이 아들을 야구선수로 키우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카노의 부친은 또 2011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홈런 더비에 출전한 아들을 위해 마운드에 올라 직접 공을 던졌고 카노는 당시 홈런 더비에서 1위를 차지해 아버지의 헌신에 보답했다.

동아닷컴은 국내언론 최초로 지난 20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 피오리아에 위치한 시애틀 스프링캠프에서 카노를 만나 단독 인터뷰했다.
로빈슨 카노(시애틀). 동아닷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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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카노와의 일문일답.

-만나서 반갑다. 최근 몸 상태는 어떤가?

“오늘이 스프링캠프 합동훈련 첫 날이다. 그래서 몸 상태가 아직은 100% 완벽하다고 할 순 없지만 나쁘지 않은 편이다.”

-메이저리그 연봉 최고액 선수 중 한 명이 됐다. 소감이 특별할 것 같다.

“그렇다. 특히 연봉 액수를 떠나 10년이란 장기계약을 받아들여 준 시애틀 구단에 감사한다. 메이저리그 선수가 된 것도 그렇고 이번 FA 계약까지 나는 참 복이 많은 것 같다.”

-시애틀 입단 기자회견 당시 전 소속팀인 뉴욕 양키스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지난 일이라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들과의 계약협상 과정에서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양키스 유니폼은 24번이었지만 이곳 시애틀에서는 22번이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시애틀의 24번은 켄 그리피 주니어(은퇴)가 달던 번호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오를 선배의 번호는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저 없이 24번을 포기하고 22번을 선택했다.”

-유니폼 번호도 그렇고 새로 이적한 시애틀이 조금은 생소할 것 같다.

“그렇다. 대부분 낯선 얼굴이다. 투수 펠릭스 에르난데스와만 긴 대화를 나누었을 뿐 아직 다른 동료들과는 대화할 시간도 없었다.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 훈련은 물론 동료들을 알아가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새로 이적한 시애틀에서 올 시즌 목표가 있다면?

“특별한 목표를 정해놓지는 않았다. 특히 타율이나 홈런 등 수치상의 목표를 정해놓으면 오히려 부담이 돼 역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올해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부상 없이 많은 경기에 출전해 즐겁게 야구를 하는 것이 우선이다.”
로빈슨 카노(시애틀). 동아닷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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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위해 사전조사를 해보니 당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당신 부친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웃으며) 그렇다. 잘 알겠지만 나의 아버지 호세 카노는 과거 메이저리그 투수였다. 아버지 때문에 야구를 시작한 것은 물론 아버지를 통해 야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아버지에게 항상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물론 그는 내 삶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특별한 존재이다.”

-올스타는 물론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메이저리그 데뷔 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야구를 시작한 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자면?

“당신이 언급한 것처럼 야구를 시작하고 이와 관련된 많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역시 메이저리그로 콜업된 날이다. 수많은 시간이 흘러도 그날 느꼈던 벅찬 감동과 기쁨은 영원히 지울 수 없다.”

-메이저리그에서 9년간 뛰며 많은 투수들을 상대했다. 본인에게 가장 어려운 투수는 누구인가?

“빅리그 투수는 모두 다 수준급 이상의 실력을 가진 선택된 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 한 명만 콕 집어 어렵다고 말할 수 없다. 모든 투수가 매 타석 집중하지 않으면 공략하기 어려운 실력파들이다.”

-지난 2008년 타율 0.271로 잠시 부진했다. 이때처럼 시즌 중 슬럼프가 찾아오면 어떻게 하나?

“나는 슬럼프에 빠졌다고 다른 것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더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평소에 하던 대로 연습하면서 훈련량을 늘릴 뿐이다.”

-연습이나 경기가 없는 날은 주로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하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그냥 집에서 쉬는 편이다.”

-야구선수들은 비디오게임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웃으며) 나는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냥 쉬는 게 좋다.”

-당신의 야구실력으로 미뤄볼 때 다른 운동도 잘할 것 같다.

“(손을 내저으며) 그렇지 않다. 다른 운동은 거의 안 할 정도로 야구 외에는 잘하는 운동이 없다. 단, 농구는 직접하며 조금 즐기는 편이다.”
로빈슨 카노(시애틀). 동아닷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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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별명이 있나?

“아직까지 특별한 별명은 없다.”

-야구선수들은 징크스가 많다. 당신도 그런가?

“나 같은 경우는 미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징크스도 전혀 없다.”

-카노에게 ‘야구’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내 삶에서 야구를 빼놓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야구는 내 인생에 있어 절대적이다. 야구를 통해 부와 명예를 얻었고 지금의 자리(정상)에도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11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며 미국으로 귀화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외국인 신분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뛰려니 미국 출입국 과정은 물론 일정기간마다 취업비자를 갱신해야 하는 등 복잡하고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맘 편히 운동에만 전념하고 미국시민으로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신분상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그렇다면 다음 WBC 때에는 미국팀으로 출전하는 것인가?

“(웃으며) 다음 대회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그 문제는 그 때 가서 생각해 보겠다.”

-끝으로 한국 팬들을 위해 한 마디 해달라.

“먼저, 한국 팬들의 관심과 성원에 감사한다. 앞으로도 나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을 부탁한다. 그리고 새로 이적한 시애틀도 많은 관심을 갖고 응원해 주면 고맙겠다.”

로스앤젤레스=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sang@Lee22.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