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은 떠나도 등번호를 남긴다

입력 2014-03-27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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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의 박경완 퓨처스(2군) 팀 감독이 4월5일 한화와 문학 홈경기에서 은퇴식 및 자신의 등번호인 26번의 영구 결번식을 갖고 팀의 레전드로 이름을 올린다. 스포츠동아DB

■ 레전드의 자격과 예우

“나는 이제 새로운 꿈을 갖고 다른 도전을 하려 한다.”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영원한 캡틴’ 데릭 지터(40)는 2월 13일(한국시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같은 글을 올리면서 올 시즌 후 은퇴를 선언했다. ‘살아있는 전설’의 은퇴 예고에 티켓 전쟁이 벌어졌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올 시즌 양키스의 마지막 홈경기인 9월 26일 볼티모어전의 입장권은 지터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뒤 4시간 만에 원래 가격의 279%까지 치솟았다.

한국프로야구 SK는 이로부터 약 한 달 뒤인 3월 10일 “박경완(42) 퓨처스(2군)팀 감독의 선수시절 등번호 26번을 영구결번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SK는 4월 5일 문학 한화전에 앞서 박경완 은퇴식 및 영구결번식을 열 예정이다.


‘최고 대우’ 영구결번 양키스 ML 최다
은퇴 선언 지터 2번도 기정 사실화

한국선 한화가 영구결번 최다 보유
통산 314홈런 박경완 ‘12번째 영광’

ML 명예의 전당 306명…日 184명
한국은 2016년 10월 목표로 추진 중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영원한 캡틴’ 데릭 지터가 지난 2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 시즌을 끝으로 프로선수 은퇴를 선언해 많은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동아닷컴DB



● 레전드(Legend)의 자격

‘레전드’는 ‘전설’ 또는 ‘전설적 인물’을 일컫는다.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영웅들과 그 영웅들의 이야기 중에서도 시간의 여과과정을 거쳐 어떤 것은 사라지고, 어떤 것은 잊혀진다. 세월의 풍화작용 속에서도 살아남는 영웅의 이야기만이 진정한 전설의 자격을 얻는다.

지터와 박경완은 아직 세월의 필터를 거치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은 벌써부터 이들을 ‘레전드’라 부르고 있다.

양키스는 월드시리즈 최다 우승팀(27회)답게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영구결번(15개)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한 자릿수 번호는 2번과 6번만 남아 있는 상태다. 양키스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지터의 번호인 2번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는 것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199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양키스의 1라운드 지명을 받은 지터는 1995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올해로 빅리그 20시즌째. 지난해까지 2602경기에 출전해 통산타율 0.312를 기록 중이다. 현역 최다이자 역대 10위인 3316안타에 256홈런을 때려냈다. 5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13차례 올스타전에 참가했다. 유격수 골드글러브 5회, 실버슬러거 5회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박경완은 1991년 쌍방울에 연습생(현 신고선수)으로 입단한 뒤 피나는 노력 끝에 최고 포수로 자리 잡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이후 현대와 SK를 거치며 지난해까지 23시즌 동안 프로에서 활약했다. 2043경기에 출장해 2차례 홈런왕에 올랐고, 통산 314홈런(역대 5위)을 기록했다. 한국시리즈 우승 5회, 골든글러브 4회 등 위대한 신화를 남겼다.

‘레전드’는 영웅의 또 다른 이름이다.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조 디마지오 등 양키스의 전설들처럼 지터나 박경완도 먼 훗날까지 영웅의 이름으로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 영구결번(Retired number)

‘레전드’를 기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구결번 지정이다. 번호를 달고 뛰는 단체 스포츠에서, 앞으로 영원히 누구도 달 수 없도록 ‘번호를 은퇴’시킨다는 것은 레전드에 대한 최고의 찬양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영구결번의 효시는 19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양키스는 2130연속경기 출장 기록을 세운 ‘철마’ 루 게릭의 은퇴식과 함께 그의 배번인 4번을 영구결번으로 선포했다. 지금까지 메이저리그 모든 구단의 영구결번 번호를 모두 합치면 171개. 그 속에는 다양한 사연들이 숨어있다. 그 중 42번은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에서 모두 영구결번으로 지정돼 눈길을 모은다. 1947년 최초의 흑인선수로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재키 로빈슨(브루클린 다저스)을 기리기 위해 그의 데뷔 50주년인 1997년 메이저리그 전 구단에서 영구결번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당시 유일하게 42번을 달고 있던 양키스 마무리투수 마리아노 리베라에게만 한시적으로 42번을 허용했다. 리베라가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면서 이제 42번은 불가침 영역이 됐다.

한국에선 1986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김영신(OB)의 54번을 시작으로 이번 박경완의 26번까지 총 12개의 영구결번이 탄생했다<표 참고>. 한화는 가장 많은 3개의 영구결번(35번 장종훈·23번 정민철·21번 송진우)을 보유하고 있고, 삼성은 22번(이만수)과 10번(양준혁) 2개인데, 36번도 이승엽이 은퇴하면 영구결번하기로 이미 결정해놓은 상태다. KIA에선 18번(선동열)과 7번(이종범), LG에선 41번(김용수), 두산에선 21번(박철순), 롯데에선 11번(최동원)을 달 수 없는 번호로 지정했다.


● 명예의 전당(Hall of Fame)

레전드를 기리는 또 하나의 방법은 명예의 전당 헌액이다. 메이저리그는 1936년 베이브 루스, 타이 콥, 호너스 와그너, 크리스티 머튜슨, 월터 존슨 등 초창기 슈퍼스타 5명을 1호 명예의 전당 헌액자로 선정했다. 그리고 올 1월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프랭크 토머스 등 3명이 새로 합류하면서 명예의 전당에는 총 306명의 레전드가 입성해 있다.

일본은 1959년 명예의 전당을 만들었다. 1호 입회자는 총 9명. 사와무라 에이지 등 초창기 일본프로야구 슈퍼스타도 있지만, 일본프로야구를 태동시킨 초대 커미셔너 쇼리키 마쓰타로 등 행정가도 포함됐다. 일본 최초의 야구팀을 창설한 히라오카 히로시 등 프로야구 이전 시대의 인물들도 선정됐다. 올 1월 노모 히데오, 사사키 가즈히로, 아키야마 고지 등 3명이 추가로 입회하면서 일본야구 명예의 전당에는 총 184명이 가입하게 됐다.

한국야구도 조만간 꿈에 그리던 명예의 전당을 만나게 된다. 2016년 10월 완공을 목표로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동백리 일원(대지면적 19만6515m²)에 명예의 전당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명예의 전당은 야구의 역사와 추억을 보관하는 공간이지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시간의 연결이기도 하다. 선수들이 팬들에게 전설을 선물해줬다면, 팬들은 추억으로 레전드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eyston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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