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 운전면허 거저” 중국인 취득자 작년에만 2만명

입력 2014-03-27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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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beanjjun

■ 중국인 원정 면허시험 러시 현장을 가다

2011년 운전면허 간소화 이후 두 배 증가
국내 면허 취득자 100명 중 3명이 중국인
단 3일이면 손에…세계서 가장 쉬운 제도
OECD 최악 교통사고 사망률 점점 부채질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의 e현대자동차운전전문학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본관 건물 앞에 점퍼차림을 한 남자 10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우리말이 아닌 중국어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대부분 중국인 같았다. 잠시 후 학원 강사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와 “강의시간이 됐다”고 알렸다. 통역인 듯한 여성이 남자들에게 중국말로 전하자 모두 피우던 담뱃불을 끄고 건물 안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이 학원은 전국에서도 중국인 수강생이 많기로 소문난 학원이다. 인근에 공단이 있어 원래 중국인 근로자 수강생들이 적지 않았지만 최근 그 수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해 찾아오는 중국 관광객들이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학원의 월 평균 신규 수강등록자는 대략 200여 명 선. 이 중 무려 70∼80%가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에서 온 외국인이다. 중국인이 가장 많다. e현대자동차운전전문학원의 전영택 원장은 “지난 주말에 학과교육을 받은 수강생 24명 중 21명이 외국인”이라고 귀띔했다.


● 중국인 한국운전면허 합격자 2만 명 돌파 … 업계 “수치스럽다”

왜 이런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중국인들이 자국이 아닌 한국에서 운전면허시험을 치르고, 아예 운전면허시험을 보기 위해 원정관광까지 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단 하나다. 한국의 운전면허시험이 쉽고, 빨리 면허증을 딸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중국인의 수가 크게 늘고 있다. 2013년 한국에서 면허를 딴 중국인은 2만 3242명. 2012년에 비해 57%나 늘었다. 주목할 점은 운전면허시험제도 간소화 시점을 기준으로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운전면허시험제도는 이명박 정부시절인 2011년 6월에 대폭 간소화됐다. 2010년 7064명이던 중국인 면허시험 합격자는 간소화 이후 두 배로 급증했고, 급기야 지난해 2만명을 넘어섰다. 국내 면허취득자 100명 중 3명이 중국인이다.

중국인 관광객 추홍잉(26)씨는 최근 한국을 방문해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다. 한국에서 면허를 딴 친구의 소개로 왔다고 했다. 추씨는 “중국에서 운전면허를 따려면 빨라야 6개월, 길면 1년 이상 걸린다”며 “한국은 빨라서 좋다”고 만족해했다.

중국인들은 ‘빠르고 쉬워서’ 좋겠지만, 이러한 중국의 원정면허시험 러시현상을 바라보는 국내 운전교육업계의 심경은 착잡하기만하다. 한 마디로 “수치스럽다”는 반응이다.

중국인 수강생이 급증하면서 운전전문학원들도 중국인들을 위한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중국어로 된 등록안내문과 강사들이 중국인 교육생과 간단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만든 용어집, 학과교육을 받고 있는 중국인 교육생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시흥|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beanjjun



● “검토하겠다”는 경찰청, 언제까지 검토만?

운전면허증은 도로에서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는 자격증이다. 사람 목숨을 한 순간에 앗아갈 수도 있는 운전 자격을 입증하는 증명서다. 하지만 우리나라 운전면허시험은 ‘원숭이도 딸 수 있는’, ‘세계에서 유래 없이 쉬운’ 제도다. 마음만 먹으면 3일이면 딸 수 있다.

쉽고 빠른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도로는 총성 없는 전쟁터다. ‘세계에서 가장 혼잡한’ 우리나라 도로에서 ‘세계에서 가장 쉽게 딴’ 운전면허로 운전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3일 만에 딴 운전면허증으로 우리나라 도로에서 운전한다는 것은, 3일 훈련을 받고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에게 총을 들리는 것과 별 다를 게 없다.

국민의 시간과 비용을 절감한다는 명목으로 운전면허시험제도와 교육시간을 간소화했지만, 국민의 생명을 간소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나라 1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6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국 중 31위다(2010년 기준). 100만 명 당 사망자 수는 11.26명으로 꼴찌다.

간소화 이후 우리나라 교통사고율은 늘어나고 있다. 특히 1년 미만 초보운전자와 도로주행시험을 위해 발급하는 연습면허 소지자들의 사고율이 급증했다.

면허를 따고도 운전을 하지 못하는 ‘장롱면허’ 소지자들은 ‘미래의 폭탄’들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장롱면허가 800만장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런 장롱면허 소지자들이 차를 몰고 도로에 쏟아져 나온다면 교통사고율이 얼마나 솟구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현행 운전면허제도에 대해 “개선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정치권과 운전교육업계, 교통전문가들이 연일 한 목소리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현재까지 경찰청에서는 개선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운전면허시험제도의 간소화가 자칫 국민생명의 ‘간소화’를 가져올까 우려된다. 교통사고의 증가와 미숙한 운전자의 양산은 운전면허시험제도의 간소화가 ‘손톱 밑의 가시’를 뽑는 것이 아닌, ‘손톱을 뽑는’ 일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대한민국 도로가 공포에 떨고 있다. 한국의 운전면허증 ‘수출’은 국제적인 망신이다. 이제 그만 브레이크를 밟을 때가 됐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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