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OB ‘집단항명’ 감독·베테랑 5명 옷 벗어

입력 2014-05-29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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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집단행동 사례는?

주전 17명 ‘보이콧’ 2군으로 잔여시즌
해태 이순철은 수석코치와 주먹다짐


프로야구단은 구성원 수가 많지 않지만 선수들과 프런트가 뒤섞인 묘한 조직이다. 현장과 프런트의 리더가 따로 있다. 이들의 관계에 따라 팀이 산으로도 가고 바다로도 간다. 선수와 프런트의 갈등은 30여년의 프로야구 역사에서 많은 해프닝을 낳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선수단 내부의 갈등도 있다.

20년 전 OB 선수들의 집단항명 사건은 프로야구에서 나온 가장 대표적인 선수들의 집단행동이다. 1994년 9월 4일 전주에서 벌어진 쌍방울 원정에서 무기력한 플레이를 했던 OB선수들과 윤동균 감독과의 갈등은 팀 미팅에서 폭발했다. 선수단을 대표해 몇몇 주전에게 얼차려를 주려고 했던 감독에 반발해 선수들이 짐을 싸들고 원정숙소를 떠나버렸다. 17명의 선수들은 다음 날 양평의 플라자콘도에 모여 감독퇴진을 요구하며 버텼다. 시즌 마지막이지만 주전선수 17명이 빠진 OB는 2군 선수들로 잔여시즌을 치렀다.

한때는 몰수경기까지 검토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구단 사장이 사퇴의사를 밝히는 등 구단을 뒤흔들었던 집단항명은 9월 14일 윤동균 감독의 자진사퇴와 리더역할의 베테랑 5명(김상호 김형석 박철순 장호연 강영수)의 옷을 벗기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3년 임기를 재보장 받았던 윤동균 감독의 예상 못한 낙마로 지휘봉을 잡은 김인식 감독의 요청으로 김상호 박철순 등은 다음 시즌에도 OB선수로 활약했다. 김상호는 1995년 정규시즌 MVP(최우수선수)에 오르며 팀에 우승을 안겼다.

또 다른 선수들의 집단행동은 1996년 2월 하와이 전지훈련에서 벌어졌다. 해태 선수들이었다. 몇몇 코치와 선수들 사이에서 쌓여왔던 갈등이 25일 새벽 선수들의 심야외출을 체크하라는 지시를 받은 젊은 코치의 전화로 폭발했다. ‘선수들을 믿지 못해 새벽에 일일이 선수 방으로 전화를 했다’는 불만은 다음날 아침 산책시간에 호텔 엘리베이터 안에서 베테랑 이순철과 유남호 수석코치의 주먹다짐으로 이어졌다. 선수들은 그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몇몇 코치들에게 가졌던 불만을 드러냈다. ‘이대로는 훈련 못하겠다. 한국으로 돌아가겠다. 여권을 달라’며 훈련을 보이콧했다. 전지훈련 막판 벌어진 이 파동은 김응룡 감독이 나서고 윤기두 매니저의 설득으로 간신히 무마됐다.

서울의 팀 MBC-LG는 유난히 선수들의 기가 센 특징이 있다. 그러다보니 감독과 선수의 갈등이 많았다. 1983년은 후기리그 우승 보너스 약속을 놓고 김동엽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 냉랭한 기류가 감돌았다. 집단행동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해태와의 한국시리즈에서 1무4패로 무너지는 원인이 됐다.

1988년에는 신임 배성서 감독을 놓고 선수들이 신임투표를 벌여 파문이 일었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 사이의 갈등도 증폭됐다. 상조회장이었던 이광은은 “이런 친구들과는 야구 못한다.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 시켜달라”고 버텼다. LG로 유니폼을 바꾼 뒤에도 사건은 이어졌다. 2002년 이광은 감독의 용병술에 불만을 품은 몇몇 선수들이 태업을 하고 서용빈이 숙소를 이탈하자 구단은 200만원의 벌금과 2군행을 결정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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