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현 기자의 브라질 24시] 호주대표팀 ‘K리거’ 윌킨슨의 한국 사랑

입력 2014-06-16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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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전 선발 출장…“월드컵 출전 K리그 덕분”
무더위 변수…한국대표팀에 체력관리 조언도

솔직히 매력적인 경기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비행기 안에서 30시간 가까이 보내야 하는 먼 브라질까지 출장을 왔는데, 한국 외의 다른 나라 경기도 한번쯤은 접하고 싶었죠. 쿠이아바의 아레나 판타날에서 예정된 호주-칠레의 2014브라질월드컵 B조 1차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물론 쿠이아바를 주목할 다른 이유도 있었죠. 한국-러시아전이 열리잖아요.

그런데 뜻하지 않은 선물도 건졌습니다. ‘FC바르셀로나의 윙어’ 알렉시스 산체스가 포진한 칠레의 창을 막는 중책을 맡은 호주 수비진에 익숙한 이름이 있었죠.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전북 현대의 알렉스 윌킨슨(30)이 떡하니 스타팅 라인업에 있지 뭡니까?

친선 A매치도 아닌 월드컵 본선 첫 경기인데…. 지난해 말 호주대표팀에 발탁된 뒤 최근 평가전에서 곧잘 주전으로 나왔으니 출전 기회가 한번쯤은 주어질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막상 그의 월드컵 플레이를 현장에서 지켜보게 됐으니 기쁘기까지 했답니다.

킥오프를 앞두고 배포된 출전선수 명단에 ‘Jeonbuk Hyundai Moto(KOR)’가 새겨진 것을 볼 때의 느낌이란…. 한국 경기도 아닌데 말이죠. 역대 K리그 소속 외국인선수가 월드컵 본선 경기를 뛴 것은 윌킨슨이 사실상 처음입니다. ‘사실상’이란 단서를 단 이유는 1호라고 할 미첼이 천안일화(현 성남FC) 소속의 카메룬대표로 1998프랑스월드컵에 나서긴 했지만, 계약에 무언가 문제가 있었는지 확실한 K리그의 일원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출발은 미약했습니다. 전반 12분과 14분 내리 실점하며 호주가 끌려가는데, 수비가 전혀 되지 않았죠. 그러다 호주가 힘을 내더니 한 골을 만회하네요. 후반 15분경, 윌킨슨이 주인공이 됩니다. 칠레 바르가스의 슛이 거의 들어가던 차에 골라인 앞에서 걷어냈죠. 실점을 막았으니 한 골 넣은 셈이나 마찬가지네요. 이만한 ‘공신’이 또 있을까요? 아쉽게도 호주는 후반 추가시간에 한 골을 더 내줘 1-3으로 패했습니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윌킨슨과 잠시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대화 상대가 한국사람임을 금세 알아보곤 분위기를 파악합니다. 깨알 같은 K리그와 팀 홍보를 늘어놓더군요. “흥분된 경기였다. 내용에 비해 결과가 좋지 않아 아쉽다”는 아주 뻔한 코멘트 뒤에 본론이 나옵니다. “만약 철저한 무명이던 내가 전북에서 뛸 기회가 없었다면, 그리고 꾸준히 K리그 무대를 누비지 못했다면 월드컵 출전 꿈은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좋은 (최강희) 감독도 만나 매 순간 배워가고 있다. 그냥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한국이 쿠이아바에서 러시아를 곧 만난다’고 하자, 역시 한마디를 합니다. 한국 스타일을 나름 잘 아는 윌킨슨의 조언은 새겨들을 만했죠. “킥오프 초반 20분간 정신을 못 차렸다. 너무 더웠다. 그런데 계속 우릴 괴롭히던 칠레도 지치더라. 기회였다. 한국은 체력도 좋고, 기동력도 갖췄으니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 결국 꾸준해야 한다는 의미죠. 무리하게 상대의 페이스를 무너뜨리려 몰아치다간, 정작 우리의 체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행운을 빈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윌킨슨도 멋지게 대회를 마친 뒤 당당히 전북으로 개선하길 기대해봅니다.

쿠이아바(브라질)|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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