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정철 “신혼 때 만난 악역…현실과 괴리감 심했다”

입력 2014-06-16 19: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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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안 멈추는 장태정, 어려운 배역
○막장이리라는 장르의 고유한 매력 배워

시청자들의 혈압과 더불어 상승하는 것이 있다. 흔히 막장 드라마라고 불리는 작품의 시청률이다. '이게 무슨 드라마냐'라는 댓글과는 반대되는 성적표는 방송국으로 하여금 막장이라는 장르를 포기할 수 없게 만든다.

최근 종영한 KBS2 일일드라마 '천상여자'(극본 이혜선, 연출 어수선) 역시 그랬다. 처음에는 자신의 아이와 여자친구를 버리는 것으로 시작된 막장의 씨앗은 온갖 사기와 살인미수로까지 이어지며 악행의 끝을 달렸다. 그리고 이런 놀라운 악행들은 장태정을 연기한 박정철을 통해 빛을 발했다.

"장태정을 연기하면서 새롭게 안 건 살인을 하지 않아도 피해자를 방치하거나 도망가도 죄가 성립된다는 정도였어요. 그렇게 장태정은 치열한 캐릭터였고 연기하는 저도 정말 치열하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박정철이 보여준 장태정은 최근 등장한 남자 배우들 축에서도 극악으로 분류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는 스스로도 "장태정을 종 잡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장태정이 여기서 멈추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하면 더 악한 감정을 품고 심한 말들을 쏟아내요. 6개월 동안 하다보니 당연히 악행의 강도가 세질 수밖에 없죠. 연기를 하면 할수록 더 심한 상황이 올까 싶은데 결국은 오더군요."


이처럼 파도처럼 몰아치는 장태정의 상황은 극중 캐릭터만 고달프게 하지 않았다. 현실의 박정철도 적지 않은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장태정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으로 동료 배우들과의 관계와 신혼생활을 꼽았다.

"드라마 안에서 저를 싫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그리고 안 때려보거나 멱살을 잡지 않은 사람도 거의 없을 거예요. 그런 생활이 반복되니까 점차 동료 배우들과 대화가 사라지더라고요. 처음에는 감정 때문에 그런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동료 배우들과 정말 멀어지게 된 것 같았죠."

이어 박정철은 장태정을 연기하는 내내 드라마와 현실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해 온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 4월 12일 7년 열애 끝애 결혼을 올린 행복한 현실과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극 중 캐릭터의 엄청난 차이를 조금이라도 메꿔야 했던 것이다.

"계속 어두운 분위기의 촬영을 해야 하는데 일생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신혼을 이렇게 보내도 되는건가 하는 괴리가 분명히 있었어요. 여기에 제 아내가 희생해 준 부분이 있어요. 그것에 대해선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어쩌면 이런 고민이 오히려 장태정을 연기하는데 도움을 준 것 같아요."

박정철은 인터뷰 동안 자신이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흔히들 다른 배우들이 꺼내놓는 '현실에는 더한 일이 일어난다'는 류의 말로 자신의 선택을 변명하지 않았다.

"이번 작품도 에너지 소모가 상당했어요. 이 드라마에서 말하는 법이나 표정연기들이 일상과도 다르고 다른 장르의 드라마들과도 달랐어요. 보는 분들이 과장되어 있다고 지적하시는 부분을 연기하는 저도 느꼈지만 분명히 막장이라는 장르가 보여주는 고유한 매력이 있다는 걸 배우게 됐죠."

이제 박정철은 막장 드라마를 떠나게 됐다. 다시 '정글의 법칙' 속 허당으로 돌아올 수도 있고 인터뷰에서처럼 진지한 배우로 대중들을 만날 수도 있게 됐다. 그는 "예능도 인터뷰도 마다하지 않겠다. 그런 것들이 하나씩 모여 드라마 속의 내가 아닌 실제 나를 보여줄 수 있으면 족하다"고 말했다.

"역시 연기라는 건 오래 하고 싶지만 이게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에요. 박정철하면 부각되는 이미지가 있으니까요. 오랜 배우생활을 했음에도 제 연기는 작품을 하면서 진행 중이라고 생각해요. 연기에는 완성이라는 게 있을 수가 없으니 대중들에게 다양한 소스를 보여주고 '박정철이 이런 것도 할 수 있나'라는 걸 깨닫게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배우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조금씩 성장하면서 주름이 늘어나는 모습은 인위적인 포장없이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동아닷컴 곽현수 기자 abro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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